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께서 지체하시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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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께서 지체하시는 이유

강 병 국

 “오 주여 언제까지 더 지체 하실지, 주 더디 오심으로 내 맘이 피곤해!…” 이 찬미를 부를 때 마다 우리는 가슴이 답답해 옴을 감출 길이 없다. 우리들은 지쳐있는 재림 교회와 그 안에 잠들어 있는 피곤한 재림 교인들을 보면서, 도대체 무엇이 어디에서 잘못된 것인지 안타까워 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그러다가 탄식하며 깨어있기를 힘쓰던 자들 중에서 까지도, 많은 사람들이 천국을 얻기 위하여 침노(열렬한 투쟁)하기를 그친지가 벌써 오래 되었다.

 흔히들 예수님의 재림은 우리 인간의 사업과는 전혀 무관한, 하나님의 절대권에 속한, 하나님의 시간표에 얽매인 사건으로 생각들을 한다. 다시 말하자면, 예수께서 오시지 않는 이유는 하나님의 시간표가 아직 그 오실 시간을 가리키지 않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정말 그러할까? 예수님께서 과연 아직 그 정해진 시간이 안 되었기 때문에 재림하시지 않는 것일까? 이 질문은 반드시 그 해답을 밝혀 주어야 하는 중대한 질문이다.

 먼저 하나님의 말씀이 밝혀주는 사실을 살펴보기로 하자. 우리는 요한 계시록 6장에 나타나는 다섯째 인에서 심판을 베풀어 자기들의 피를 신원하여 달라고 애소하고 있는 제단 밑의 의인들의 부르짖음을 읽을 수 있다. 그 이후 여섯째 인에서 “그들의 진노의 날에 누가 능힌 서리요?”라고 하는 말씀이 발하여진 후, 7장에 가서 사방 바람이 놓이고 하나님이 진노의 날이 시작되기 전에 하나님의 마지막 남은 무리가 인침을 받는 장면이 나오는 것이다. 그들을 계시록 14장에서는 흠이 없는 정결한 자들인 14만 4천이라고 묘사하고 있다. 이 무리가 생겨나기 전에는 하나님께서 마지막 환란과 황폐의 바람을 놓으실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4만 4천을 마지막 시대에 살아있을 무리일 필요가 없다고 말하는 이야기들을 듣게 될 때, 답답한 마음 금할 길이 없다. 그들은 어린양이 어디로 인도 하든지 따라가는 자들인데, 1844년에 지성소에 들어가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거룩한 곳까지 따라 들어가는(영적인 경험) 정결의 경험, 곧 지성소의 경험을 가지는 자들로 볼 수 있다. (각 시대의 대쟁투 하권, 193-196 참조).

 그 당시에 대 실망 후, 조롱과 핍박을 무릅쓰고 지성소 교리를 받아들이고 정결의 경험에 들어가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또한 계 19:7절을 보면 “우리가 즐거워하고 크게 기뻐하여 그에게 영광을 돌리세 어린양의 혼인 기약이 이르렀고 그 아내가 예비하였으니” (품성 준비를 말함) 라고 말한 후에, 11절부터 드디어 백말을 타시고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천사들의 군대를 대동하시고 재림하시는 만왕의 왕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의 광경을 읽을 수가 있게 된다. 다시 강조해 말한다면, 계시록은 주님의 재림 전에 마지막 세대가 준비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명백히 하고 있는 것이다.

 히브리서 11장 39, 40절에도, 믿었으나 약속을 받지 못하고 죽은 이전 세대 의인들이 다음 세대의 헌신이 아니면 온전함을 이루지 못하게 된다는 흥미 있는 말씀이 기록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우리가 잘 아는 사도행전 3:19, 20절에서 사도 베드로는 “그러므로 회개하고 돌이켜 너희 죄 없이 함(blotting out of sins - 죄의 도말을 말함, 필자 주)을 받으라 이같이 하면 유쾌하게 되는 날이 주 앞으로부터 이를 것이요 또 주께서 너희를 위하여 예정하신 그리스도 곧 예수를 보내시리니”라고 말씀하였다. 즉,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이 있기 전에 죄의 도말의 경험을 가지는 한 세대가 준비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들을 가리켜서 우리는 “마지막 세대”라고 부르는 것이다.

