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소와 탄원-Part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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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소와 탄원-Part2

(진짜 논점은 “무엇이 진리이고 무엇이 오류인가”에 대한 것이라고 우리는 믿는다.)

사랑하는 동료 지도자들께 드리는 호소의 글2
-콜린 스텐디쉬(하틀랜드 기관 원장)

우리의 믿음의 기둥들

미국 견고한토대 1989년 6월호에 실렸던 나의 글은 “논점”에서 불만족스럽게 인용되었는데 그 글의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의 신조를 나타내는 글에는 승리하는 그리스도인의 생애, 그리스도의 본성, 그리고 대속과 같은 주된 교리들이 너무도 평범하게 다루어지고 쓰여졌기 때문에 가장 열광적인 신신학 교사들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확신을 가지고 동의 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그 글을 반대하여 강한 조치를 취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여러분들은 정말 승리하는 그리스도인 생애, 예수님의 인성, 그리고 대속과 같은 주제들이 재림 신앙의 중심적인 구속에 관한 주제라고 생각지 않는다는 말입니까? 정말 우리 교회는 그러한 주제들에 대해서 결코 한번도 공식적 입장을 취한적이 없습니까? 여러분들은 1872년 당시 우리 선구자들의 기본 신조 중에는 그러한 진리들이 언급되고 있지 않다고 기술했습니다. 그러나 형제들이시여! 우리의 선구자들은 이 문제들에 대해서 너무도 분명한 견해를 밝혔었습니다. 1872년에 발간된 기본구조 No.2를 살펴봅시다.

“그분께서는 타락한 인류의 구속을 위해 아브라함의 자손의 본성을 취하셨고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게 사람들 중에 거하셨으며 우리의 모본으로서 사셨으며 우리를 위한 희생제물로서 죽으셨다가 우리의 의롭다 하심을 위해 부활하셨다.”
“그분께서는 하늘 성소에서 우리를 위한 중보자가 되기 위하여 높은 곳으로 올라가셨고 그 곳에서 그분 자신의 피를 가지고 죄에 대한 속죄를 이루고 계신다. 십자가는 성소 봉사에서 희생 제물을 드리는 것으로 표상되었기 때문에 그것으로서는 결코 속죄가 이루어질 수 없으며 레위 제사장 직의 경우에 비추어서 생각할 때 속죄는 제사장으로서의 그분의 역할에 있어서 가장 마지막 부분이며, 레위 제사장 직분은 하늘에 계신 우리 주님의 봉사 사업을 미리 조명해 주는 그림자이었다.”

여러분들은 우리의 지도자들이 작성한 다음과 같은 글로 인해서 경악하게 될 수많은 신실한 재림 교인들을 상상해 보셨습니까?

“문제의 핵심은 견고한 토대가 예수님의 본성, 그리고 성화에 대해서 특정한 견해를 주장하고 있는 것인데 이러한 주제들은 그리스도인들과 재림 교인들에게서 결코 정착되어 결정된 적이 없다. 이 주제들은 만일 확실하게 결정되지 않으면 영혼들을 잃어버리게 될 만큼 구속에 있어서 필수적인 것들이 아니다. 이들 독립 선교 기관들이 배도의 상태에 있는 재림교회에 대해서 부담을 갖게 된 이유는 교회가 아직도 논의할 여지가 있는 신학적 문제들에 대해서 자기들의 견해를 받아들이지 않고 있기 때문인데 이것이 호프 인터내셔널/견고한 토대 (하틀랜드)의 문제점이다. 또한 교회 내에 있는 죄와 잘못된 것들이 독립 선교 기관들을 이런 상황으로 몰고 가는 것처럼 보여진다.”

