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신학과 그리스도인 완전 문제

Posted in 완전 문제와 승리

신신학과 그리스도인 완전 문제

저자: 콜린, 럿셀 스탠디쉬

제 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교회의 일각에서는 완전이라는 단어가 마치 금기 (禁忌)처럼 되어 왔다. 신신학은 이러한 불행한 상황을 조성하는 일에 기여한 바가 크다. 성경과 예언의 신이 명한대로 거룩하게 살고자 하는 사람들은 율법주의자 또는 완전주의자 라는 붉은 색 도장이 자신들의 등 뒤에 찍힐 것에 대한 두려움으로 인하여 움추리게 된다.

성경을 상고해 볼 때, 우리는 완전이라는 단어가 매우 자유로히 사용되었음을 볼 수 있다. 성품의 완전에 대한 성서적 개념을 변조해 보려는 사람들은 성경에 사용된 완전이라는 단어의 의미는 성숙이라는 의미를 나타내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물론 우리는 어떤 구절에서는 그러한 의미로 사용되었다는 것에는 대해서 의문을 제시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어떤 구절에서는 그러한 뜻을 적용시키는 것이 아주 적합하지 않은 곳도 있다. 이에 대한 예수 그리스도 자신의 결정적인 언급을 보자.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 (perfect) 과 같이 너희도 온전 (perfect) 하라. 마태복음 5:48

만일 이 구절에서 우리가 완전이라는 단어를 성숙이라는 뜻으로 생각한다면 그것은 분명히 크나큰 잘못이다. 아담과 해와가 창조되었을 때 그들은 완전하였다. 그러나 그들의 신체적 육체척 기관들은 발전할 수 있도록 지음을 받았다. 그들은 완전했으나 성숙하지 못했다. 그것은 마치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완전하신 능력을 처음 받아들였을 때와 같은 것이다. 하나님의 완전하심은 무한한 것이다. 그것은 무한한 지식을 요하는 것이고 우리는 결단코 그러한 경지에 이를 수없다. 비록 천사들이라 할지라도 그러한 완전함을 갖추지 못했으며, 구원받은 후의 천국에서도 확실히 우리는 그러한 성숙함에 도달할 수 없다. 그러나 우리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이 세상에 살고 있는 동안에 죄를 이기고 승리할 수 있는 능력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 우리의 완전함은 주님께 의지한 완전함인 것이다. 그리스도의 능력에 매어달림으로 우리는 매 순간 순간 마다 유혹을 이길 수 있다.

우리 교회 내에서 너무도 많은 사람들이 완전함 (perfection) 과 완전주의(perfectionism) 를 혼동하고 있다. 화잇 부인은 자신의 글에서 완전함 또는 완전 (perfection 또는 perfect) 이라는 단어를 수십번이나 사용하고 있는 사실을 주지해야 한다. 그녀는 한결 같이 그것을 하나님께서 모든 헌신한 교인들에게 주시는 선물로 나타내었다. 더나아가 하나님께서는 완전함을 우리에게 입혀 주실 뿐 아니라 그의 완전하심을 우리에게 나누어 주신다고 하였다. 그러나 완전주의 (perfectionism) 라는 말은 화잇 여사가 단 한번 사용하신 일이 있다. 우리는 초기 문집에서 그 글을 찾을 수 있다.

자신들이 사랑해온 이 전에 가졌던 오류들로 인해서 마음과 판단이 연약해진 사람들, 즉 완전주의 (perfectionism) 나 심령논 (강신술) 과 같은 오류에 빠져 있는 동안 자신을 불명예스럽게 하였고 진리의 기별에 욕을 돌린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귀중한 양떼들을 결코 맡기지 않으실 것이다. 초기문집, 101 (영문)

최근에 편집된 초기문집에는 당시 이 문제에 관한 화잇 여사의 견해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기록되어 있다.

