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가 도말 된다는 말이 무슨 뜻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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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가 도말 된다는 말이 무슨 뜻인가요?

저자:  강병국 목사

    한번은 집회를 끝내자마자 한 교우가 내게 가까이 다가오더니, 자기는 재림교회로 개종한지가 얼마되지 않았다는 소개와 함께 불쑥 이렇게 질문하는 것이었다. "목사님, 죄의 용서와 죄의 도말과 무슨 차이가 있는 겁니까?" "만약에 차이가 있다면 죄가 도말될 때에 무슨 일이 생기는 건가요?" 큰 흥미를 가지고 한 두 시간 같이 공부를 하고 난 뒤에 그의 눈은 더욱 더 밝아 지면서 "이렇게 중요하고도 특별한 진리를 왜, 교회에서 자세하게 가르치지를 않습니까?"라고 내게 훈시(?)를 해 주었다. 그 후부터 나는 일반 교인들이 죄의 도말에 대한 이해를 도대체 어느 정도나 가지고 있는지에 대하여 신경을 쓰게 되었고, 준비하는 설교의 내용들 속에 가끔씩 첨가하여 넣을 정도로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런데 문제는, 교인들을 많이 접촉해 보면서, 오랫동안 안식일을 지켜 온 고참 재림 교인들에게 물어 보아도 죄의 도말이 교리적으로, 더 나아가서는 실제 경험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하여 확실한 대답이나 이해를 가진 분들이 별로 많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죄의 도말의 문제는 대속죄일과 직결되는 일이요, 마지막 세대의 남은 백성들이 생명책에 기록되기 위하여 반드시 가져야 하는 경험이다. 그것은 또한 살아서 승천할 그리스도인들이라면 반드시 누리게 될 놀라운 하나님의 축복이다. 물론 죄의 도말에 대하여서 잘 몰라도 구원을 얻는 일에는 별로 상관이 없는 일이라고 말할지는 모르나, 문제는 우리의 죄가 어떻게 도말 되는 것인가 하는 문제 보다는, 오히려 죄가 도말되기 위해서는 어떠한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하는가 하는 중대한 문제를 내포하고 있기 때문에 이 문제의 중요성이 더해가는 것이다. 아울러서 우리가 하나님께서 마지막 세대를 위하여 예비하신, 더 나아가서 모든 구원 얻은 성도들을 위하여서 마련하신 놀라운 구속의 마지막 터치에 대하여 알고 연구하는 것은 우리에게 여간 큰 기쁨과 환희를 주는 것이 아니다. 자 그러면 이제 같이 성경과 예언의 신을 펴서 "죄의 용서" 와 "죄의 도말"의 차이를 연구하여 보도록 하자!

    성경은 죄의 도말에 관한 다음과 같은 하나님의 약속을 기록하고 있다. "나, 곧 나는, 나를 위하여 네 허물을 도말하는 자니 네 죄를 기억지 아니하리라." 사 43:25. 다윗은 자기의 죄를 회개 할 때에 다음과 같이 기도 하였다. "하나님이여 주의 인자를 좇아 나를 긍휼히 여기시며 주의 많은 자비를 좇아 내 죄과를 도말 하소서. 나의 죄악을 말갛게 씻기시며 나의 죄를 깨끗이 제하소서 ... 주의 얼굴을 내 죄에서 돌이키시고 내 모든 죄악을 도말 하소서." 시 51:1,2,9.

