참된 그리스도인

Posted in 완전 문제와 승리

저자: 작자미상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생애를 지배해야 할 진리와 의무의 위대한 원칙을 제시할 뿐 아니라, 우리에게 용기를 주기 위하여 그 원칙들을 예증해 온 사람들의 역사를 소개한다.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들이 유혹과 싸웠으며, 전능하신 조력자를 의지하여 정복하였다. 우리가 직면하게 될 상황보다 더욱 큰 어려움 하에서도 그들은 의무와 하나님께 대하여 진실하였다 (야고보 5:17).

    한 완전한 모본(예수 그리스도) 되신 이를 제외하고는 거룩한 말씀에 대한 모본으로서 다니엘보다 그리스도인의 품성이 더 잘 묘사된 곳은 없다. 그의 청년기에 궁정의 모든 유혹에 노출되었을 지라도 그는 변함없는 완전성을 유지하였고 하나님을 향한 뜨거운 헌신을 지속한 사람이었다. 그는 사단의 맹렬한 유혹을 받았으나 그의 성품이 변질되거나 그의 방향이 변경되지 않았다. 많은 사람들이 정복되는 입장들에서도 그는 확고 부동하였으며 저들이 그릇되게 행할 곳에서 그는 진실되었고 또한 저들이 우유부단하게 될 경우들에서 그는 강하였다. 다니엘은 레바논의 고고한 하나의 백향목과 같았다. 하나님의 천사는 이 충성된 선지자에게 "은총을 크게 받은 사람아 네 기도가 들으신 바 되었느리라"고 말씀하였다.

    선지자 다니엘의 믿음, 완전 그리고 헌신이 이 시대의 하나님의 백성들의 심령에 거한다면 ... 이 고상한 자질들이 이 세상에 지금보다 더 절실하게 요구되는 때는 없었다. 하나님과 의를 위해 견고하고 두려움 없이 설 사람들이 지금보다 더 필요되는 때가 없었다.
    예수님의 이름을 위해 수고하고 고난 당했던 자들 가운데 이방인의 사도인 바울보다 더 밝고 순결한 광채로 빛날 이름은 없었다. 그의 마음에 끓어오르는 예수님에 대한 사랑은 그로 하여금 자신을 망각하고 자신을 부정하게끔 만들었다. 그는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뵈었으며 구세주의 영상은 그의 영혼에 부각되었고 그의 생애의 앞을 비추어 주었다. 위험에 의해 좌절되거나 머뭇거리지 않은 믿음, 용기 그리고 인내를 가지고 그는 십자가의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 각 곳으로 여행을 계속하였다. 네로의 재판장에 서기 위해 소환되고 그의 형제들로부터 버림받았을 때 그는 처음에는 낙담 가운데에 빠지게 되었다. 그가 위를 향하여 능력의 근원되시는 분을 바라보았을 때 그는 다시 용기를 회복하게 되었다. 인간적인 도움이 그를 외면하였을 지라도 그는 "주께서 내 곁에 서서 나를 강건케 하신다"고 선언하였다 (딤후 4:17). 그는 예수님의 손에 자신의 손을 맡기고 두려움 없이 순교자의 죽음을 맞이하였다.

    이러한 고상한 성품들은 과거부터 지금까지 존재해 왔으며 앞으로도 존재할 것이다. 아무도 그들을 숨길 수 없으며 누구도 그들을 곡해할 필요가 없다. 그들은 모든 사람에게 알려지고 읽혀진 살아있는 편지들이다. 이러한 선택된 자들의 생애에서 비추어 나온 참된 선함의 아름다움에 의해 다른 사람들은 매료되고 그들을 닮고 싶어 하는 욕망으로 가득 차게 되었다. 성경의 표준에 도달하기를 갈망하는 모든 사람은 또한 다른 사람들에게도 더 높은 표준을 추구하게끔 그들을 고무시킬 것이다.