 예수님의 재림에는 바로 이러한 무리가 생겨나야 한다는 조건이 붙어있다. 그렇기 때문에 마귀가 작은 뿔의 세력 곧 교황권을 일으켜서 그러한 죄의 완전한 정결의 경험을 하는 백성들이 일어나지 못하도록 커다란 기만의 역사를 그토록 오랫동안 일으켜 왔으며, 지금까지도 모든 교회들 속에 스며들어 있는 바벨론의 오류인 음녀의 포도주의 잔재들, 즉 잘못된 가르침들을 통하여 이 마지막 세대가 일어나지 못하도록 막고 있는 것이다. 바로 그것이 불법의 비밀인 것이다. 이러한 사실을 알고 나서, 바로 우리가 몸담고 있는 이 마지막 남은 교회인 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 교회 안에서까지도 완전한 정결의 경험, 예수님의 온전하신 순종의 생애를 그대로 닮아야 한다는, 죄를 완전히 승리하는 마지막 세대가 되기 위하여 우리가 부르심을 받았다고 하는 개념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을 뿐 만 아니라 오히려 반대하여 일어서는 다수를 보면서, 불법의 비밀이 우리에게 까지 스며들어 왔다는 사실 앞에 경악을 금치 못하게 되는 것이다.

 증언 보감 2권, 388페이지에서 화잇 부인은 다음과 같은 영감의 글을 우리에게 들려준다. “남은 교회는 천사들이 살펴보기를 원하고, 선지자들과 왕들과 의인들이 깨닫고자 바라던 오묘들을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기별을 통하여 세상에 전할 것이다. 선지자들은 그 사건들에 관하여 예언 하였고 그들이 예언한 것을 깨닫고자 열망하였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특권이 주어지지 않았다. 그들은 우리가 보는 것을 보고 우리가 듣는 것을 듣고자 열망 하였다.”

 우리는 성소 기별의 빛을 받은 유일한 단체이다. 거기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을 것이 아닌가?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역사의 마지막 그 결정적인 클라이막스에서 생산해 내려고 계획된 바로 그 최종적인 완성품들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이 일은 하나님의 명예가 달린 일이요, 하나님의 성품과 율법이 옹호함을 받게 될 수 있는 유일한 일인 것이다. 마지막 세대는 구원의 재창조의 역사에 있어서, 가장 타락한 세대가 가장 아름답게, 그 잃어버렸던 하나님의 형상으로 회복됨을 입는 최종작품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각 시대의 당신의 교회를 위하여 특별한 진리와 특별한 사업들을 각각 가지고 계시다.  세상 적으로 지혜 있고 능란한 사람들에게는 숨겨진 진리가 어린 아이와 같고 겸손한 자에게 드러난다. 진리는 극기를 요구한다. 진리에는 싸워야 할 투쟁이 있고 이겨야 할 승리가 있다. 처음에는 진리의 옹호자가 극히 적다. 저들은 세상의 위인들과 세속화된 교회로 말미암아 반대와 멸시를 받았다. 유대 나라의 교만과 형식주의를 책망하기 위하여 고군분투한 그리스도의 선구자 침례요한을 보라… 이 세상 지혜의 대 걸작품인 큰 종교(천주교)를 대항한 마틴 루터를 보라…… 형식주의와 육욕주의와 무신주의가 성행하는 가운데서 그리스도와 그의 의를 전파한 요한 웨슬리를 보라……

 “옛날과 마찬가지로 오늘날에 있어서도 시대에 관한 특별한 진리가 교회 당국자들에게서는 발견되지 아니하고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을 믿기에 너무 학식 적이나 지혜가 부족한 남녀들에게서 발견되고 있다.

 “겨자씨 비유는 마지막 날(Last Generation - 마지막 세대, 필자 주)에 있어서 매우 현저하게 또는 아주 영화롭게 성취될 것이다. 그 작은 씨가 나무가 될 것이다. 경고와 은혜의 마지막 기별은 「여러 나라와 족속과 방언」(계 14:6-14)으로 보급될 것이요, 하나님께서 「이방인 중에서 자기 이름을 위할 백성을 취하」(행 15:14)실 것이다. 그리하여 온 세상이 「그의 영광으로 환하여」(계 18:1)질 것이다.” (실물교훈, 71-73)

 마가복음 4장 가운데 우리 주님께서 천국을 씨 뿌리는 비유와 겨자씨의 비유로 설명하신 장면이 나온다. “땅이 스스로 열매를 맺되 처음에는 싹이요 다음에는 이삭이요 그 다음에는 이삭에 충실한 곡식이라. 열매가 익으면 곧 낫을 대나니 이는 추수 때가 이르렀음이니라.”(막 4:28, 29)