    죄의 도말이란 말은 우리가 흔히 두가지의 의미에서 사용하고 있는데, 그 한가지는 일반적인 죄의 용서에 있어서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를, 마치 우리가 그러한 죄를 전혀 짓지 아니한 것 처럼 잊어 버리시고, 깨끗이 씻으시는 의미에서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경우가 있고, 그 두번째는 좀 더 구체적인 구속의 단계에 있어서, 마지막 최종적인 구원의 역사로서,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악들을 죄의 기록책에서 지우시면서 우리의 마음 속에서도 특별한 역사를 이루시는 것을 뜻하는 단어로 사용하고 있다. 우리 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 교인들이 "죄의 도말"이란 단어를 사용 할 때에는 후자의 구체적인 구속의 의미를 내포하는 말로 사용을 하고 있는데, 그 이유는, 우리가 성소의 기별을 이해하는 사람들로서,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는 단계들을 가장 성서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자들이기 때문에 그러하다. 그러면 먼저, 죄의 용서와 죄의 도말의 차이를 잠간 설명해 보도록 하고, 두번째로는 죄의 도말이란 언제 일어나는 일인가를 생각해 보기로 하고, 그 다음에 죄의 도말이란 과연 어떠한 과정을 말하는 것이며, 죄가 도말 될 때에 우리에게 구체적으로 어떠한 일이 일어 나게 되는 것인지를 살펴 보도록 하자.

    "죄의 용서" 와 "죄의 도말"은 엄연히 다른 것이다. 죄의 용서는 매일 드리는 제사라고 할 수 있으며, 죄의 도말은 매년 드리는 제사라고 할 수 있는데, 죄의 용서는 일년 내내 성소의 봉사에 있어서 매일 반복되는 일이며, 죄의 도말은 대속죄일 날 한번 단행하는 최종적인 죄의 용서를 말하는 것이다. 그것을 실제적인 우리의 경험에서 살펴 보자면, 죄의 용서란 우리가 평상시에 짓는 죄를 회개 할 때에 하나님께서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고 우리의 이름 밑에 "용서 받았음"이라고 기록을 해 두시는 것을 말한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조사 심판을 거쳐서 우리의 진실함과 계명을 지키는 성품이 드러나기 까지는 우리의 죄의 기록을 아직 완전히 지우시지는 않고 기록책에 남겨 두시되, 우리의 진실한 회개를 보시고, 그 당시 당시 마다 우리의 지은 그 죄 자체는 하나님의 은혜로 분명하게 영원히 사유하여 주시는 단계를 죄의 용서라고 부른다. 우리가 받은 죄의 용서는 우리가 우리의 태도와 마음을, 죄를 회개했던 때와 꼭 같이 유지하여, 심판 날에 설 때에 우리가 변함없이 죄를 용서 받고 싶은 꼭 같은 진실된 마음과 동기를 가지고 있으면 결국 우리가 받아 온 그 용서들은 영원히 우리의 것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신실하시나 인간 편에 문제가 있으므로 사람은 마음이 변하여 다시 회개한 죄로 돌아가서 하나님을 거역하고 멸망의 길을 택할 수가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죄의 완전한 도말 - 다시 말해서 기록책에서 우리의 죄를 영원히 삭제해 버리시는 일 - 을 우리들의 조사 심판날 까지 미루시는 것이다. 이 사실은 화잇 선지자의 다음의 두가지 인용구절에서 확증이 된다.

    "그러나 진심으로 죄를 회개하고 믿음으로 그리스도의 피를 그들의 속죄제물로 주장한 사람들에게는 하늘의 책에 기록된 저들의 이름 아래 용서 받았다는 말이 기록된다. 그들이 그리스도의 의에 참여하는 자가 되고 그들의 품성이 하나님의 율법과 조화된다는 것이 나타날 때, 그들의 죄는 도말되고 그들 자신이 영원한 생명을 받기에 합당한 사람들이 될 것이다." 대쟁투 하권, 281,282.