    하나님께서 가르치시는 사람은 그리스도의 명예를 위한 그의 열렬하고 활동적인 노력과 영혼들에 대한 꺼지지 않는 사랑으로 다른 이들을 고무시킬 것이다. 다른 사람들에 대한 그리스도와 같은 온유함과 친절한 정신이 그들에게 있어서 가장 뚜렷하게 나타날 것이다. 열성적인 자선, 형제와 같은 친절과 그리스도인다운 예절로서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줄 것이며, 겸손과 겸허를 생활화 함으로 교만하고 완고한 자들을 겸손한 자들로 변화되도록 인도할 것이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를 따르노라고 공언하는 자들의 믿음의 원칙이 다른 사람들에게 본보기가 되고 있는가! 하나님의 사람들이 체험했던 깊이 살아있는 거룩한 경험들은 어디에 있는가? 그리스도인의 표준이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공언하는 사람들의 타락한 상태를 맞추기 위해 낮추어 졌는가? 아니다! 그 표준은 하나님이 정하신 그대로 있다. 과거 시대의 거룩한 자들은 그리스도를 위해 모든 것을 포기해야 하였으며 당신의 정신을 품고 그리스도의 본을 따라야 하였다. 지금도 이 이하의 것을 그분께서는 받지 않으실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과 함께 그날 하루를 시작하고 마칠 것이다. 그의 언어는 경박하거나 헛되지 않을 것이다. 그는 한담이나 고의적 험담에 몰두하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의 평화가 그의 마음을 지배할 것이다. 신성한 은혜의 능력이 모든 고상한 목적을 강하게 하여주며 모든 거친 성질을 유순하게 할 것이다. 그의 생애와 품성에서 세속이 매수할 수 없는 확고하고 두려움 없는 원칙을 보게 될 것이다. 이러한 사람들은 세상 사람들에 의해서 그리스도의 제자들이라고 인정될 것이다. 저들은 구주에 대해 배웠다. 의의 태양이 마음을 비추므로 그 용모가 빛날 것이다. 모든 기능은 거룩한 은혜의 영향력으로 강하게 되고 개발될 것이다. 그러한 그리스도인들은 매우 가치있는 경험의 소유자들이다.

    교회를 냉담하고 무기력한 상태로 만드는 것은 개인적 신앙의 부재, 하나님의 사물들에 대한 매일의 살아있는 체험의 결핍이다. 우리는 큰 빛과 많은 특권들을 누려왔다. 우리가 이러한 축복들로부터 돌아섬으로써 하나님의 자녀들로서의 우리를 구별할 특별하고 거룩한 특성을 희생시켜 버리겠는가. 만일 우리가 하나님의 자비를 무시한다면 가버나움에 대하여 저주하신 심판이 분명히 우리에게 임할 것이다. 그 형벌은 그 큰 빛을 누려오지 않았던 사람들에게 내려지는 것보다 중할 것이다. 이와같이 경고와 책망과 권면이 받아들여져 순종하게 되면 그것들은 말할 수 없는 축복들이 될 것이나 거절되면 그것들은 저주가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고대의 당신의 한 종에게 다음과 같이 명령하셨다. "너는 이 백성을 위하여 기도하지 말라. 내게 간구하지 말라. 내가 너를 듣지 아니하리라" (렘 7:16). 그 선지자는 이 두려운 선고를 말씀하시게 된 죄악들은 다음과 같이 묘사한다. "선지자들은 거짓을 예언하며 제사장들은 자기 권력으로 다스리며 내 백성은 그것을 좋게 여기니 그 결국에는 너희가 어찌 하려느냐" (렘 5:3). "이는 그들이 가장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탐남하며 선지자로부터 제사장까지 다 거짓을 행함이라 그들이 내 백성의 상처를 심상히 고쳐주며 말하기를 평강하라 평강하라 하나 평강이 없도다" (렘 6:13,14).

    사도들은 이 상태가 말세에 재현될 것이라는 것을 선언한다. 많은 사람들이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저들의 매일의 생활에서 그 능력을 부인한다. 저들은 더 이상 저들의 죄를 깨닫거나 저들의 상태에 대해 각성하지 않는다. 저들은 심중으로 "교회는 번영하고 있으며 평화와 영적 성장이 교회 내에 있다"고 이야기한다. 선지자의 말씀은 이러한 스스로 기만당한 자들에게 잘 적용될 것이다. "그들은 자기의 길을 택하며 그들의 마음은 가증한 것을 기뻐한즉, 나도 유혹을 그들에게 택하여 주며 그 무서워하는 것을 그들에게 임하게 하리니" (이 66:3,4).

    육체의 마음은 하나님께 대하여 적의를 가지고 있다. 우리가 자신을 부인하고 그리스도의 멍에를 메지 않는다면 우리 중 어느 누구도 하나님의 계명을 사랑하고 지킬 수 없다. 거룩한 진리가 세상의 전통이나 관습과 조화된 적이 없다. 동시에 그것은 저들의 의견에 일치된 적도 없다. 그리스도 자신은 사람들로부터 명예를 받지 않으셨다. 당신께서는 온유하시고 겸손하시므로 자신을 명망이 높은 위치에 두지 않으셨다. 그분의 단순한 의복과 위장이 없으신 태도는 바리새인들의 과시, 자기 과대평가 그리고 헛된 위엄과는 전혀 대조적이었으므로 저들은 그를 인정하지 않았다. 모든 사람이 신성한 능력의 드러남을 인정하였으나 거의 아무도 고통과 굴욕을 당하고 계시는 그리스도가 세상의 구세주이심을 보지 못했다.

