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적 고려함의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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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적 고려함의 문제
A Problem of Intellectual Integrity

랄프 랄슨

  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교회는 지적 고결함의 문제를 다루도록 존재하게 되었다. 숱한 그리스도인들이 잘못된 이론, 증거의 조작, 곡해된 제시, 그리고 역사적인 사실의 오용에 기초된 교리들(일요일 준수를 포함한)을 고수하고 있었다.

  이러한 불유쾌한 현실이 밝혀지게 될 때에 그런 그리스도인들은 그런 교리들에 관련된 아주 실제적인 문제에 부딪히게 된다. 그들이 불편함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교리와 행습을 진리와 조화되도록 바꾸어야 할까? 아니면 그 교리가 비록 잘못된 기초 위에 세워졌으나 그들을 편안하고 기쁘게 해주기 때문에 그 잘못된 교리를 고집해야 할까?

  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교회의 독특한 사명이 되어온 것은 잘못된 기초위에 세워진 어떤 교리가 아무 이유에서든 지속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촉구하고, 지적 고결함과, 권위 있는 증거를 존중하도록 호소하는 것이었다. 수십억이 아니라면 수백만의 말들이 지적 고결함을 위한 호소로서 말하여지고 기록된바 되었다. 어떤 이들은 이에 반응했으나 더 많은 부분의 사람들은 그렇지 않았다. 대다수는 단순히 증거를 무시하기로 선택하면서 “그 교리가 내게는 잘 맞으니까 나는 그 교리가 잘못된 기초 위에 놓여졌을지라도 그 교리에 집착 할 것이다. 지적 고결함은 나와 상관이 없다”고 말하고 있다.

  지금은 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교회 자체가 그러한 지적 고결함의 문제로 인해 믿기 어려울 정도로 고투하고 있다. 잘못된 이론, 증거의 조작, 곡해된 제시, 그리고 역사적 사실의 오용에 기초된 어떤 교리가 지금 우리 가운데 도입되어 왔다. 우리는 1957년에 「교리에 관한 질문들」이란 책을 통해 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교회에 도입된 교리인 그리스도께서 타락하지 않은 아담의 인성을 쓰시고 이 땅에 오셨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신조가 늘 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교회가 고수해온 신조였다고 주장되고 있으나 사실은 그 반대이다. 1852~1952년까지 100년간 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교회이 지도자들과 교인들에 의해서 간행된 1200개 이상의 기록들을 한 데모든 광범위한 연구는 우리 주님께서 타락한 인간이 본성을 쓰시고 이 땅에 오셨다고 말한다. 1852~1952년까지 100년간 우리 교회의 간행물들에서 발견되는 기록 중 단 하나의 기록도 「교리에 관한 질문들」에서 주장된 것을 지지하지 않는다. 단 하나도.

  「교리에 관한 질문들」, 650~652에 나온 기록들이 모두 엘렌 화잇의 기록들로부터 발췌된 것으로 구성되었기 때문에 엘렌 화잇이 실제로 그리스도께서 타락하지 않은 아담의 인성을 쓰시고 이 땅에 오셨다고 하는 단 하나의 인용문이라도 발견해내는 사람에게는 1,000불을 주겠다고 한 적이 있었다. 「말씀이 육신이 되사(The Word Was Made Flesh)」란 연구보고서(1852~1952년 사이에 간행된 그리스도의 인성에 관한 우리 교회 지도자들의 진술 1,200여개를 담은 책-역자 주)가 3년간 우리 교회의 행정자들과 학자들의 손에 쥐어졌으나 아직 1,000불을 요구하는 이는 하나도 없다. 단 한 구절의 인용문도 이제까지 제시되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는 다음과 같이 자문하게 된다. 어떻게 이미 만들어진 증거와 그렇게도 상치되는 이런 진술이 있게 되었을까? 「교리에 관한 질문들」, 650에 기록된 엘렌 화잇의 기록에서의 발췌한 것들과 그 원래의 기록을 대조해보면 참으로 아연실색할 정도이다. 거기에는 문맥을 뒤틀고 증거를 극단 적으로 조작한 것이 있다. 우리는 여기 두드러진 예를 제시한다.
  1898년 6월 9일자, 영문 시조에 엘렌 화잇은 다음과 같은 문장을 기록했다.
 
“타락한 상태에 있는 인성을 당신 스스로 취하심으로 그리스도께서는 추호도 인간의 죄에 참여하시지 않으셨다”(가려 1권,319).