1844년 경험 직후 재림 신도들 중 어떤 이들은 하나님께 대한 신뢰를 잃어버리고 광신주의로 흐르게 되었다. 화잇 여사는 이러한 극단 주의자들을 "주님께서 가라사대"라는 말로써 대면하였다. 그 (화잇 여사)는 육체의 완전한 상태에 대해서 말하면서 죄를 지을 수 없다고 가르치는 사람들을 책망하셨다. 화잇 부인은 이러한 자들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그들은 성화된 사람들은 죄를 지을 수 없음을 주장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견해는 성화된 자들의 애정과 욕망은 언제나 올바른 것이어서 결코 그들을 죄로 빠지도록 인도하지 않는다고 믿도록 이끌었다. 이러한 괴변과 함께 그들은 성화라는 명목 아래 가장 악한 죄를 범하였고, 또 그들의 이러한 기만적이고 최면적인 영향을 통하여 그들의 동료들을 능가하는 이상한 능력을 얻게 되었는데 그들의 동료들은 이 아름다와 보이고 매력적인 이론이 가지는 악마성을 깨닫지 못하였다. 이 거짓 교사들의 기만이 내 앞에 적나라 하게 계시되었으며, 기록책에 있는 그들의 이름 위에 무서운 기록이 있는 것과 매일의 생애가 하나님의 보시기에 죗되게 행하면서 완전하고 거룩하다고 공언하는 그들 위에 무서운 죄가 놓여 있음을 보았다." 초기문집, 301 (영문)

이와 같이 화잇 부인이 언급하고 있는 1850년대에 있었던 이 운동은 1900년 대에 있었던 거룩한 육체 운동과 매우 흡사한 것이었다. 이 거룩한 육체 운동에 참가했던 사람들은 가장 가증한 일을 하면서 스스로 완전하게 되었다고 주장하던 자들이었다.

1888년 미네아폴리스의 기별과 그 이후에 제시된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의 기별의 요점은 십자가 칭의와 죄에 대한 승리의 중심인 갈바리에서부터 흘러나오는 빛 가운데서 복음을 이해한 것이다. 이 기별은 마치 인간의 노력이 자신을 구원할 수 있는 것처럼 믿게 만드는 율법주의를 제거하기 위해서 주신 기별이다. 갈바리에서 우리에게 이르러 오는 빛은 오히려 우리에게 칭의와 성화는 오직 하나님께서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에게 베풀어 주신 역사를 통해서만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을 확실히 해준다. 에베소서 5:25-27; 히브리서 10:10; 13:12 참조. 현재 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교회 안에는 완전 (완전함) 과 완전주의의 개념이 혼합되어 있다. 이 책의 저자인 콜린 스텐디쉬 박사가 네덜란드에서 "완전함인가? 혹은 완전주의인가?"하는 제목으로 강의를 한 일이 있다. 이 강의를 하기 전에 그는 자기가 사용할 성경과 예언의 신에서 뽑은 자료들이 정확하게 네덜란드어로 번역이 되어 있는지 확인하기를 원했다. 모든 본문들을 다 대조해 본 후 통역하는 사람이 거의 틀림이 없다고 했다. 그러나 초기문집에 있는 완전주의에 대한 화잇 여사의 언급을 조사한 후 주의해야겠다는 경고를 주었다. 초기문집을 번역한 사람이 초기문집에 있는 "완전주의"라는 단어를 네덜란드어로 "완전을 가르침"이라고 번역해 놓았다고 지적하였다. 이러한 번역은 화잇 부인이 뜻한 바를 심각하게 곡해시키는 것이다. 화잇 부인이 초기 문집의 그 구절에서 주시는 경고의 기별의 진정한 의미를 네덜란드 형제들이 올바로 이해하지 못했던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초기문집의 한글 번역판에도 완전주의를 "완전론이나 강신술 등의 오류에 빠진"이라고 번역함으로서, 완전에 대해서 말하고 가르치는 것이 마치 위험한 일인 것처럼 표현되어 있다. 초기문집 105를 볼 것 -- 역자주)

완전주의라는 것은 인간의 행위의 바탕 위에 세워진 것이다. 그 반면 참된 그리스도인의 성품의 완전함은 완전주의와는 전혀 그 성격이 다른 것이다. 성품의 완전은 하나님께서 그분의 아들의 희생과 봉사와 은혜를 통해서 거저 주시는 선물이다. 완전함은 그들의 생애 가운데서 그리스도의 부르심에 전심을 다하여 응답하는 모든 사람에게 가능한 것이다.

