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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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세대
M.L. 앤드리어슨

  복음이 인류 안에서, 또한 인류를 위해서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최종적으로 드러나는 일은 여전히 장래에 속한 일이다. 그리스도께서는 길을 보여 주셨다. 그분은 인간의 육체를 취하시고 그 육체 안에서 하나님의 능력을 보여주셨다. 사람은 그분의 모본을 따라야 하며,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신 것이 무엇인지를 증명해야 한다. 그분은 그분께 굴복하는 모든 인류 안에서 그 일을 이루실 수 있으시다. 세상은 그러한 사람들이 나타나기를 기다리고 있다. 로마서 8:19 참조. 그런 일이 일어날 때 끝은 올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계획을 성취시키실 것이다. 그분은 그분 자신이 진실하시고 사단은 거짓말쟁이라는 것을 보여주실 것이다. 그분의 정부는 옹호되어져서 더욱 굳게 설 것이다.

  오늘날 세상에서는 성결함에 관한 많은 발작적인 교리들이 가르쳐지고 있다. 한편에는 죄로부터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부인하는 자들이 있고, 다른 편에는 사람들 앞에서 자신들의 성결을 의기양양하게 주장하며 자신들이 죄가 없다는 것을 우리로 믿게 하려는 자들이 있다. 첫 번째 부류 가운데는 불신자들과 회의론자들뿐만이 아니라 죄에 대한 승리를 확신하지 못하면서 죄와 타협하는 생애를 사는 교인들이 있다. 다른 부류 가운데는 죄나 하나님의 성결하심에 대한 정확한 개념을 갖지 못하면서 그 영적 시야가 그들 자신의 모자람에 대해서는 볼 수 없으면서도 자신들이 완전하다고 믿고, 또 자신들의 종교에 대한 개념과 그들 자신의 진리와 의에 대한 이해가 말씀에 나타난 것보다 더 우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누가 더 큰 오류를 범하고 있는지 판별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성경은 성결에 대해서 논란할 여지가 없는 것임을 말해주고 있다.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로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강림하실 대에 흠 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살전 5:23).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좇으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히 12;14).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의 거룩함이라”(살전 4:3). 여러 가지 형태로 쓰인 헬라어 하기오스(Hagios; αγιος)는 거룩하게 하다, 거룩하다, 거룩, 성화케 하다, 성화의 뜻으로 번역이 된다. 그 낱말은 성소의 두 칸에 대해서 사용되고, 하나님을 위해서 따로 떼어놓았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사용된 말과 동일한 낱말이다. 성화된 사람은 그의 생애가 하나님께 헌신한 사람이며, 그분을 위해 따로 성별된 사람을 의미한다.

용서와 정결

  구원의 계획은 죄의 용서뿐만 아니라 완전한 회복을 포함한 것이어야 한다. 죄로부터의 구원은 죄의 용서 이상을 의미한다. 용서는 죄를 전제로 삼으며, 죄를 범한 것을 그 조건으로 한다. 성화는 죄로부터의 분리이며, 죄의 세력으로부터 건짐을 받는 것과 그 죄를 이기는 것을 말한다. 용서는 죄의 결과를 완화시키기 위한 수단이며, 성화는 완전한 승리를 위한 능력의 회복이다.

  어떤 질병들처럼 죄는 사람을 약하고 낙담되며, 무기력한 형편 가운데로 몰아넣는다. 그는 자신의 마음을 잘 조정할 수 없고, 그의 의지는 꺾이며, 자신이 옳은 것으로 아는 것을 할 수 없도록 한다. 그는 책임추궁을 받아야 할 사람이 자신이라는 것을 알며, 쓰라린 후회가 그 영혼을 채운다. 육체적 질병에 양심의 고민이 첨가된다. 그는 자신이 죄를 범했으며, 자신이 책임추궁 받아야 할 사람임을 안다. 그에게 아무도 동정의 눈길을 보내지 않을 것인가?


  이제 복음이 그에게 동정의 눈길을 보낸다. 복된 소식이 그에게 전파된다. 그의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같이 붉을지라도 양털같이 되리라. 모든 죄가 용서를 받았다. 그는 “구원함을 받았”다. 얼마나 놀라운 구원인가! 그의 마음은 평화를 찾았다. 더 이상 그의 양심이 그를 괴롭히지 않는다. 그는 용서를 받았다. 그의 죄는 깊은 바다 가운데 던져졌다. 그의 마음은 하나님의 자비와 선하심에 대한 찬양으로 샘솟는다.