    "조사심판과 죄의 도말은 주님의 재림보다 먼저 이루어 져야 한다. 죽은자들은 책들에 기록된대로 심판을 받아야 하므로 그들의 사건이 심리되는 조사심판이 마치기 전에는 그들의 죄가 도말 될 수 없다. 사도 베드로는 '유쾌하게 되는 날이 주 앞으로 부터 이를 것이요 ... 그리스도 곧 예수를 보내시리니'라고 말함으로 예수님께서 보내심을 받는 때에 믿는 사람들의 죄가 도말 될 것이라고 분명히 말한다 (행 3:19,20). 그리고 조사심판이 마치면 그리스도께서 오실 것이다. 그리고 그분께서는 그 때에 모든 사람에게 행위대로 갚아 주실 것이다." 대쟁투 하권, 284.

이제는 우리가 두번째의 질문으로 들어 갈 준비를 갖춘것 같다. 그러면 우리의 죄가 언제 도말 되는 것인가?

    어떤 사람들은 우리가 죄를 주님께 고백할 때에 즉시로 우리의 죄가 도말 된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고, 어떤이들은 우리가 죄를 다 자복하고 버린 후에 성령께서 하나씩 하나씩 모르던 죄를 보여 주실 때 우리가 그 죄들을 하나씩 하나씩 승리해 나아 갈 때에 죄가 순서대로 도말되어 나가게 되는 것이라고 믿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견해들은 다 성경적도 아니고 예언의 신적도 아니다. 조금 전에 살펴 본 것처럼 죄의 도말은 마지막에 가서 심판 후에 한번에 단행되는 하나님의 죄를 삭제하시는 역사인 것이다. 오순절 날 성령의 능력으로 설교한 사도 베드로는 다음과 같이 죄의 도말의 때를 설명하여 주고 있다. "그러므로 너희가 회개하고 돌이켜 너희 죄 없이함(영어로는 죄의 도말임 - 필자 주)을 받으라 이같이 하면 유쾌하게 되는 날이 주 앞으로부터 이를 것이요 또 주께서 너희를 위하여 예정하신 그리스도 곧 에수를 보내시리니." 행 3:19,20. 베드로의 설명은 우리가 회개하고, 거듭나서, 죄에서 떠나 돌이켜 악에서 떠나면 죄의 도말의 경험이 우리에게 이르러 온다는 조건을 말하면서, 그 시기를 주 앞으로 부터 이르러 오는 유쾌하게 되는 날에 일어 날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렇다면 주 앞으로 부터 이르러 오는 유쾌하게 되는 날이 언제 인가? 그 문제는 예언의 신에서 정확하게 설명을 찾을 수가 있다.
    "위대한 사업은 그 시초에 나타났던 하나님의 능력보다 못하지 아니한 큰 능력이 나타남으로 마쳐지게 될 것이다. 복음사업의 시초에 이른비가 내림으로 성취된 예언들은 그 사업의 종말에 늦은비가 내림으로 다시 성취될 것이다. 그리하여 사도 베드로가 기대했던 '유쾌하게 되는 날'이 이를 것이다. '그러므로 너희가 회개하고 돌이켜 너희 죄없이함을 받으라 이같이 하면 유쾌하게 되는 날이 주 앞으로 부터 이를 것이요 주께서 너희를 위하여 예정하신 그리스도 곧 예수를 보내시리라'(행3:19,20)." 각 시대의 대쟁투 하권 474.

    위의 말씀을 미루어 보아 우리는 주 앞으로 부터 이르러 오는 유쾌하게 되는 날이 언제인지를 분명하게 알 수가 있다. 그 날은 곧 늦은비 성령을 받게 되는 날이다. 그 날을 사도 베드로는 우리가 유쾌하게 되는 날이라고 말씀 하셨는데, 그 이유를 우리가 알게 되면 정말로 우리가 유쾌하게 될 것이라는 사실에 감격하게 된다. 한국어로 "유쾌하게 되는 날"이라고 번역한 단어를 영어에서는 "the time of refreshing"이라고 번역하였는데, 그 말은 "다시 새롭게 되는 때"라는 의미로서 우리에게 이해를 한층 더 해 주고 있다. 그 말의 뜻은 우리 인류가 타락하기 이전의 상태로 돌아가서, 다시 온전하여진 기능과 용량을 가지고 하나님을 제대로 경배하며, 구원의 즐거움을 제대로 즐길 수 있는 상태로 다시 새롭게 되돌아 간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끝으로 죄의 도말의 과정이 무엇이며 우리들에게 실제적으로 어떠한 일이 일어나게 되는 것인지를 살펴 보도록 해 보자.