 하나님의 의의 길은 돋는 햇볕 같아서 점점 빛나서 원만한 광명에 이르는(잠 4:18) 것이다. 하나님의 구원의 빛은 점차적인 단계로 발전해 나아온 사실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마틴 루터에게 한꺼번에 모든 진리를 회복해야 할 짐이 주어졌었더라면 그는 아마 기절 하였을 것이다. 구원의 지식은 점차적으로 태양이 떠오르는 것같이 우리에게 다가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사는 이 시대에 와서는 마지막 이삭에 충실한 곡식을 생산해 내기 위한 모든 빛이 다 주어져 있다. 하나님의 구속의 최종 결정체인 마지막 세대를 생산해 내기 위하여 마지막 선지자까지 주시지 않았는가? 우리와 같은 특권과 빛을 받았던 세대가 과거에 또 어디에 있었던가?

 “만일 공언하는 그리스도인들이 저들의 의견의 교만과 최상 권을 차지하려는 욕망들을 제쳐놓고 그들의 견해를 성경과 조심스럽고 기도하는 마음으로 비교할 것 같으면, 지금 오류의 흑암 가운데서 방황하고 있는 교회들에게 빛의 홍수가 이르러 올 것이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감당하는 속도에 따라서 주님께서는 그들에게 교리의 잘못들이나 그들의 성품의 흠들을 나타내 보여 주실 것이다. 각 시대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을 일으키셔서 그들의 시대에 필요한 특별한 사업을 행하도록 자격을 주셨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들 중 아무에게도 세상에 주어야 할 모든 빛을 맡기시지는 않으셨다. 지혜는 그들과 함께 끝나는 것이 아니다. 루터가 죽음으로 개혁 사업이 끝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니었다. 웨슬리가 죽음으로 기독교회의 신앙이 옛날을 답습하는 형편이 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니다. 개혁 사업은 점진적인 것이다. 우리의 위대한 지도자께서는 앞으로 나아가라, 승리로 나아가라고 명령하신다.”


 “우리는 우리의 조상들이 행한 같은 일을 함으로 하나님으로부터 용납을 얻고 존귀를 얻게 되지 못할 것이다. 우리는 그들이 진리를 파헤친 같은 위치에서 있지 말아야 한다. … 루터와 웨슬리는 그들 시대의 개혁자였다. 그 개혁 사업을 전진시키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의무이다. 우리가 빛에 유의하기를 게을리 하면 어두움에 빠질 것이다. 그 어두움의 정도는 빛을 거절한 정도에 비례할 것이다. 하나님의 선지자는 마지막 시대에 지식이 증가할 것이라고 말하였다. 겸손히 찾는 자에게 새로운 진리들이 펼쳐질 것이다.”(Spirit of Prophecy, 4권, 185-186)

 우리는 루터와 웨슬리와 여러 다른 개혁자들이 쌓아 놓은 기초위에 더 밝은 빛을 따라 진보한 백성들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그들이 가졌던, 그리고 강조했던 성화의 경험에 머물러 있을 수가 있단 말인가? 자라나서 이삭에 충실한 곡식까지 성장하지 않고 머물러 있기를 고집하는 나무는 죽은 나무이다. 각 시대 마다 점진적인 진리가 있어 왔고 성령께서는 새로운 의무와 사업에 대한 깨달음을 주셨다. 우리가 사는 이 마지막 시대야말로 진리의 씨앗이 그 최종의 결실을 보게 되는 것이요, 최후의 승리를 얻게 되는 것이다.

 화잇 부인은 우리가 진리로 변화되고 우리의 할 일을 성령의 능력으로 행하였을 것 같으면 벌써 예수께서 오셨을 것이며 우리는 하늘에 가 있었을 것이라고 여러 번 강조하여 말씀하였다. (증언보감 3권, 65; 가려뽑은 기별 1권, 79-82을 참조하십시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을 사모할 뿐만 아니라 촉진시키는 것은 모든 그리스도인의 특권이다. 주의 이름을 공언하는 그리스도인들이 그분께 영광을 돌리는 열매를 맺는다면 온 세상에 얼마나 신속히 복음의 씨가 뿌려질 것인가. 신속히 마지막 추수가 이루어진다면 그리스도께서 귀중한 곡식을 거두기 위해 오실 것이다.” (증언보감 3권, 197)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촉진시킬 수가 있다. 그것은 다름이 아닌 우리의 품성의 완성에 있는 것이다. 그 분께 영광을 돌리는 충실한 열매를 맺는 일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재림은 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 교회 교인들의 변화와 준비의 조건에 달려있는 것이다. 우리가 바로 이 세상의 비극과 참화를 이토록 연장시키는 장본인들이다.