  고장난 배가 항구로 인도함을 받을 때 그 배는 안전하긴 하지만 건전한 것은 아닌 것처럼 사람도 “구원함을 받”은 것은 사실이지만 아직 건전한 것은 아니다. 그 배가 다시 출범을 하기 전에 고장난 곳을 고치는 것이 필요한 것처럼 사람도 완전한 회복이 있기 전에 재건이 필요한 것이다. 이러한 회복의 과정이 성화라고 불리우며, 몸과 영혼과 영의 완성된 형태까지도 포함한다. 그 사업이 완수될 때 사람은 “거룩하”고, 완전히 성화되었으며,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한 것이다. 세상이 바라보고 있는 것은 복음이 인류를 위해서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성경에서 성화는 그 성화케 하는 과정과 그 과정의 완성된 결과 둘 다를 말하는 것이다. 그 이유 때문에 “형제들”은 그들이 비록 완전을 획득한 것은 아니지만 거룩하여지고 성화되었다고 불리어진 것이다(고전1:2; 고후1:1; 히3;1 참조). 고린도인들에게 보내는 편지들을 한번 쭉 훑어보면 거기에 언급된 성도들이 과오가 있었던 이들임을 이내 알게 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입은 자들”로 언급되었다. 그 이유는 완전한 성화는 하루나 일년의 사업이 아닌 평생의 사업인 때문이다.


  성화는 어떤 사람이 회심하는 순간에 시작되어 평생을 통해 계속된다. 매번 거두는 승리마다 그 과정을 촉진시킨다. 이전에 자신들을 괴롭히고 정복해왔던 한두 가지 죄를 정복하지 못한 그리스도인들은 거의 없다. 담배를 피우던 습관에 노예가 되었던 많은 사람들이 그 습관을 끊고 승리를 얻어 기쁨 가운데 살고 있다. 담배는 이제 더 이상 유혹거리가 되지 않는다. 더 이상 그의 손이 담배를 찾아 더듬거리지 않는다. 그는 승리를 얻은 것이다. 그 점에 있어서 그는 성화된 것이다. 그가 하나의 나쁜 습관에 대해 승리를 거둔 것처럼 모든 죄에 대해서도 승리를 얻을 수 있다. 그 사업이 완성되고 그가 교만심, 야심, 세상을 사랑하는 죄 등의 모든 악에 대해 승리를 거둘 때 그는 승천을 위해 준비된 것이다. 그는 모든 점에 있어서 시험을 당해왔다. 악한 자가 그에게 왔으나 아무 흠도 발견할 수 없게 되었다. 사단은 그에게 더 이상 아무 시험거리를 제공하지 못한다. 그는 그 모든 시험들을 이기었다.

그는 하나님의 보좌 앞에 허물없이 선다. 그리스도께서는 그에게 당신의 인을 치신다. 그는 이제 안전하고 건전하다. 하나님께서는 그 안에서 당신의 사업을 완성하셨다. 하나님께서 인류를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아주 완전한 것이다.

  마찬가지로 이 땅에 사는 마지막 세대의 사람들에게 있어서도 그러할 것이다. 그들을 통해 하나님께서 인류를 위해 하실 수 있는 것의 최종적인 표본이 주어질 것이다. 그분께서는 선조들의 죄를 물려받은 약한 자들 중에서 가장 약한 자들을 취하셔서 그들 안에서 당신의 능력을 보이실 것이다. 그들은 모든 시험 가운데 처하게 될 것이나 굴복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이 세상이 보기를 원해왔고 하나님께서 준비시키고 계셨던 표본인 죄 없이 사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줄 것이다. 복음이 참으로 사람을 끝까지 구원할 수 있다는 것이 모두에게 명확해질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하신 말에 진실하시다는 것이 발견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마지막 날에 당신께서 온 우주에 당신의 사랑과 능력과 공의의 과시물로서 그들 안에서와 그들을 통해서 역사하신 “적은 무리”인 남은 자들을 가지실 것이다

  세상 역사를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충실한 백성들을 가지고 계셨다. 그들은 큰 환란과 고통을 참아냈다. 그러나 사단의 극심한 핍박 속에서라도 사도 바울이 말한 것처럼 그들은 “의를 행하”였다. 그들은 “돌로 치는 것과 톱으로 켜는 것과 시험과 칼에 죽는 것을 당하고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유리하여 궁핍과 환란과 학대를 받았으니 (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치 못하도다) 저희가 광야와 산중과 암혈과 토굴에 유리하였느니라”(히 11:33, 37, 38).

  믿음으로 인하여 순교자가 된 많은 충실한 증인들의 무리와 더불어 하나님께서는 마지막 날에 당신께서 온 우주에 당신의 사랑과 능력과 공의의 과시물로서 그들 안에서와 그들을 통해서 역사하신 “적은 무리”인 남은 자들을 가지실 것인데, 만일 우리가 이 땅에서 그리스도의 경건한 생애를 살며, 갈바리에서의 그분의 지극하신 희생을 본받는 생애를 살 때 하나님께서 사람 안에서 하실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온 세대에게 보여주는 가장 절대적이고도 결론적인 과시가 될 것이다.