  「교리에 관한 질문들」, 651에서 이 문장은 “죄 없는 인성을 취하심”이라는 제목 하에 그 증거로서 제시되었다. 너무도 믿기 어려운 사실이다. 어떻게 저자들이 엘렌 화잇이 사용한 “타락한”이란 말을 “죄 없는”이란 말과 동일시하는 것으로 선택했는지는 아직도 신비이다.

  「운명의 운동(Movement of Destiny)」, 497에서 프룸(L.E. Froom)은 엘렌 화잇의 기록한 문장의 처음 부분을 완전히 제거해 버릴 정도로 대담해져서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타락 전 아담의 죄 없는 본성을 취하시고… ‘추호도 인간의 죄에 참여하시지 않으셨다.’”

  그리하여 엘렌 화잇은 그녀가 정말로 말했던 것의 정반대로 말한 것으로 잘못 드러나졌고, 그녀는 그리스도께서 타락하지 않은 아담의 죄 없는 본성을 취하시고 추호도 인간의 죄에 참여하시지 않으셨다는 우스꽝스런 발언을 한 것으로 제시되었다. 이것은 그녀의 지성과 독자들의 지성에 너무도 근거 없는 모욕이 되는 것이다.

  이것은 위의 두 책에 잘못된 것이 단 한 가지밖에 없다는 의미가 아니다. 내용 전개에 있어 어마어마한 불규칙의 세부적 내용들은 「말씀이 육신이 되사」, 229~274에 제시된다. 엄격히 따져볼 때 우리는 「교리에 관한 질문들」에 실린 진술이 상습적인 기형이요, 기만적인 역사의 나열이라고 말하게 된다. (그러면서도 1990년대인 오늘날 우리 교단의 간행물에 자신들의 견해를 지지하기 위해「교리에 관한 질문들」, 650페이지에 있는 인용문들이 계속 실리고 있다!)

  그리스도께서 타락하지 않은 아담의 인성을 쓰시고 이 땅에 오셨다는 칼빈주의적 교리를 옹호하기 위한 몇몇 시도들이 있어왔으나 그들 모두는 그것이 제칠일 안식일 예수재림 교회 역사를 잘못 나타내는 것이라는 우리의 도전을 적극적으로 피해왔다. 우리가 믿기에 이것은 비양심적이요, 변호의 여지가 없는 것이다. 우리 교인들을 우리 가운데 교리가 기만적인 수법으로 도입되었다는 것을 알게 함 없이 교리의 토론 가운데로 이끄는 것은 극단적으로 위험하고도 기괴망측한 오도이다. 교인들이 결국 그 사실을 알게 될 때 교단이 과연 신뢰할 수 있는 조직인가에 대한 매우 심각한 문제들이 발생된다.

  우리가 하는 사업을 저지하기 위한 몇몇 시도들이 있어왔는데, 요청한데로 증거를 제시함으로서가 아니라 다음과 같은 질문과 반대를 제시함으로서였다.

  1. 당신들(랄슨 박사 부부)이 엘렌 화잇의 기록들을 당신들 마음대로 선택해왔다. (신학대학원의 한 교수)
  답: 엘렌 화잇의 기록들은 절대 모순되지 않는다.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타락하지 않은 아담의 인성을 쓰고 이 땅에 오셨다는 엘렌 화잇의 기록을 단 하나라도 찾으면 1,000불을 주겠다고 했다. 왜 1,000불을 달라고 하지 않는가?

  2. 나는 당신과 반대되는 견해를 표명하는 엘렌 화잇의 기록들을 가득 실은 책을 쓸 수 있었다. (한 대회장)
  답: 그럴 필요가 없다. 1,000불의 현상금을 주장하기 위해서는 오직 한 문장만 제시하면 된다. 왜 제시하지 않는가?

  3. 왜 좀 더 균형진 제시를 하지 않는가? (대총회 부회장)
  답: 진리는 진리와 균형질 수 있으며, 또한 균형이 잡혀야 한다. 그러나 진리는 절대 진리가 아닌 것과는 조화를 못 이룬다. 우리가 어떤 사람이 하는 다음의 말 듣기를 좋아하는가? “저는 오늘 아침 내내 진리를 말해왔습니다. 오늘 오후에는 균형을 이루기 위해서 몇 가지 거짓말을 해야겠습니다.