    죄를 도말 하는 것은 죄의 기록을 말끔하게 지워서 없애 버리는 것을 의미하는데, 하나님께서는 아무 것도 잊어 버리실 수가 없는 분이시나 우리의 모든 죄를 잊어버리시기로 선택하시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하늘의 죄의 책에서 우리의 죄의 기록을 지워 버리실 때에는 우리 마음과 두뇌 속에서도 죄의 기억을 지우셔야 한다. 하늘의 기록을 지울 때에 이 땅에 있는 장본인의 협력과 동의가 없이는 하나님께서 일방적으로 하실 수가 없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본인의 죄를 진실로 회개함과 또한 그 죄를 미워함과 다시는 그러한 죄를 짓고 싶지 않은 마음이 생기고, 더 나아가서는 그 죄를 다시는 반복하지 않을 성품이 준비 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들이 하나님을 너무나 사랑하게 됨으로 차라리 죽으면 죽었지 하나님의 계명을 범하거나 죄를 범하지 않을 정도로 성품이 준비 된 것을 보실 때 하나님께서는 그에 대한 심판을 끝내시고 그의 모든 죄를 책에서 도말해 버리시는 것이다. 그 사람에게서 복음의 목적이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하늘 기록에서 죄를 지워버리시는 동시에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이 두뇌 속에서도 죄의 기록들을 다 지우시게 되는데 그리하여 우리들이 더 이상 우리가 지은 죄들에 대하여 전혀 기억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유쾌하게 되는 날을 경험하게 된다. 이 문제에 대한 예언의 신의 설명은 잠시 후에 읽어보도록 하자. 우리들이 지은 죄를 회개하면 용서 받기는 하나 우리들이 여전히 과거에 지은 죄에 대한 기억들 때문에 우리들의 영혼 속에는 상처가 남아있는 것이며 (TM 447), 또한 죄의 기억들 때문에 우리들이 타락한 통로가 되었다고 화잇 부인께서는 말씀하시었다 (가려뽑은 기별 1권, 344). 그러므로 우리가 구원을 만끽하고 하나님을 티 없이 섬길 수 있기 위하여서 우리들의 기억 장치 속에서 죄의 기억을 지우시는 것이다.

    우리가 일평생 동안 보고 듣고 만진 모든 기억들이 우리의 두뇌에 저장되어 있다. 이러한 기억들은 너무나 자주 우리들을 괴롭히곤 하는 것을 우리는 경험하고 있지 않는가. 우리들은 하나님께서 인간의 두뇌의 어떤 부분만을 기억 속에서 지워 버리셨던 하나의 역사를 성경에서 찾아 볼 수가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닌 바벨탑의 역사에서이다. 하나님을 반역하여 바벨탑을 쌓고 있던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반역과 죄가 급속하게 세상에 퍼지는 것을 막기 위하여서 그들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셨다고 하였다. 갑자기 그들이 언어소통에 문제가 생긴 것이다. 어떻게 그러한 일이 생길 수가 있을까? 하나님께서 그들의 두뇌 속에서 지금까지 그들이 사용하던 언어의 기억력을 지워 버리시고, 그 대신 다른 언어들의 프로그램을 넣어 주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다른 기억들과 그들의 개성 내지는 품성에 관한 기억들은 그대로 놔두고 건드리지 않으셨다. 그러한 사실로 보아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머리 속에서 하시는 창조의 능력을 실감 할 수가 있는 것이다. 화잇 선지자께서는 우리의 죄의 도말과 우리의 두뇌 속의 기억과의 관계를 이렇게 설명해 셨다.