  하나님의 성화케 하시는 능력이 가장 완전하게 드러나게 되는 것은 이 세상에 사는 마지막 세대를 통해서이다. 그 능력의 현시가 바로 하나님의 성품을 옹호하는 것이 된다. 그것이 바로 사단이 그분을 대항하여 고소한 모든 참소들을 무력하게 하는 것이다. 마지막 세대 가운데서 하나님께서는 옹호를 받으시고 사단은 패배한다. 아마 좀 더 많은 설명을 필요로 할런지도 모르겠다.

하늘의 반역

  하늘에서 있었던 반역과 우주에 파고든 죄는 하나님과 천사들 모두에게 아주 두려운 경험이었음에 틀림없다. 그때까지 모든 것은 평화와 조화를 갖춘 것이었다. 불화란 알려지지 않았으며 오직 사랑만이 풍성했다. 그때 거룩하지 못한 야망이 루스벨의 마음을 선동시켰다. 그는 자신이 지극히 높으신 분처럼 되려고 결정을 하였다. 그는 자신의 보좌를 하나님의 별들 위에 높일 것이었다. 그는 “북극 집회(회중)의 산 위에 좌정하리라”(사 14:12-14)고 선언하였다. 이같은 선언은 하나님을 무시하고 그분의 자리를 찬탈하려는 시도였다. 그것은 바로 전쟁을 선언한 것이었다. 하나님께서 좌정하신 곳에 사단이 앉으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 도전을 받아들이셨다…….

  “하늘에 전쟁이 있으니 미가엘과 그의 사자들이 용으로 더불어 싸울새 용과 그의 사자들도 싸우나”(계 12:7). 그 결과는 미리 볼 수 있는 것이었다. 사단과 그의 사자들은 “이기지 못하여 다시 하늘에서 저희의 있을 곳을 얻지 못한지라 큰 용이 내어 쫓기니 옛 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사단이라고도 하는 온 천하를 꾀는 자라 땅으로 내어 쫓기니 그의 사자들도 저와 함께 내어 쫓기니라”(8, 9절).

  사단이 패배하기는 했지만 멸망당하지는 않았다. 그의 반역의 행위를 통하여 그는 하나님의 정부에 과오가 있다고 선언했으며, 자신의 보좌를 세움으로 자신의 지혜나 공의가 하나님보다 더 크다고 주장했다. 하나님께서는 사단이 자신의 이론을 전개할 기회를 주지 않으실 수도 있으셨다. 그러나 천사들과, 후일에 사람들의 마음에 품을 수 있는 모든 의심을 제거하기 위해 하나님께서는 사단으로 하여금 자신의 일을 수행하도록 하셨다. 그래서 사단은 살도록 허용되었으며 결국은 그의 정부를 세우는데 이르렀다. 마지막 6,000년의 기간 동안 그에게는 자신이 기회를 가질 때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지 온 우주에 과시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루스벨

  하늘에서 루스벨은 덮는 그룹 중 하나였었다. 겔 28:14 참조. 덮는 그룹이라 함은 지성소의 법궤 위에 시은좌(속죄소)를 덮은 두 천사들을 말함이다. 이것이야 말로 천사가 얻을 수 있는 가장 높은 직무임에 틀림없는데, 이는 법궤와 시은좌는 하나님의 직접적인 임재의 장소였기 때문이었다. 이 천사들은 율법의 특별한 수호자들이었다. 그들은 율법을 지켰는데, 루스벨이 바로 그 둘 중 하나였다는 말이다.

  에스겔 28:12은 루스벨에 관한 아주 흥미로운 말을 한다. “너는 완전한 인이었고 지혜가 충족하며 온전히 아름다웠도다” “너는 완전한 인이었”다는 표현이 그리 명백한 표현은 아니다. 여러 가지 번역을 할 수 있는데, 그 속에 내포된 의도는 사단이 타락하기 전에 가졌던 높은 지위와 특권을 보여주기 위한 것임이 명백한 듯 하다. 말하자면 그는 국무총리였고, 인을 지키는 자였었다.

  이 세상의 정부에서 어떤 문헌이나 법률이 유효한 것이 되기 위해서는 거기에 인이 찍혀져 있어야만 했는데, 하나님의 정부에서도 그것은 마찬가지였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에게 할 일을 맡겨주시는 것과 마찬가지로 천사들에게도 각각 할 일을 분담시키셨다. 한 천사는 불을 다스리는 일을 맡았고(계 14:18 참조), 다른 천사는 물을 다스리는 일을 맡았으며(계 16:5), 다른 천사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인”(계 7:2)을 책임 맡고 있다. 위에 언급한대로 에스겔 28:12의 표현이 그리 명백하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데, 어떤 이는 다음과 같이 번역을 했다. “너 법에 인을 치는 자여”라고. 만일 이 지위가 무엇을 주장할 수 있는 위치이고, 루스벨이 국무총리이자 인을 지키는 자였다면 그가 자신의 처소를 떠났을 때 하나님의 인의 자리에 자신의 표를 대치하기를 원했는지에 대한 또 다른 이유를 제공해 준다.