완전주의는 사람이 무한하신 하나님의 뜻에 완전히 복종할 수 있는 경지에 도달하게 되면 사람이 이 세상에 살 동안에 더 이상의 성화가 필요되지 않는 경지에까지 도달할 수 있다고 가르치며 더 나아가 일단 그런 경지에 도달하고 나면 더 이상 그 경지에서 떨어지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주장은 성경에서 전혀 찾아 볼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주장은 철저하게 배척되어야 한다.

최근에 신신학보다 더 미묘하게 가르치는 완전에 관한 이론들이 우리 교회에 침투하고 있다. 이미 널리 퍼져있는 사상으로는 우리는 죗되기 때문에 죄를 짓는다는 이론이 교회에 들어와 있다. 또한 우리가 죗된 것은 우리가 죄를 짓기 때문이 아니라는 등등.... 이런 것들은 어거스틴의 원죄의 개념을 조금 변경한 것에 지나지 않다. 그것은 우리가 타고난 본성과 개발된 우리의 품성의 차이를 구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죗된 본성을 타고 났다. 그리고 오직 그리스도의 능력을 통해서만 우리는 완전한 성품을 개발할 수 있다. 개심함이 없이는 우리는 우리의 죗된 본성의 성향을 따라서 행하게 되며 사단의 유혹에 저항하는 일에 무기력해진다. 그러나 개심하게 되면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이 우리에게 승리를 가져다 줄 수 있는 실제적인 원천이 되어서 완전한 성품을 개발할 수 있는 힘을 준다.

우리가 타락했기 때문에 죄를 지을 수 밖에 없다는 견해는 그리스도의 인성을 아담이 타락하기 전에 가졌던 본성과 타락한 후의 아담의 본성을 함께 취하고 있는 복합적인 본성으로 보는 견해를 수반하게 된다. 이러한 중도적인 입장을 취하는 견해를 분석해 보면, 보통 그러한 견해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그리스도는 타락한 아담의 육체적 본성을 물려 받았으나, 동시에 타락하지 않은 도덕적 본성을 소유하고 태어나셨다고 주장하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그러한 입장이야말로 성서적도 아니고 예언의 신의 말씀에도 부합되지 않는 가장 위험한 것이다. 이러한 사상을 지지하는 자들은 생각할 것도 없이 희랍 이교의 이원론적 이론을 받아들이고 있다는 사실을 재삼 강조하는 바이다. 재림 교회에서는 결코 영혼과 육체를 분리해서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의 건강 개혁 기별은 바로 이러한 이원론을 배격하는데에 그 바탕을 두고 있다. 어떤 인간이 육체적 본성은 타락하였으나 도덕적 본성은 타락하지 않았다는 것은 전혀 불가능한 일이다. 사람은 타락한 본성을 가지고 태어나던지 아니면 타락하지 않은 본성을 가지고 때어나는 둘 중의 어느 한 상태를 유전받게 된다. 이 두가지의 본성이 함께 존재하는 복합적 본성이란 있을 수 없다. 다시 한번 더 말하지만 본성과 품성은 전혀 별개의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타락한 인간의 본성을 가지셨으나 그분의 품성은 언제나 완전하였다. 바로 이점에서 그분은 우리의 모본이 되시는 것이다.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입었으니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 오게하셨느니라 저는 죄를 범치 아니하시고 그 입에 궤사도 없으시며. 베드로전서 2:21,22

예수께서 타락한 인간의 육체를 취하셨다는 것은 십자가를 지셨을 때 쓰러졌던 일에서 나타난다. 죄로 인해 4,000년 동안이나 연약해진 본성이 일으킨 반응이었다.

어떤 것이 성서적인 완전이 아닌지 정의해 보는 것은 참으로 중요한 일이다.

1. 완전함이란 거룩한 육체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타락되고 죗된 본성은 예수 그리스도가 오심으로 우리의 멸망할 이 육체가 불멸의 몸을 입기까지, 썩어질 몸이 썩지 아니함을 입기까지 바뀌어 질 수 없다. 이 변화를 가리켜 영화롭게 됨 (Glorification) 이라 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을 힘입어 사단의 모든 시험을 이길 수 있다. 인간의 능력을 통해서가 아니라 신성의 능력을 통해서.