    "그리스도께서 승천하신 후 참회한 신도들을 위하여 그분의 피로 호소하시러 하나님 앞에 나타나신 것처럼 제사장도 매일의 봉사에서 죄인들을 위하여 희생의 피를 성소에 뿌렸다. 그리스도의 피는 회개한 죄인을 율법의 정죄에서 풀어 주게 되어있었으나 죄를 없이 하기로 되어있는 것은 아니었고 그것은 최후의 속죄까지 성소의 기록에 남아있을 것이었다. 이와 같이 모형에 있어서도 속죄의 피는 회개한 사람에게서 죄를 제거하였으나 그것은 속죄일까지 성소에 남아있었다. 최후의 보상의 큰 날에 죽은 사람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대로 심판을 받'을 것이다 (계20:12). 그 때에 그리스도의 속죄하는 피의 공로로 회개한 모든 사람의 죄가 하늘의 책에서 제거된다. 이와 같이 되어 성소는 죄의 기록에서 해방 혹은 정결하게 되는 것이다. 모형에 있어서 이 속죄의 대사업 곧 죄를 도말하는 일은 속죄일의 봉사 - 죄로 말미암아 그것이 더럽혀 졌었던 성소를 속죄 제물의 피의 공로로 죄를 제거함으로 이루어진 지상 성소의 정결로 예표되었다. 최후의 속죄에서 진심으로 회개한 자의 죄가 하늘의 기록에서 제거되고 다시 기억되거나 마음에 떠오르지 않게 되어 있는 것과 같이 그 상징에 있어서도 죄는 회중으로 부터 영원히 분리되어 광야로 옮겨진 것이다." 부조와 선지자 상권, 465, 466.

    "그와 마찬가지로 환란의 때에 하나님의 백성들이 고민과 공포로 괴로와 할 동안 만일 아직 자복하지 아니한 죄가 그들 앞에 나타나게 되면 그들은 압도 당하고 말 것이다. 절망이 그들의 줄을 끊어 버리고, 그들은 더 이상 하나님께 도움을 애원할 확신을 갖지 못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그들의 무가치함을 깊이 느끼고 있는 동안 그들의 잘못을 고백하지 않고 숨겨 둔 것이 하나도 없다. 그들의 죄는 이미 심판정에서 도말되었다. 그들은 그 죄들을 다시 생각해 낼 수 없다." 대쟁투 하권, 488.

    "그들의 죄들은 망각의 세계로 날아가 버렸고 그들은 그것들을 다시 기억해 낼 수가 없다." 가려 뽑은 기별 3권, 135.
죽은 의인들은 죽어 있는 동안에 땅밑에서 죄의 도말의 경험을 하게 되는 것이요, 살아있는, 주께서 오실 때에 살아서 승천할 산 성도들은 죄의 도말의 경험을 살아서 움직이고 느끼는 동안에 경험하게 될 것이다. 얼마나 놀라운 약속인가!

    "우리는 이 땅에 사는 동안 그리스도의 속죄의 피를 믿는 믿음을 통하여 죄와 분리 되어야 한다. 우리의 귀하신 구주께서는 우리 자신을 당신께 연합시키기를 초청하시되 우리의 연약함을 당신의 능력에, 우리의 무지를 당신의 지혜에, 우리의 무가치함을 당신의 공로에 연합시키기를 간청하신다." 각 시대의 대쟁투 하권, 493.

    "하늘에서 조사심판이 진행되고 있는 동안, 회개한 신자들의 죄가 성소에서 도말되고 있는 동안, 세상에 있는 하나님의 백성들 사이에는 정결케 하고 죄를 버리는 특별한 일이 이루어 져야 한다 ... 이 일이 완성 될 때에,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들은 그분의 재림을 위한 준비를 갖추게 될 것이다." 각 시대의 대쟁투, 1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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