  이 사단이 율법에 대항한 매우 열렬한 반대를 해온 것은 아주 명백한 사실이다. 만일 하나님의 율법이 그분의 품성의 사본이며, 그 품성이 사단의 품성과 정반대의 것이라면 사단은 그 율법에 의해 정죄 받는 입장에 서게 되는 것이다. 그리스도와 율법은 하나이다. 그리스도는 율법이 생활로 표현된 것이며, 율법이 육신이 되신 것이다. 이 때문에 그분의 생애는 하나의 견책이 되신다. 사단이 그리스도를 대항하여 싸움을 건 것이었다. 그가 율법을 미워했을 때 그는 그리스도도 미워한 것이었다. 그리스도와 율법은 불가분의 관계이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상에서 돌아가셨을 때 그분은 그분의 생애에서 율법을 지킬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셨다. 사단은 그리스도를 죄 가운데 빠뜨리는 일에 성공하지 못했다. 아마 그가 성공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만일 그가 그리스도로 하여금 당신 자신을 구하기 위하여 당신 자신의 신적 능력을 사용하도록 할 수만 있었다면 그는 큰 성공을 거두었을 것이었다. 만일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신성을 사용하셨다면 사단은 하나님께서 사람으로 하여금 율법을 지킬 수 있도록 하셨다는 얘기는 거짓말이라고 주장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사단은 패배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최후까지 동일한 전법을 계속 사용하는 것이다. 유다는 그리스도께서 당신 자신을 구원하시기 위해 당신의 신적 능력을 사용하셔서 자유케 되시기를 소망했다. 십자가상에서도 그리스도께서는 “그가 다른 사람은 구할 수 있었으나 자신은 구하지 못하는도다”란 야유를 들으셨다. 그러나 그분은 실패하지 않으셨다. 그분께서 당신 자신을 구원하실 수 있으셨으나 그렇게 하지 않으셨다. 사단은 속이 상했다.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는 그리스도로 하여금 죄를 짓게 하지 못한 채로 그분이 돌아가셨을 때 자신의 운명이 인쳐진 것을 알았다. 그리스도께서는 돌아가실 때에 그분은 승리자이셨다.

그러나 사단은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그리스도와의 싸움에서는 패배하였으나 사람들과의 싸움에서는 성공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돌아가서 그 여자의 남은 자손 곧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로 더불어 싸우려고 바다 모래 위에 섰”(계 12:17)다. 만일 그가 그들을 이길 수 있다면 패배하지 않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하나님의 증명

  이 땅에 사는 마지막 세대를 통하여 무엇인가 증명하시려는 하나님의 의도는 백성들에게나 하나님 양편에 있어서 상당히 큰 의미가 있다. 하나님의 율법이 참으로 지켜질 수 있을까? 이것이 핵심적인 의문이다. 많은 사람들은 지켜질 수 있다는 것을 부인하고, 다른 이들은 유창하게 지켜질 수 있다고 말한다. 계명을 지키는 전반적인 문제가 다루어질 때 논의되는 문제는 상당히 다양하다. 하나님의 율법은 너무도 광범위하다. 그것은 마음의 생각과 의도까지도 달아본다. 그것은 행위뿐만 아니라 동기도, 말뿐만 아니라 생각도 심판한다. 계명을 지키는 것은 전체의 성화인 거룩한 생애, 옳은 일에 대한 굽힐 줄 모르는 충성, 죄로부터의 완전한 분리, 죄에 대한 승리를 의미한다. 죽을 수밖에 없는 사람들은 누가 능히 서리요! 하고 부르짖을지 모른다…….