  4. 당신네들은 그리스도께서 죄된 인성을 가지고 하늘로 가셨다고 말하고 있는가? (한 목사)
  답: 우리는 우리 것이 아닌 엘렌 화잇의 입장을 밝힌다. 엘렌 화잇은 “그리스도께서는 영화롭게 된 당신의 인성을 하늘 조정으로 가지고 가셨다”(치료봉사,383). “그리스도께서는 성화되고 거룩한 인성을 가지고 하늘로 오르셨다”(리뷰앤 헤랄드 5권,120)고 기록하였다.
 
  5. 왜 당신네들은 중요하지도 않은 어떤 것을 논쟁점으로 삼고 있는가? (대회의 한 총무)
  답: 논쟁점은 우리가 만들지 않았다. 「교리에 관한 질문들」의 저자들이 만들었다. 「만들었다. 「교리에 관한 질문들」이 1957년에 나타나기까지 이 점에 관해서는 아무 논할 바가 없었다. 엘렌 화잇 당시 그녀는 이 문제를 중요치 않은 것으로 여기지 않았다. 다음 기록에 나타난 “오직”이란 낱말의 사용을 유의하라.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겸비와 궁핍을 통하여 당신 자신을 타락한 인류의 연약함과 동일시하셨다…. 위대한 구속사업은 오직 구속주가 타락한 아담의 자리를 취하심으로써만 수행될 수 있었다…. 영광의 왕께서는 당신 자신을 겸비케 하여 타락한 인간으로까지 낮추셨다…. 그분은 사람의 타락한 본성을 취하셨다”(리뷰 앤 헤랄드 1권, 140).

  6. 그리스도의 본성에 대해서는 이제 그만 얘기하자. (애드밴티스트 리뷰 지의 한 편집인)
  답: 참으로 좋은 권면이다. 그러나 30년 전에 했었더라면 좋았을 것을. 그 권면은 1956-1957년에 제시되었어야 했다. 리뷰 지와 목회(Ministry) 지에 「교리에 관한 질문들」 책과 함께 재림교인들로 하여금 그리스도의 본성에 관한 칼빈주의 적 교리를 받아들이도록 하기 위해 길고도 긴 기사들이 쓰였을 때 바로 그 권면이 필요했다.

  7.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께서 실제로 두 가지 인성, 즉 타락한 인성과 타락하지 않은 인성을 가지셨다고 가르친다면 그리스도의 인성에 관한 두 신조들을 조화시킬 수 있다. (신학대학원의 한 교수)
  답: 그리스도께서 타락한 인성을 소유하셨기에 하나님의 정죄 아래 그분을 두는 주장은 우리가 그 신조를 안 받아들이려 할 때 쓰는 논쟁의 기초였다. 만일 그것이 사실이라면 문제는 타락한 부분을 50%, 아니 5%로 감한다 해도 해결되지 않는다. 타락한 본성이 단 1%라도 있다면 그것은 그분을 정죄하는 것이 된다.
  그리고 만일 그리스도께서 타락한 인성을 소유하는 것이 그분을 하나님의 정죄 아래 두는 것이 사실이 아니라면 우리가 그 교리를 고수해도 아무 위험이 없다.

  전술한대로 우리가 한 광범위한 연구보고서인 「말씀이 육신이 되사」가 지금까지 약 3년간 우리 행정자들과 학자들의 손에 있어왔다. 북미에 있는 매 고등학교와 대학교의 도서관에 한권씩 보내졌으며, 수백 권이 해외로 보내졌다. 우리는 그 보고서를 냉철하게 검토할 충분한 시간과 기회가 있어온 것으로 믿는다. 우리는 이제 교인들이 그 검토한 보고를 들을 권리가 있는 것으로 믿는다. 우리는 그 교리의 토론에 참여할 때 그 교리가 우리 가운데 도입될 때 사용된 기만적인 기초를 언급하지 않는 것은 지적 고결함의 원칙에서 벗어나는 것으로 믿는다.