2. 완전함이란 앞으로는 결코 죄를 짓지 않을 것이라는 보장을 주는 것이 아니다.
오늘의 승리가 결코 내일의 승리를 보장해 주지 못한다. 참으로 매일의 생애에서 개심의 경험을 함으로서 내재하시는 그리스도의 능력을 소유하게 될 것이다. 우리 모두의 간증과 같이 우리는 실패할 수 있다. 그러나 비록 우리가 범죄하였더라도 아버지 앞에서 우리를 옹호해 주시고 변호해 주시는 의로우신 그리스도가 계심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요한일서 2:1). 그러나 그러한 성경절이 우리가 죄를 지을 수 밖에 없다는 주장을 지지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성경은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더 이상 죄를 짓지 말라고 명하고 있다.
어떤이들은 우리에게 이런 질문을 한다. "당신은 완전합니까?" 라던가 "당신은 완전한 사람을 본적이 있습니까?" 등. 이러한 질문들에 대해서 사람은 대답할 수가 없으며, 사람이 이런 질문에 대해서 스스로 대답한다는 것은 온당치 못한 일이다. 그러나 성경은 증거하기를 욥은 완전한 사람이었다고 한다.

여호와께서 사단에게 이르시되 네가 내 종 욥을 유의하여 보았느냐 그와 같이 순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가 없느니라. 욥기 1:8

그러나 욥은 감히 자기가 완전하다고 주장하지 않았다. 진정으로 그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가령 내가 의로울지라도 내 입이 나를 정죄하리니 가령 내가 순전할 지라도 나의 패괴함을 증거하리라 나는 순전하다 마는 내가 나를 돌아보지 아니하고 내 생명을 천히 여기는구나. 욥기 9:20, 21

성도들은 하늘에서 자신들의 가치있음을 자랑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철저한 무가치함을 진정으로 깨달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을 향한 최후의 초청을 전파할 사명을 흠과 결함이 있는 성품을 가진 자들에게 맡기지 않으실 것이다. 기별을 듣는 많은 사람들이 그 기별에서 돌아서는 이유는 그들이 그 기별을 믿지 않아서 뿐만이 아니라, 기별을 전하는 사람들의 생애가 기별과 일치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세상을 향한 마지막 초청의 기별은 여전히 죄가운데 머물러 있는 사람들의 입술을 통하여 전파함으로 인해서 세상 사람들 앞에서 그 품위가 저하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모든 지구의 거민들에게 영원을 위한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이 고귀한 초청이 들려져야만 한다.

진실로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은 당신의 백성들의 완전함의 여부에 달려 있다. 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교인으로서 우리는 때때로 잘못된 이슈에 관심을 쏟을 때가 많다. 우리는 우리의 백성들로 하여금 그들의 믿음을 증거하도록 격려해 주기 위하여 심사숙고해서 짜낸 여러가지 계획들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우리 중에는 비극적인 라오디게아적 자만심에 도취되어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시는 구원에 참예하고자 하는 관심을 가진 자들이 극히 적다. 우리는 개혁을 향해서 노력을 경주해야 하는데, 이것이 하나님의 백성들의 마음 속에 이루어질 때, 하나님의 진리를 세상에 증거할 수 있을 것이다. 그 때에는 신자들에게 사명을 다하도록 촉구하는 어떤 특별히 고안된 계획이 필요없게 될 것이다. 성령의 충만함을 입는 것이 최고의 동기를 유발하는 최상의 길이다.

근래에 들어와 우리 교회가 가지고 있는 교리와 그리스도인 생활 방식에 관한 견해의 불협화음으로 인해서 연합하여야 한다는 큰 부르짖음이 일어나고 있다. 그러나 주님의 재림이 어떠한 토대 위에서 이루어지는 것인가를 이해하는 사람은 너무도 적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진리로 거룩하게 되기 전에는 예수께서 재림하실 수 없다. 이 길만이 하나님께서 요한계시록 18:1-5에 계시해 주신 큰 외침을 위하여, 주님께서 그의 백성들에게 큰 능력을 주실 수 있는 연합을 이룰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이 복음은 전 세계 방방 곡곡에 전파되어야 하며 그때야 비로소 우리의 구원자이시요 주님이신 그분이 그의 오심을 기다리는 성도들을 구원하러 오실 것이다.