이 마지막 세대는 축적된 죄의 결과를 짊어지고 있다. 연약한 사람이라고 불릴만한 사람들은 바로 이들이다. 그런고로 만일 이들이 계명을 지킬 수 있다면 다른 세대의 사람들은 그 어느 누구도 계명을 지키지 않은 것 때문에 핑계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다음의 말을 경외하는 마음으로 말해보다: 하나님께서는 사단의 도전에 응하셔야만 한다. 사람이 시험에 굴복하고 단지 선택받은 소수만이 살아남도록 하는 것은 하나님의 계획도 그분의 목적의 일부도 아니다. 에덴동산에서 하나님께서는 아담과 하와가 가장 경한 시험으로 생각되는 시험에 직면하시도록 허락하셨다. 시험이 너무 커서 우리의 첫 번째 부모들이 합격하지 못했다고는 아무도 말할 수 없다. 그들이 실패한 것은 시험이 어렵거나 그 시험을 저항할 힘이 주어지지 않은 때문이 아니었다. 유혹이 끊임없이 그들 앞에 제시된 것이 아니었다. 사단은 그들을 어느 곳에서든지 유혹시키도록 허용 받지 못했다. 그가 그들에게 접근할 수 있는 곳은 오직 한곳인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 옆이었다. 그들은 그 장소를 알고 있었다. 그들은 원하기만 하면 그 나무에서 멀리 떨어져 있을 수 있었다. 사단이 그들을 어디든지 쫓아올 수 없었다. 만일 그들이 사단이 있는 곳에 갔다면 그것은 그들이 원한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들이 그 나무를 검사하기 위해 갔다 할지라도 그곳에 머물러 있을 필요는 없었다. 그들은 쉽사리 빠져 나올 수 있었다. 심지어 사단이 그들에게 과실을 던져주었을지라도 그들이 그것을 받을 필요는 없었다. 그러나 그들은 그것을 받아서 먹었다. 그들이 먹은 것은 그들이 먹어야만 했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이 원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고의적으로 범죄 했다. 아무 핑계 댈 것이 없었다. 하나님께서는 그보다 더 쉬운 시험을 고안해 내실 수가 없으셨다.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당신의 율법을 지키도록 명하셨을 때 율법을 지킬 수 있다는 것을 보이시기 위해서는 단지 소수의 사람만이 율법을 지키는 것으로는 그 목적을 이루지 못한다는 것을 아셨다. 그분께서 사람 안에서 하실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를 보이시기 위해 굉장한 훈련을 시킨 탁월한 사람들을 선택하여 증명하시는 것은 그분의 품성과 조화되지 않는다. 심지어 가장 연약한 사람일지라도 실패할 필요가 없어서 아무도 하나님께서는 단지 소수의 사람들에 의해서만 행해질 수 있는 일을 요구하신다고 말할 수 없도록 하는 것이 그분의 계획과 더 조화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마지막 세대에게 그분의 가장 큰 명예를 걸고 증명하시려고 계획하신 것은 바로 그 이유 때문이다. 이 세대는 축적된 죄의 결과를 짊어지고 있다. 연약한 사람이라고 불릴만한 사람들은 바로 이 마지막 세대들이다. 연약하다고 핑계 댈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면 바로 그들이 그러하다. 그런고로 만일 이들이 계명을 지키지 않은 것 때문에 핑계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다. 하나님께서는 마지막 세대의 평범한 사람들이 그분께서 아담과 하와에게 주셨던 그러한 시험을 성공적으로 통과하는 것만이 아니라 그들이 보통 사람들로서 감당하기엔 너무도 어려운 시험들을 통과하여 살 수 있도록 하여 증명해 보이시려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욥이 통과했고 우리 주님께서 통과하셨던 것과 상응할만한 정도의 시험이 될 것이다. 가장 극한 상황까지 몰고 가는 시험이 될 것이라는 얘기다.
  “욥의 인내를 들었고 주께서 주신 결과를 보았거니와 주는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는 자시니라”(약 5:11). 욥은 마지막 세대 가운데서 선택된 사람들의 생애에서 재현될 어떤 경험들을 통과하였다. 그 경험들을 숙고해보는 것이 좋을 듯하다.

욥이 치룬 시험

  욥은 좋은 사람이었다. 하나님께서는 그를 신뢰하셨다. 날마다 그는 아들들을 위하여 제사를 드렸다. “이는 욥이 말하기를 혹시 내 아들들이 죄를 범…하였을까 함이라”(욥 1:5). 그는 번영하였고 하나님의 축복을 즐기고 있었다.

  그런데 “하루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와서 여호와 앞에 섰고 사단도 그들 가운데 왔는지라”(6절). 욥에 대하여 주님과 사단 사이에 있었던 대화가 그 다음절부터 나오는데, 주님께서 욥이 놓은 사람이라고 말씀하시자 사단이 그것을 부정하지는 않았으나 말하기를 욥이 까닭 없이 주를 경외하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는 만일 하나님께서 당신의 자비를 욥에게서 거두시면 욥이 하나님을 저주할 것이라고 말한다. 도전적인 사단의 말을 하나님께서는 받아들이신다. 사단은 욥의 몸 이외에 의 소유를 취할 것과 그를 슬픔에 빠뜨릴 수 있도록 허락을 받았다. 사단은 즉시로 자신이 허락받은 일들을 시행하였다. 욥의 소유가 모두 없어지고 그의 자녀들이 죽임을 당했다.

  이 일이 있자 “욥이 일어나 겉옷을 찢고 머리털을 밀고 땅에 엎드려 경배하며 가로되 내가 모태에서 적신이 나왔사온즉 또한 적신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자도 여호와시오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하고 이 모든 일에 욥이 범죄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향하여 어리석게 원망하지 아니하니라”(욥 1:20-22).

  패배한 사단은 다른 시도를 한다. 패배를 인정하지 않은 그는 주님과의 다음번 만남에서 자신이 욥의 몸은 건드릴 수 없도록 한 것은 부당하다고 주장하며, 만일 그의 몸을 건드릴 수 있었다면 욥이 죄를 범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사단의 또 다른 도전을 하나님께서는 받아들이신다. 사단은 이제 욥의 몸을 건드릴 수 있도록 허락을 받았으나 그의 생명은 건드릴 수 없게 되었다. 그는 즉시로 자신의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 떠났다.