 성품의 변화란 곧 하나님의 계명을 온전히 순종하는 사람이 된다는 말이다. 왜냐하면 계명은 마음으로 지키는 것이기 때문에 그러하다. 산상보훈(영한대역)127페이지에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말씀을 발견할 수 있다. “예수님께서는 청중들에게,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은 곧 자신들 속에서 그리스도의 품성을 재현하는 것임을 계속해서 가르치셨다.” 그러므로 셋째 천사의 기별이 “성도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저들은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 라는 말로 그 끝을 맺고 있는 것이다. 그 사람들은 영원한 복음 즉 에덴에서부터 죄인의 회복을 약속하신 그 복음의 능력으로 하나님을 전적으로 순종하는 사람들이 된 것이다.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일은 예수께서 가지셨던 믿음을 갖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아버지의 계명을 지키셨다.

그러므로 그분에게는 사단이 이용할 수 있는 죄가 전혀 없었다. 그것은 환란의 때에 서게 될 사람들에게 반드시 나타나야 할 상태이다.” (대쟁투 하권 492). 다시 말하자면 마지막 세대는 예수 그리스도의 승리의 생애를 우주와 마귀 앞에 전시해보여서, 하나님의 구속의 경륜의 능력을 나타내고 계명을 지킬 수 없다는 마귀의 고소가 거짓이라는 사실을 보여 줌으로,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을 변호하는 역할을 감당하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은 우리 자신 안에 하나님의 성품을 드러내는 것이요, 그렇게 함으로 그분을 알게 하는 것이다.” (원고 16, 1890; 7SDABC, 979) 우리는 세 천사의 기별을 전하는 백성들이다. 우리는 세상을 향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그의 심판하실 시간이 이르렀다고 외치고 있는 사람들이다. 이제는 하나님의 잃어버렸던 형상이 우리 속에 회복되는 일, 즉 하나님의 성품이 다시 제 위치를 차지하게 됨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시간이 이르렀다는 것이다. 왜 이 기별이 마지막 세대에게 주어지고 강조 되었을까? 그 이유는 마지막 제일 잘 익은 열매를 맺어야 할 때가 되었다는 것이다. 사단에 의하여 망쳐진 인간의 성품이 드디어 원 위치로 회복되는 모습이 마지막 세대를 통하여 온 우주 앞에 전시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돈을 사랑하는 욕심들과 부정한 생각을 품는 우리의 동기들과, 서로를 질시하는 미워함 들과, 자기를 과시하려는 교만한 정신들, 자기에게 영광을 돌리면서 인정 받으려하는 마음들과, 세상과 세상에 있는 것들인, 쾌락과 정욕들을 사랑하는, 우리들의 아직 정리되고 굴복되지 않은 죄들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 하시기를 지체하시는 것이다. 형제자매들이시여 십자가의 주님을 바라보자. 그 분의 고통과 사랑은 우리의 모든 죄악들을 포기하고 우리로 하여금 그분 앞에 완전히 굴복하게 하고도 남는 능력을 주지 아니하는가!

 “또한 나는 많은 사람들이 환란의 때에 성소에 대제사장이 계시지 않은 채로도 주의 목전에서 살 수 있도록 되어야 한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인을 맞고 환란의 때에 보호 받을 자들은 예수의 형상을 충만하게 반사하여야 한다. 나는 많은 사람들이 그토록 요구되는 준비를 등한히 하면서도 자신들이 주의 날에 설 수 있고 그의 목전에서 살도록 합당하도록 되기 위하여 ‘늦은 비’와 ‘새롭게 되는 때’를 기대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환란의 때에 피난처를 찾지 못함을 보았는지! (초기문집, 74-75)

 “하나님께서 가장 큰 시련의 기간에 당신의 자녀들에게 베푸시는 사랑은 그들이 가장 순조롭고 번영하던 때의 주신 것과 꼭 같이 강하고 부드럽다. 그러나 그들을 풀무불 속으로 들어가게 하는 것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그들이 그리스도의 형상을 완전히 반사하기 위하여서는 그들에게 있는 세속적인 것들이 불타 버려야 하기 때문이다.” (대쟁투 하권, 490)

왜 예수님의 재림이 지체되고 있는가? 앞의 성경 절들과 예언의 신의 문구들이 충분하게 설명했을 줄로 믿는다. 이러한 심각한 판국에, 재림이 지체 될 때는 그저 인내하고 잘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는 식의 말들은 그 중요한 핵심을 이해하지 못하는 생각에서 온 것이다. 바로 우리 자신들의 죄들이 예수 재림을 지체시키고 있는 것이다. 오, 형제자매들이시여 하루 속히 주님을 지성소에서 나오시게 도와 드리도록 합시다!