우리는 복음이 모든 나라와 족속과 방언과 백성에게 전파되기 전에는 우리 주님께서 재림하시지 않을 것을 안다 (마태복음 24:14). 비록 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교회가 온 세상에 이 기별을 전파하기 위하여 괄목할만한 큰 노력을 기울여 왔지만, 아직도 이 지구 거민중 압도적인 대다수가 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교회라는 이름조차도 들어 보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또한 하나님의 백성들이 성령의 능력을 입기 전에는 그리스도의 초청이 온 세상에 전파되지 못할 것을 우리는 안다. 주님께서는 오순절에 임했던 성령의 능력보다 더욱 큰 성령의 능력이 부어질 것이라고 약속하셨다. 오순절에 성령의 능력 하에서 극적으로 온 세상에 기별이 전파되었으며, 사도 바울은 예루살렘이 멸망하기 전에 이 복음이 "온 세상에 전파된 바"되었다라고 말하였다 (골로새서 1:32).

또 우리가 아는 것은 하나님의 백성이 연합되기 전에는 성령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이다.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저희가 다 같이 한 곳에 모였더니. 사도행전 2:1

이와 같은 동일한 연합이 마지막 때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성령을 주시기 전에 필요로 되는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우리가 연합을 이룰 수 있을까? 우리는 지나간 수년간 연합을 약속하는 수 많은 설교를 들어왔다. 모든 설교자들은 예수님의 기도 가운데 나타나 있는 아름다운 기별에 대해서 말하였다.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저희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 요한복음 17:21

우리가 들어온 거의 모든 설교가 연합을 이룩할 수 있는 단 하나의 터전을 바라보도록 가르치는 일에 있어서 실패하여 왔다. 가장 중요한 것은 예수께서 기도하시는 가운데 두번이나 언급하신 이 원칙이다.

저희를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이니다. 요한복음 17:17

또 저희를 위하여 내가 나를 거룩하게 하오니 이는 저희도 진리로 거룩함을 얻게하려 함이니이다. 요한복음 17:19

하나님의 백성들이 성화되기 전에는 연합을 이룰 수 없다. 연합을 위한 모든 다른 호소는 모두 거짓된 연합에 대한 호소이다. 연합을 위한 이러한 호소는 오히려 연합을 무너뜨리게 될 것이라고 단언할 수 있다. 이러한 호소는 자주 의견의 일치를 위한 타협이나 진리에 대한 침묵을 촉구한다. 진리로 거룩해지는 경험없이 하나님께서 원하시고 기대하시는 진정한 연합이 이루어질 수 없다. 이것은 너무나 중요하기 때문에 화잇 부인은 다음과 같은 글을 남기었다.

연합은 그리스도인의 완전함의 확실한 결과이다. 성화된 생애, 85
마치 연합이 우리의 목표인 것처럼 자주 묘사되고 있는데, 연합은 우리의 목표가 아니라 그리스도인의 완전함의 결과일 뿐이다. 슬프게도 교회 안에 널리 퍼져있는 가르침인, 죄를 지으면서 살 수 밖에 없다는 철학은 분열과 파괴를 그 열매로 거두게 될 것이다. 부흥과 회개와 개혁의 호소에 대해서 교회가 범 교회적으로 응답할 때에야 비로서 연합은 결과적으로 이루어지게 될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은 바로 여기에 달려 있다. 물론 모든 교인이 그리스도의 초청에 응하지는 않을 것이다. 핍박에 의한 마지막 흔들림은 세속적이고 이기적인 모든 사람들을 제거할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에 관해서 생각할 때, 우리는 먼저 하나님의 진리를 철저히 이해하는데 촛점을 맞추어야 한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싶다. 성령이 충만한 사람들 만이 진리를 이해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각 개인에게 개인적으로나 그룹으로 성경 말씀을 연구할 것을 명하신다. 배우고 이해하고 그리고 말씀이 내포하고 있는 진리가 우리의 생애 속에서 역사하여 성화와 완전이 우리 속에 이룩되도록 성령께 간구하자.