  악한 자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사단은 욥에게 했다. 그러나 욥은 굳게 선다. 그의 아내는 그에게 포기하도록 권면하지만 그는 요동치 않는다. 극도의 육체적 고통과 정신적 고뇌 하에서 그는 견고하게 남는다. 욥이 시험을 이긴 기록이 다시 나온다. “이 모든 일에 욥이 입술로 범죄치 아니하니라”(욥 2:10). 사단은 패배하였고 더 이상 욥기서에는 나타나지 않는다.

  욥기서의 계속되는 장에서 우리는 욥의 마음속에 있었던 투쟁이 어떠했는지를 조금 보게 된다. 그는 심히 당혹하였다. 왜 이 모든 재화가 그에게 닥쳤는가? 그는 어떠한 죄도 짓지 않았다. 그러면 왜 하나님께서 그에게 고통을 주셔야 했을까? 물론 그는 사단의 도전에 대해 알지 못했다. 또한 하나님께서 그가 통과하고 있는 위기의 때에 그에게 승부를 걸고 계신 줄도 알지 못했다. 그가 아는 모든 것은 청천벽력 같은 재난이 그에게 덮쳐서 가족도 소유도 없이 지독한 질병에 걸려 거의 죽을 지경이 된 상황 뿐 이었다. 그는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나 하나님께 대한 믿음과 그의 성실을 지켰다. 하나님께서는 그가 그렇게 할 것을 알고 계셨다. 사단은 그가 그렇게 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으나 그 도전에서 하나님께서 승리하신 것이다.


  인간적으로 말할 때 욥은 그에게 이르러 온 처벌을 받을 죄를 범하지 않았다. 하나님께서 친히 그것은 까닭 없는 것이었다고 말하신다. “네가 나를 격동하여 까닭 없이 그를 치게 하였”(욥 2:3)고, 그런고로 그 모든 시험은 특별한 목적을 위하여 특별히 고안된 시험으로서 받아들일 때에만 정당하게 여겨질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욥이 하나님을 오직 자신의 유익을 위해서만 섬겼다고 하는 사단의 참소를 잠잠케 하기를 원하셨다. 그분께서는 사단이 조종할 수 없는 사람이 적어도 한사람 있었다는 것을 증명하기를 원하셨다. 욥은 그 결과로 고통을 당했지만 다른 길은 없는 듯이 보였다. 보상은 후에 그에게 주어졌다.

  욥의 경우는 한 목적을 위해 기록되었다. 우리가 그것을 역사적인 사실로서 받아들이지만, 우리는 그것이 또한 더 큰 의미를 지닌 것으로 믿는다. 마지막 시대의 하나님의 백성들은 욥의 경험과 유사한 경험을 통과할 것이다. 그들은 그가 시험받은 것처럼 시험을 받을 것이며, 이 세상의 모든 소유는 없어지고, 사단이 그들에게 고통을 주도록 허락을 받을 것이다. 게다기 하나님의 영은 이 땅에서 걷혀지고 이 세상 정부의 보호는 제거된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홀로 남아 흑암의 세력과 전쟁을 하도록 남겨진다. 그들은 욥처럼 당혹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욥처럼 그들은 그들의 신실함을 굳게 지킬 것이다.

계명을 지키는 것은 전체의 성화인 거룩한 생애, 옳은 일에 대한 굽힐 줄 모르는 충성, 죄로부터의 완전한 분리, 죄에 대한 승리를 의미한다.

  마지막 세대에서 하나님께서는 옹호를 받으실 것이다. 남은 자에게서 사단은 패배를 맛볼 것이다. 율법은 지킬 수 없다는 주장이 완전하게 반박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계명을 지키는 자가 한 둘이 아닌 한 그룹, 즉 144,000의 그룹을 소유하실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형상을 온전히 반영할 것이다. 그들은 하늘 정부를 대항한 사단의 참소가 거짓이라는 것을 증명할 것이다…….

마지막 세대

  하나님께서는 그 도전을 맞을 준비를 갖추셨다. 그분께서는 때를 기다리셨다. 최후의 싸움이 있을 때까지 최상의 진품이 간직된바 되었다. 마지막 세대 가운데서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택하신 자들을 선택하실 것이다. 강한 자나 능한 자, 혹은 존귀한 자나 부유한 자, 혹은 지혜로운 자나 유식한 자가 아닌 평범한 백성들을 하나님께서 택하셔서 그들을 통하여, 또한 그들에 의해서 당신이 옳다고 하는 것을 증명하실 것이다. 사단은 과거에 하나님을 섬겼던 사람들은 많은 재산의 축복을 받고,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돈을 푹푹 주셨으며, 자신은 그들에게 접근할 자유를 갖지 못했다고 주장해 왔다. 만일 그가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으로 발휘할 권리가 주어졌더라면 그들도 꼼짝 못하고 당했을 것이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께서 자신이 그렇게 할까봐 무서워서 그렇게 못하셨다고 주장한다. “제게 좀 더 정당한 기회를 주시면 제가 이길 것이 뻔 합니다”고 그는 말한다.