    현재 세상에서조차 경건의 모양은 보편화 되었다. 그리스도 신자라고 공언하는 것은 손해될 것이 없다. 그러나 예수님을 따르는 자들은 주께서 지셨던 자기부정과 십자가를 지는 같은 길을 걸어야만 한다. 저들은 세상에서는 인정을 받지 못할 지라도 하나님께서는 저들을 존귀하게 보실 것이다.

    하나님께 대하여 죄를 계속 지으면서 저들이 올바른 기초에 있고 하나님께서 저들의 사업을 인정하시리라고 믿게 하는 것보다 인간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는 더 큰 기만은 없다. 위대한 정련사에 의해 용광로에 놓여질 때 순금으로 예측되었던 많은 분량이 뜬 찌기로서 소모되어 버릴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제자라고 공언하는 수 많은 사람들을 당신의 특별한 백성이라고 부르실 수 있을까? 그리스도는 그들을 죄로부터 구속하기 위해 자신을 그들을 위해 바쳤으며, 저들을 어두움으로부터 그분의 놀라운 빛으로 불러내었음에도 불구하고 주께서는 그 아름답던 도시가 음녀가 되었으며 나의 아버지 집이 장사하는 장소가 되었다고 하시지 않겠는가? 그대의 불신 때문에 주께서는 그대 가운데서 능력 있는 사업을 행할 수가 없다.

    우리는 죄를 의라고 부르거나 의를 죄를 불러서는 안 된다. 우리는 실수를 범하는 자들에 대해 긍휼과 동정을 나타내야 하지만 먼저 우리 자신들이 성결된 판단과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지배되어야 한다. 죄인들에 대한 지나친 동정심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죄를 경히 생각하게 된다. 이 국가에서 가장 악랄한 범인들을 적극적으로 동정하는 사람들이 있다. 저들의 범행으로 인해서 저들 자신의 평판이 나빠졌고 법률이 정하는 바의 형에 처하게 된 이유로 인해서 특별한 관심과 동정이 저들에게 주어진다. 수 천명을 오도하고 부패하게 하는 죄악들에 자비의 망토를 덮어주는 것이 미덕이라고 인정되고 있다.

    똑같은 정신이 교회에 들어오고 있다. 죄를 범한 자의 죄악이 어떻든 그의 행위의 결과가 얼마나 비통하든 그는 동정하는 자들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가 책망을 받게 될 때 그를 지지하는 불경건한 자들이 있다. 저들의 어리석은 동정 때문에 그는 자신이 학대 당하고 있다고 느끼게 되며, 결과적으로 저들은 그가 회개와 개혁으로 가는 길을 차단해 버리는 역할을 하게 된다.

    사람에 대한 인정은 비록 공언하는 그리스도인에게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총애하심에 대한 증거가 되지는 못한다. 수많은 그리스도인의 경험이 사단을 섬기면서도 진리를 사랑하는, 그리스도의 종이라고 공언하는 자들의 표준에 의해 평가되고 있다. 눈멀고 자만에 빠져 있기 때문에 그리스도께서 가난하고 비참하며 눈멀고 벌거벗은 것을 선언하시는 입장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은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고 말한다 (계 3:17). 이러한 자들에게 주님은 엄중한 훈계를 하신다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 (계 3:18).

    결국에 하나님의 왕국에 들어갈 모든 사람은 시험을 치르게 된다.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알고 행하기를 갈망하는지 또는 단지 우리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지를 분명히 드러내 보일 것이다. 그리스도를 위해 모든 것을 포기해야 할 경우에 처했을 때 누가 그 시험을 견딜 것인가? 많은 사람들은 저들 자신의 지식에 의해 지도되고, 저들 자신의 심적 욕망에 탐닉되어 있다. 신성한 은혜와 사랑의 보고는 세상의 자극과 매력을 능가하지 못한다. 저들은 그리스도와 자기부정과 자아 헌신의 결과인 그리스도의 은혜 보다는 차라리 자기 만족을 선택한다.

    하나님께서는 오늘날 사람들을 찾고 계시는데 그 사람들이란 이해와 그리스도인의 체험을 지닌 자들이며 하나님과 당신의 사업의 이익을 위한 진실된 사람들이다. 진리로 맺어진 형제 자매들이여, 나는 그대들을 둘러싸고 있는 위험들을 안다. 철저한 성찰로 그대의 진정한 상태를 깨달을 때까지 또한 그대를 위협하는 위험을 볼 때까지 말씀을 연구하고 그대 자신의 심령을 점검하며 명상하며 기도하라. 그대가 그리스도의 정신에 의해서 변화되었다는데 대한 논쟁의 여지가 없을 때까지, 그대가 거듭난 것에 대한 확실한 증거가 있을 때까지 쉬지 말라. 그리스도가 그대 안에 거하시는 것을 인지할 때까지 쉬지 말라. 그대가 성경의 표준에 도달할 때까지 하나님의 인정을 받기를 바라는 것은 헛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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