진리는 진리와 균형질 수 있으며, 또한 균형이 잡혀야 한다. 그러나 진리는 절대 진리가 아닌 것과는 조화를 못이룬다…. 성육신에 대한 참 교리와 성육신에 대한 거짓 교리 사이에는 어떠한 균형이나 조화가 있을 수 없다

  우리는 우리 교회 안에 있는 행정자들과 학자들이 모두 이 사실을 증거 해야 할 때가 왔다고 믿는다. 또한 우리는 그 증거에서 첫 번째 질문인 「교리에 관한 질문들」, 650에 실린 그리스도의 인성에 관한 진술이 엘렌 화잇에 의해 인용된 것을 제외하면 성경에서 인용된 것은 하나도 없다는 것을 말했는데, 모든 문장들이 엘렌 화잇의 기록들에서 발췌도니 것으로 구성은 됐는데, 설상가상으로 그 문장들 92줄에서 31개의 줄은 엘렌 화잇이 타스마니아에 있는 한 목사에게 쓴 개인적 편지에서 발췌한 것을 증거물로 사용한 것이며, 그녀는 그 편지를 전혀 간행하지 않았다. 그 편지는 그리스도께서 타락하지 않은 아담의 인성을 쓰고 이 땅에 오셨다고는 절대로 말하지 않았다. 그것은 그렇게 해석하려고 의도한 것이다.

  그것은 교회증언 5권, 696에 있는 그녀 자신의 호소와는 어울리지 않는 것이다.
  “만일 그대가 주님께서 그녀[화잇 자매]를 토해서 나타내신 것을 무엇인지 알기를 원한다면 그녀의 출판된 작품들을 읽으라.”

  놀랍게도 “교리에 관한 질물들”에 온전히 예언의 신에서 발췌한 문장들을 고수하는 어떤 이들은 동일한 예언의 신에서 발췌한 것이 서로 상치되고 잘못되었기를 원한다. 그들은 예언의 신을 그렇게 사용하는 것은 잘못이라는 태도를 보이면서 증거는 성경으로부터 나와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엘렌 화잇을 포함한 초기의 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교회의 저술가들은 그리스도의 인성에 관한 그들의 신조의 기초를 성경에 직접 두었다. 그리스도의 인성에 간해 그들이 사용하기 조아했던 성경 절은 로마서 8:3이었다.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주로 사용되던 다른 성경 절들은 다음과 같다:
  “이 아들로 말하면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고”(로마서 1:3).
  “거룩하게 하시는 자와 거룩하게 함을 입은 자들이 다 하나에서 난지라 그러므로 형제라 부르시기를 부끄러워 아니하시고… 자녀들은 혈육에 함께 속하였으매 그도 또한 한 모양으로 혈육에 함께 속하심은… 이는 실로 천사들을 붙들어 주려 하심이 아니요 오직 아브라함의 자손을 붙들어 주려 하심이라 그러므로 저가 범사에 형제들과 같이 되심이 마땅하도다”(히브리서 2:11,14,16,17).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거짓된 교리들이나 자신들이 진리를 소유하고 있는데도 그런 교리들을 고수하는 자들 위에 부을 수 없으시다

  그들은 그리스도께서 생각하셨던 타락한 본성의 상징으로서의 베드로의 사다리(베드로후서 1:4~8)와 야곱의 사다리(창 28:12~15)를 함께 보았다. 시대의 소망 2권, 26~29를 보라. 이 인용문에서 종종 지적되는 요점은 만일 그리스도께서 사람의 죄된 육체인 타락한 본성으로 오시지 않으셨다면 야곱의 사다리의 밑바닥은 땅에 닿지 않았을 것이며, 사람은 구원에 대한 아무 소망도 없었을 것이다.

  엘렌 화잇은 광야에서 모세에 의해 들려진 구리뱀이 그리스도께서 성육신 하심으로 죄된 육체를 쓰심 것을 예표하는 상징으로 사용한다. 민수기 21:9절이 인용된 시대의 소망 1권, 226~229; 1888년 엘렌 화잇 자료들, 1450,1451을 보라. 그녀는 예수님께서 문둥병자의 살을 만지실 때 아무 오염도 받지 않으신 것처럼 인간들 가운데 거하심으로 오염받으신 것이 없으셨다고 지적했는데, 만일 그런 기록이 타락하지 않은 아담의 본성에 적용되었다면 황당무계한 말이 되었을 것이다. 치료봉사, 62,63을 보라.

  잘 알려진 바대로 우리의 선구자들은 적그리스도에 관한 예언들을 교황권에 적용하였다. 그들은 무염새태설의 천주교 교리를 그리스도께서 타락한 사람의 육체로 오신 것에 대한 부인으로서 보고 그것이 적그리스도라는 정의에 해당하는 것으로 알았다.

  “미혹하는 자가 많이 세상에 나왔나니 이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임하심을 부인하는 자라 이것이 미혹하는 자요 적그리스도니”(요한이서 7).