  그래서 사단의 그 같은 주장을 영원토록 침묵시키기 위해서, 또한 당신의 백성들이 보상을 바라지 않고 충성과 옳은 일을 위한 동기에서 그분을 섬긴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 당신 자신의 이름과 품성이 불공평하고 독재적이라는 주장이 거짓임을 밝히기 위해서, 천사들과 사람들에게 당신의 율법은 가장 낙망적이고도 가장 비참한 상황 하에 있는 가장 연약한 사람들에 의해서 지켜질 수 있다는 것을 보이기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마지막 세대에 사단으로 하여금 당신의 백성들을 할 수 있는 만큼 시험해보도록 허락하신 것이다. 그들은 위협을 당하고 고통을 당하며, 박해를 받을 것이다. 그들은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라는 선언이 내릴 때 죽음을 직면하여 서게 될 것이다. 계시록 13:15 참조. 그러나 그들은 굴복하지 않을 것이며, 죄 짓기보다는 차라리 죽음을 택하려 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이 땅에서 당신의 성령을 거두시고 계신다. 사단은 이전 어느 때보다도 더 크게 조종하는 힘을 발휘할 것이다. 참으로 그가 할 수 없는 듯이 보이는 것은 하나님의 백성을 죽이는 일일 것이다. 그는 자기에게 부여된 권리를 맘껏 사용한다. 그는 무엇이 위기에 처 한지 알고 있다. 바로 지금이 아니면 승리를 쟁취할 날이 없는 것이다.

우주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는 사람의 구원이 아니다. 물론 중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이름을 사단의 거짓 참소로부터 깨끗케 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하시려는 증명을 완전한 것이 되도록 하기 위해 한 가지 더 하시는 일이 있으시다. 그분은 그분 자신을 숨기신다. 하늘 성소는 문을 닫았다. 성도들은 밤낮으로 구원을 위해 하나님께 울부짖는다. 그러나 그분은 듣지 않으시는 것 같다. 하나님의 택함 받은 자들은 겟세마네를 통과하고 있다. 그들은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상에서 3시간 동안 달리셨을 때 하셨던 경험을 조금 맛보고 있다. 그들은 홀로 전쟁을 치러야 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들은 중보자 없이 거룩하신 하나님의 목전에서 살아야만 한다.

  비록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중보사업을 마치셨지만 성도들은 아직도 하나님의 사랑과 돌보심의 대상들이다. 거룩한 천사들은 그들을 지켜보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그들의 원수들로부터 피할 은신처를 제공하신다. 식량과 멸망에서 보호할 방패와 거룩한 삶을 살 은혜와 능력을 그분께서는 제공하신다. 시편 91편 참조. 그러나 그들은 아직도 세상에 있으면서 유혹을 당하고 고통과 고난을 당한다.

  그들이 시험을 잘 견뎌낼 것인가? 사람의 눈으로 보기엔 불가능 할 것 같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구하기 위해서 오셔야만 모두가 안전하다. 그들은 악한 자를 저항하기로 결심한다. 필요하다면 그들은 죽기를 사양치 않겠지만 죄짓는 것은 못한다. 사단은 어떤 사람이라도 죄를 짓게 할 권한이 없고, 또 영원토록 그럴 것이다. 그는 유혹하고 꼬이고 위협할 수 있다. 그러나 강요할 수는 없다. 이제 하나님께서는 연약한 자들 중에 가장 연약한 자라도 죄를 짓는 데는 아무런 핑계가 있을 수 없고, 핑계가 있어온 적도 결코 없었다는 것을 증명하신다. 만일 마지막 세대의 사람들이 사단의 공격을 성공적으로 물리칠 수 있다면, 만일 그들이 그들에 대한 온갖 모략에도 불구하고, 또한 성소가 이미 닫혔음에도 불구하고 할 수 있다고 한다면 사람이 죄짓는 대한 어떤 변명이 존재할 수 있겠는가?

144,000명

  마지막 세대에서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하나님의 율법을 지킬 수 있다는 것과 그들이 죄짓지 않고 살 수 있다는 것을 최종적으로 증명하신다. 하나님께서는 그 증명이 완전한 것이 되도록 하시기 위해 하지 않으신 부분이 없으시다. 사단이 갖는 유일한 한계는 그가 하나님의 성도들을 죽일 수 없다는 것이다. 그는 그들을 유혹하고 모함하며 위협하는 등 최선을 다할 것이다. 그들로 죄를 짓게 하는 데는 실패한다. 그들은 시험을 견뎌내며,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인을 그들 위에 치신다.