현재 우리 중에 있는 품성의 완전함에 대한 맹렬한 공격은 오늘날 교회의 연합을 방해하는 가장 큰 장애물이 되고 있다. 사단의 감화로 생겨난 오류보다 더 치명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지연시키는 것은 없다. 큰 열성과 단순함과 겸손함으로 하나님의 약속을 높이 받들자. 우리가 우리 자신으로서는 할 수 없는 것을 그분께서 하실 수 있도록 하자. 우리가 우리의 온 마음을 주님께 드리겠다는 기도는 우리가 그렇게 할 수 없기 때문에 소용없는 기도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리스도께 우리의 생애를 맡아주시고 우리로서는 할 수 없는 것을 우리를 위해서 해주시도록 간구할 수 있다. 그분께서는 다음과 같이 약속하셨다.

사람이 감당할 것 밖에는 너희에게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신실하사 너희가 감당치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시험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케 하시느니라. 고린도전서 10:13

능히 너희로 보호하사 거침이 없게 하시고 너희로 그 영광 앞에 흠이 없이 즐거움으로 서게 하실 자. 유다서 24
그러므로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으니 이는 그가 항상 살아서 저희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히브리서 7:25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 요한일서 1:9
이로써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로 정욕을 인하여 세상에서 썩어질 것은 피하여 신의 성품에 참예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으니. 베드로후서 1:9

이기는 자에게는 ... 내가 그 이름을 생명 책에서 반드시 흐리지 아니하고. 요한계시록 3:5
그에게 허락하사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게 하셨은즉 이 세마포는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로다 하더라. 요한계시록 19:8
그 계명을 지키는 자들은 복이 있으니 이는 저희가 생명 나무에 나아가며 문들을 통하여 성에 들어갈 권세를 얻으려 함이로다. 요한계시록 22:14

또 여러 형제가 어린양의 피와 자기의 증거하는 말을 인하여 저를 이기었으니 그들은 죽기까지 자기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였도다. 요한계시록 12:11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저희는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 요한계시록 14:12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입었으니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오게 하려 하셨느니라 저는 죄를 범치 아니하시고 그 입에 궤사도 없으시며. 베드로 전서 1:21, 22
그가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을 주심은 모든 불법에서 우리를 구속하시고 우리를 깨끗하게 하사 선한 일에 열심하는 친 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디도서 2:14

우리를 양육하시되 경건치 않은 것과 이 세상 정욕을 다 버리고 근신함과 의로움과 경건함으로 이 세상에 살고. 디도서 2:12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나타나실 때까지 점도 없고 책망 받을 것도 없이 이 명령을 지키라. 디모데전서 6:14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데 까지 이르리니 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 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궤율과 간사한 유혹에 빠져 모든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치 않게 하려 함이라. 에베소서 4:13, 14

얼마나 놀라운 보증의 말씀이 이 구절들에 나타나 있는가? 화잇 여사는 이 약속들을 더욱 강조하고 있다.
그대는 그대의 죄를 자복했고 마음으로부터 멀리 던져버렸다. 그리고 그대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기로 결심하였다. 이제 그분에게로 가라. 그분께서 그대의 죄를 씻어 주시고 새 마음을 주시기를 간구하라. 그리고 그분께서 약속하셨으니 그분께서 해주실 것으로 믿으라. 정로의 계단, 49, 50

우리는 그리스도인의 승리에 대한 위대한 약속과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구속 사업이 우리 자신 속에서 이루어지도록 자신을 내어 맡기는 모든 자들에게 주시는 그리스도인의 완전에 대해 이제 겨우 깨닫기 시작하였다. 그것은 사람의 공로에 의지하는 것이 아니고 우리의 주시요 구주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를 의지하는 것이며 그의 죽으심과 우리 개개인을 위한 그분의 역사하심을 힘입는 것이다. 그러므로 결코 이것을 율법주의라고 부를 수 없다. 그리스도께서는 자기의 품성을 완전히 반사하는 한 무리의 백성을 소유하게 되실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이 영광스러운 기별을 세계 구석 구석에 전파할 임무를 맡기실 주로 젊은이들로 구성된 거룩한 군대를 가지게 될 것이다. 그들은 그들 속에 완전함을 이루시도록 그리스도께 그들의 생애를 의탁한 자들이다. 그들은 이 오묘하고 성령이 충만한 초청을 온 지구상의 거민들에게 전파할 것이다. 그들은 어린양이 그들을 어디로 인도하시던지 따라가는 자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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