교회의 최고 지도층 인사들이 이와 같은 글을 작성하는 것을 보면서 많은 신실한 재림교인들은 지도자들에 대한 신뢰를 잃어가고 있습니다. 그것으로 인해 재림교단이 가지고 있는 거룩한 목적에 대한 확신도 잃어가고 있으며 그들 자신을 분리시켜 영원한 파멸의 위험가운데로 그들 자신을 놓고자 하는 유혹을 받고 있습니다. 지도자들이 중요한 교리들에 대해서 교회의 입장을 밝힌 “논점”의 내용들은 예언의 신을 지지하며 우리의 선구자들이 가르쳤던 그대로의 세천사 기별을 믿는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교회를 받들도록 하는 우리의 사업을 훨씬 더 어렵게 만들어 놓았습니다. 이들 중심 기둥들에 대한 좀더 근접한 고찰이 우리 모두에게 유익을 가져올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본성

여러분들은 “저자와 편집인에 대한 권면” 30, 31쪽에서 우리 신앙의 기둥에 대한 주의 종의 글을 인용했습니다. 그녀는 거기서 오직 네 기둥을 서술했는데 그것은 성소기별, 죽은 자의 상태, 안식일 기별, 그리고 하나님의 법입니다. 여러분들이 중요하지 않은 것으로 취급한 세 분야 즉, 그리스도의 본성, 죄의 본성, 성화는 이들 기둥들에 있어서 절대적으로 중요한 요소들 입니다. 주의 종께서는 이들 기별 가운데서 단 하나의 핀이나 못도 제거하지 말 것을 우리에게 경고하고 있습니다.(의료서교사업 영문 96쪽 참조) 예수님의 본성은 너무도 중요한 것이기 때문에 주의 종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의 인성은 우리에게 있어서 모든 것이다. 그것은 우리의 영혼을 그리스도와 묶고 또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과 묶는 금사슬이다.” 가려뽑은기별 영문 244

바울은 성육신과 그리스도의 본성에 대한 기별을 우리 구세주의 하늘 제사장 직분에 있어서 중심적인 것으로 말씀하고 계십니다.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체율하지 아니하는 자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되 죄는 없으시니라”(히 4:15) “그러므로 저가 범사에 형제들과 같이 되심이 마땅하도다. 이는 하나님의 일에 자비하고 충성된 대제사장이 되어 백성의 죄를 구속하려 하심이라. 자기가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셨은즉 시험받은 자를 능히 도우시느니라” (히 2:17,18)

그렇다면 어떤 형제들이 이 중심기둥으로부터 그들의 신조를 옮긴 이유는 무엇이겠습니까? 랄슨 박사는 그의 저서 “육신이 말씀이 되어”에서 100년 동안 우리 교회에 필자들은 교리적으로 예수님의 인성에 대해서 변함없이 일치되어 왔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단 한 명의 목사나 신학자도 랄슨 박사의 이 조사결과를 감히 반박하지 못했습니다. 우리의 선지자인 화잇 부인은 가능한 한 가장 명확한 언어로서 160번 이상이나 예수께서는 우리의 죄되고 타락한 본성을 취하셨다고 선언하고 계십니다. 단 한 번도 그분께서는 예수께서 타락하지 않은 죄 없는 본성을 가졌다고 말씀하신적이 없습니다. 다만 화잇여사는 예수께서는 죄 없는 성품을 가지셨다는 사실을 반복하여 확인하고 있을 뿐입니다. 성경은 다음과 같이 명백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는 진실로 천사의 본성을 취하지 않으셨고 아브라함의 씨를 취하셨음이라” (히 2:16 킹제임스성경), “이 아들로 말하면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고”(롬1:3),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를 인하여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육신을 좇지 않고 그 영을 좇아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지게 함이라” (롬 8:3,4),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 나게 하신것은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갈 4:4,5)

하나님께서는 독재적이어서 모든 것을 조종하신다는 어거시틴의 이교도적 개념에서 발생된 카톨릭의 위조를 허용해서는 안됩니다. 이것은 예정론과 한번 구원받으면 영원히 구원받는다는 식의 구원론, 원죄 등으로 우리를 인도하게 됩니다. 이들 이단적 개념을 뒷받침하기 위하여 어거스틴은 예수께서는 우리와 다른 본성을 가지셨다는 가설을 주장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타락하지 않은 본성에 대한 증거로서 성경주석 5권 1128-1131쪽의 내용을 제시합니다. 그러나 그 글은 단 한번도 예수께서 어떤 본성을 취했다고 정의 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것은 당시 호주의 타스메니아에서 목회를 하던 베이커 목사의 특정한 이설에 대응하는 편지였습니다. 랄슨 박사는 베이커 목사가 신봉했던 양자론(adaptionist concept)에 대하여 명확히 실명했으며 그가 믿던 양자론으로 인해서 화잇 여사가 그러한 …..


<뒷 내용이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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