  성도들로 이루어진 마지막 세대를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궁극적으로 옹호를 받으신다. 그들을 통하여 그분께서는 사단을 격파하시고 승리를 거두신다. 그들은 하나님의 계획의 중요한 부분을 형성한다. 그들은 어마어마한 투쟁을 통과하며 높은 곳에 있는 보이지 않는 세력들과 싸운다. 그러나 그들은 그들의 신뢰를 지극히 높으신 분께 두며, 결코 부끄러워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기아와 갈증으로 고통하나 이제 “저희가 다시 주리지도 아니하며 목마르지도 아니하고 해나 아무 뜨거운 기운에 상하지 아니할지니 이는 보좌 가운데 계신 어린 양이 저희의 목자가 되사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시고 하나님께서 저희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실 것임이러라”(계 7:16,17).

  그들은 “어린 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자”(게 14:4)들이다. 마침내 성전의 문들이 활짝 열릴 때 한 음성이 들려질 것이다: “오직 144,000명만 이곳에 들어간다”(EW, 19). 믿음으로 그들은 어린 양을 여기까지 따라왔다. 그들은 그분과 함께 성소로 갔으며, 지성소로도 갔다. 이제 후로는 여기서 그분을 그렇게 따라온 자들만이 거기서도 그분을 따를 것이다. 그들은 왕과 제사장들이 될 것이다. 그들은 오직 제사장만이 들어갈 수 있는 지성소까지 그분을 따를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베일에 가리지 않은 임재 가운데 설 것이다. 그들이 그분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 갈 것이다. 그들만이 “하나님의 보좌 앞”에서 “밤낮으로” 그분을 섬기는 자들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그분께서 이기고 함께 그의 아버지의 보좌에 앉은 것처럼 그분의 보좌에 그분과 함께 앉을 것이다(계시록 7:15; 3:21 참조; 강조는 필자가 한 것임).

  우주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는 사람의 구원이 아니다. 물론 중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이름을 사단의 거짓 참소로부터 깨끗케 하는 것이다. 쟁투는 막판에 이르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마지막 큰 쟁투를 위해 당신의 백성을 준비시키고 계신다. 사단도 역시 준비하고 있다. 우리 앞에 놓인 문제는 하나님의 백성들의 생애 가운데서 결정될 것이다. 하나님께서 과거에 욥에게 의존하셨던 것처럼 우리에게 의존하신다. 그분이 참으로 우리를 신뢰하실 수 있으실까?……

  하나님의 교회가 자신에게 부여된 고상한 특권을 참으로 감사한다면!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는 나의 증인(이니라)”(사 43:10). “너희 중에 다른 신이 없었나니 그러므로 너희는 나의 증인이요 나는 하나님이니라 여호와의 말이니라”(12절). 우리가 참으로 증인들이 되어 하나님께서 우릴 위해 어떤 일을 하실 수 있으신지를 증명하게 되기를 기도드린다!

  이 모든 것은 대속죄일의 사업과 밀접하게 관련을 가지고 있다. 그 날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들의 죄를 고백하고 완전히 정결케 함을 받았다. 그들은 이제 죄사함을 받았으며 죄는 그들로부터 분리되었다. 그들은 거룩하였으며 책할 것이 없었다. 이스라엘 진영은 깨끗하였다.

  우리는 지금 성소정결의 큰 원형적인 날에 살고 있다. 모든 죄는 고백되어져야만 하고 믿음으로 심판대 앞에 올려 져야 한다. 대제사장이 지성소로 들어가실 때 이제 하나님의 백성들도 하나님과 대면하여 서게 된다. 그들은 모든 죄가 고백되었는지와 남아있는 악의 오점이 없는지를 알아야만 한다. 하늘에서의 성소정결은 이 땅에 있는 백성들의 정결에 달려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백성들이 거룩하고, 책할 것 없는 생애를 사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 그들에게 있어서 모든 죄들이 불태워져서 그들이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서며, 소멸하는 불에 타지 않을 수 있게 되어야 한다. “너희 먼데 있는 자들아 나의 행한 것을 들으라 너희 가까이 있는 자들아 나의 권능을 알라 시온의 죄인들이 두려워하며 경건치 아니한 자들이 떨며 이르기를 우리 중에 누가 삼키는 불과 함께 거하겠으며 우리 중에 누가 영영히 타는 것과 함께 거하리요 하도다 오직 의롭게 행하는 자, 손을 흔들어 뇌물을 받지 아니하는 자, 귀를 막아 피 흘리려는 꾀를 듣지 아니하는 자, 눈을 감아 악을 보지 아니하는 자 그는 높은 곳에 거하리니 견고한 바위가 그 보장이 되며 그 양식은 공급되고 그 물은 끊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사 33:13-16).

* 성소봉사(The Sanctuary Service), 299, 321에서 발췌.
* 앤드리어슨(1876-1962) 목사님은 재림교회 신학대학원 교수(1938-1949), 대총회 전도부장(1941-1950)을 역임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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