  우리는 선구자들은 그리스도께서 타락한 사람의 본성을 가지고 육체로 오신 것을 부인하는 자들이 바벨론에서 완전히 빠져나온 것이 아니라고 여겼다. 「말씀이 육신이 되사」, 130, 131, 203, 204를 보라.

  이런 식으로 그들은 그들의 교리의 근거를 견고하게 성경에 두었고, 반면에, 「교리에 관한 질문들」의 저자들은 엘렌 화잇의 증언들이 그리스도께서 타락하지 않은 아담의 인성을 쓰시고 오셨다고 말하지 않는데도 거기다가 자신들의 해석을 가미한 것을 그 기초로 하였다.

  이만큼쯤 하면 이 기사를 읽는 분들은 우리가 이 문제를 두고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 궁금하게 여기게 될 것이다.

  여러분들은 여러분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엄숙하게 요청하는 것은 이 기사를 읽는 분들 5만~10만 명의 독자들 각자가 즉시 앉아서 적어도 5통의 편지를 쓰는 것이다. 하나는 여러분의 지방 대회에, 하나는 여러분의 연합회에, 하나는 여러분의 연합회에 속해 있는 대학의 성경 지도부에, 하나는 대총회에, 그리고 마지막 하나는 여러분의 목사님에게 보내는 것이다.

  각 편지마다에 여러분은 「교리에 관한 질문들」에서 사용된 방식에 대한 명명백백한 진술은 이미 기한이 너무 지난 것이며, 그런 진술들은 그 책을 쓴 사람들의 이름이 나와야 하는데 너무나 오랫동안 밝혀지지 않은 채이고, 저자들의 이름뿐만이 아니 그 책이 나오도록 강력히 추진한 사람들의 이름도 밝혀져야 한다는 여러분 자신의 소신도 밝힐 수 있다 은밀히 하는 것은 신뢰를 낳지 않는다.

  여러분은 부흥과 개혁은 기만적인 기초 위에 세워질 수는 없는 것이라는 소신을 밝힐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성령을 거짓된 교리들이나 자신들이 진리를 소유하고 있는 데도 그런 교리들을 고수하는 자들 위에 부을 수 없으시다.

  또한 여러분은 「교리에 관한 질문들」과 그 외의 다른 재림 교회의 문헌에서 기초된 교리가 기만적인 기초 위에 세워진 것임을 밝힘 없이 그리스도께서 타락하지 않은 아담의 인성을 쓰고 이 땅에 오셨다는 칼빈주의 교리의 토론에 참여하는 것은 솔직하지 못한 것이며, 기만에 위험스럽게 접근하고 있는 것이라는 소신을 밝힐 수 있다.

  지적 고결함의 문제를 다루도록 부르심을 받은 우리, 교인들은 만일 우리가 이 문제를 옳게 해결하지 않으면 그 문제에 관여된 모른다. 우리는 「교리에 관한 질문들」에 실린 잘못된 진술들을 제공한 이들의 동기를 심판하도록 부르심 받은 것은 아니나 지금 그 오류가 잘 알려진 이때 그 오류를 시정할 책임은 지고 있는 것이다. 그 때에야, 오직 우리는 확신과 신뢰를 가지고 성령의 부어주심과 진정한 부흥과 개혁을 위해서 기도할 수 있다.

  이것은 지적 고결함에 대한 우리 자신의 특별한 문제이다 우리가 기록을 바로 잡고, 우리의 가르침과 우리의 생애가 진리의 증거와 조화되는 것이 되도록 해야 할까? 아니면 다른 사람들처럼 “그 교리가 내게는 잘 맞으니까 나는 그 교리가 잘못된 기초 위에 놓여졌을지라도 그 교리에 집착할 것이다. 지적 고결함은 나와 상관이 없다”고 말할 것인가?

  다음의 증언을 잘 기억하도록 하자.
  “위대한 고숙사업은 오직 구속주가 타락한 아담의 자리를 취하심으로써만 수행될 수 있었다…. 영광의 왕께서는 당신 자신을 겸비케 하여 타락한 인간으로까지 낮추셨다…. 그분은 사람의 타락한 본선을 취하셨다”(리뷰 앤 헤랄드 1권,140).

  우리가 당신의 진리를 높이 치켜들려 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 각자와 함께 계시고, 우리가 편지들을 쓸 때 우리에게 특별한 도움을 주시기를 기도드린다.

  *필자는 극동 지호, 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교회 신학 대 학원의 교회와 목회학부 부장으로서 복사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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