 “그리스도께서 죄짓지 않도록 자기를 도울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지 않는 자들은 하나님의 왕국에 들어가게 하는 믿음을 가지지 않은 것이다.” (R & H, 3-10, 1904)

 “구속함을 받았다는 것은 죄짓기를 그쳤다는 것을 의미한다.” (R & H, Vol 4, 221)
 “하나님의 자녀들에 대한 당신의 이상은 가장 높은 인간의 생각이 도달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높다.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 이 명령은 한 허락이다. 구속의 경륜은 우리가 사단의 권세에서 완전히 회복됨을 계획한다. 그리스도께서는 항상 통회하는 영혼을 죄에서 분리하신다. … 우리의 이상은 그리스도와 같이 되는 것이다. 인자되신 그리스도의 생애가 완전하셨던 것처럼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도 저희 생애가 완전하여야 한다.” (시대의 소망 2권, 26-27)

 “예수께서는 사단의 궤변에 응하실 아무 것도 가지시지 아니하셨다. 그는 죄를 용납하지 아니하셨다. 그는 생각까지라도 시험에 굴복하지 아니하셨다. 우리도 그리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인성은 신성과 연합되었다. … 하나님께서는 우리 안에 있는 믿음의 손을 인도하여 그리스도의 신성을 붙잡게 함으로 우리로 하여금 완전한 품성을 얻게 하려고 하신다.” (시대의 소망 1권, 152)

 “참된 신앙은 그리스도를 모방하는 것이다.” (R & H, Vol. 3, 179)

 생각해 보라! 마지막 세대는 중보자 없이도 하나님의 목전에 살 수 있는 준비를 갖추어야 할 자들이라고 선지자는 누누이 강조하고 있지 않는가? 지금 경험하고 있지 않고 있으며 또한 우리가 얻기를 게을리 하고 있는 한 가지 경험을 얻어야 한다고 강조하신 대쟁투 하권 492페이지의 말씀을 주의깊이 명상하여 보자. 더 이상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이 지체되도록 막고 서 있는 자들이 되지 말아야겠다.

 “하나님께서 특별히 그 시대에 적합한 진리를 증거 하시기 위하여 사용하시는 모든 사람은 반대를 당하게 되어있다. 루터의 시대에는 그 시대에 특별히 요긴한 현대진리가 있었다. 그와 마찬가지로 오늘날의 교회에도 현대진리가 있다. 모든 것을 당신의 뜻을 따라 행하시는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을 다양한 환경 아래 두시고, 그들이 생활하는 시대와 그들이 처한 상황에 적합한 의무들을 수행하기를 바라신다. 만일 그들이 받은바 진리를 존중할 것 같으면, 더욱 넓은 진리의 시야가 그들 앞에 열려질 것이다. 그러나 진리는 법왕 교도들이 루터를 반대했던 것처럼 오늘날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환영을 받지 못하고 있다. 오늘날도 옛날처럼 하나님의 말씀 대신에 사람들의 이론과 전설을 받아들이는 동일한 경향이 있다. 이 시대를 위한 진리를 증거 하는 사람들은 초기의 개혁자들보다 더 큰 환영을 받을 것이라고 기대해서는 안 된다. 진리와 오류, 그리스도와 사단과의 대쟁투는 이 세상 역사의 종말이 가까울수록 더욱 격렬해질 것이다. (대쟁투 하권, 230)

 예수께서 왜 지체하시고 계신가? 이렇게 오래 우리가 세상에 머물러 있게 된 것은 결코 하나님의 계획도 뜻도 아니다. 지금은 하나님의 능력과 우리의 굴복으로, 신속히 구속사업의 최종 열매인 품성의 완성을 이룰 때이다. 그때에, 계명을 지킬 수 없다는 마귀의 기만이 폭로되고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음을 지키는 남은 무리가 준비되어, 드디어 예수께서 당신의 형상을 충만히 반사하는 자기 백성들을 당신의 것이라고 주장하시기 위하여 하늘 구름을 타시고 재림하실 것이다(실물교훈, 61 참조). 우리가 다 그 자리에 있도록 최선을 다하여 경주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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