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의 본성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Posted in 신신학의 정체

죄의 본성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강병국

 죄의 본성에 대한 이해는 우리의 성화에 대한 개념을 이해하는데 절대적으로 필요한 가르침 가운데 하나입니다. 이 문제에 대한 옳지 못한 정의를 가지고 나면 예수님의 인성 문제는 물론 우리의 성화의 과정에 막대한 지장을 초래하게 됨을 우리는 체험적으로 경험해 오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17장에서 우리 주님은 기도하시기를 “진리로 저들을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라고 하셨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진리에 대한 잘못된 이해는 우리를 거룩하게 만드는 일에 심각한 문제를 야기시키게 된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계시하신 말씀대로만 믿어야 할 것입니다. 흔히들 신학자들의 이론들과 해부하듯 파헤쳐 놓은 관념들을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뒤섞어 놓음으로 진리를 애매모호하게 제시하게 되어버린 형편들을 우리는 목격하게 됩니다.

 우리가 어떤 단어에 대한 서로 상이한 이해를 가지고 있으면 엉뚱한 결론에 서로 도달하기가 일쑤입니다. 예를 들어 복천년설을 믿는 천주교인들이 말하는 말세란 단어의 뜻과 우리들이 말하고 있는 말세란 말은 엄연히 다른 의미를 내포하고 있기 때문에 서로 다른 뜻을 가지고 말하게 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우리가 사용하는 “예언의 신(대언의 영)”이란 단어를 장로교회 교인들이 사용할 때는 화잇 부인의 글들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일반적인 성령의 역사를 말하고 있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 말이 내포하고 있는 의미를 이해하는 것은 중요합니다.

 죄의 본성 문제를 다루기 전에 원죄(Original Sin)설이란 무엇인지를 잠간 먼저 살펴보도록 합시다.
 흔히들 생각하기를 요한 웨슬레가 칼빈, 그리고 루터와 함께 원죄설에 대한 같은 이해를 가지고 있었다고 말들을 하고 있습니다만 그것은 사실과는 다른 이야기입니다. 칼빈과 루터는 원죄를 우리가 물려받는 죄의 공동 책임과 또한 도덕적인 연약성마저도 고쳐질 수 없는 것으로 보았기 때문에 칭의로서만 구원이 이루어진다고 보는 것이 그들로서는 당연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요한 웨슬레는 원죄(Original Sin)를 우리가 물려받는 연약성(Weekness)으로만 보았습니다.

 같은 단어를 가지고도 그들은 다른 의미로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칼빈 주의자들은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하나님께 정죄 받은 상태에서 태어난다고 생각해오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가르침은 반드시 개혁해야 하는 천주교회의 잘못된 가르침 즉, 만국을 취하게 만드는 진노의 포도주 중에 하나인 것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마지막 교회인 우리 교회 내에도 이러한 식의 가르침이 들어와 있는 사실들을 볼 때에 놀라움을 금치 못하는 것입니다.

 칼빈 주의자들의 원죄설은 꼬리를 물고 다음의 오류를 낳게 만들었는데 그것이 곧 예정설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예수님께서 태어나실 때에 어떠한 인성으로 오시었는가 하는 것입니다. 만약 모든 어린아이가 원죄를 가지고 태어남으로 태어날 때부터 정죄 받은 상태에서 나오게 되고 또한 변화함을 입어 하늘에 갈 때 까지는 치료받을 수 없는 연약성과 흠을 가지고 태어나는 것이라면 예수님께서는 우리와, 꼭같은 본성을 가지고 태어 날 수 없다는 자연적인 결론에 도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칼빈 주의자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원죄의 오염이 없이 기적적으로 아담의 타락하기 이전의 본성으로 태어나셨다고 가르치기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이제 여러분들께서는 많은 훌륭한 목사님들까지고 예수님께서 아담이 타락하기 이전의 본성으로 태어나셨다고 설교하게 된 그 배후의 흐름을 이제 이해하시겠습니까?

 만약에 그렇다면 어떻게 주님께서 우리와 한결 같이 시험을 당하셨다는 히브리 4장 15절의 말씀과 “자녀들아 아무도 너희를 미혹하지 못하게 하라 의를 행하는 자는 그의 의로우심과 같이 의롭고”라는 요일 3:7절의 말씀이 왜 기록되어 있으며, 또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예수님께서 승리하신 것처럼 우리도 승리하도록 어떻게 기대하신단 말입니까? 흔히들 우리가 승천하기 직전에 하나님께서 우리로 하여금 죄지을 수 없도록 기적적으로 변화시켜 주신 후 데려 올려 가신다고 말하는 소리를 들으면 아연 실색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죄의 본성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죄의 결과로 인해 생긴 연약성을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바로 유전적으로 타고나는 정신적, 도덕적, 신체적인 약점들을 가지고 태어나신 것입니다(시대소망 1권, 140). 그것을 가리켜서 우리는 죄의 본성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죄의 본성을 가지고, 즉 죄의 결과들인 죄에 대한 연약성과, 아울러 죽을 수밖에 없는 육체를 가지고 태어나는 그 자체가 죄는 아닌것이요, 또한 우리가 물려받아 태어나는 연약성은 성려의 능력으로 충분히 이길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모르는 칼빈 주의자들은 예수를 우리의 모본이 아니라 대속주로서만 이해하고 있는 것입니다. 마지막 세대가 되라고 부르심을 받은 우리들은 이 문제를 어떻게 이해하여야 할까요?

 어떤 한 목사님이 많은 사람들을 당혹케 하고 있는 답답스러운 한 가지 질문이 있습니다. 그것은 다음과 같습니다. “예수님께서 태어나셨을 때에 이기심이 있었습니까?” 대답 - 없었습니다. “우리 인간들이 태어날 때에 이기적으로 태어납니까?” 대답 - 그렇습니다. “자! 그렇다면, 어떻게 예수님께서 우리와 같은 본성으로 태어나셨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 그분은 그러므로 우리와 다른 본성으로 태어나셨습니다 - 타락하기 이전의 본성 말입니다.” 그럴듯한 논리인 것 같이 들리지요. 그러나 그것은 예언의 신을 읽지 않은데서 생겨나는 소치입니다. 예수님께서 타락이후 인간의 본성으로 오셨으면서도 아름다운 품성을 가지고 태어나실 수 있었던 이유를 우리는 다음의 예언의 신에서 찾아보게 됩니다.

 “부모의 인격은 자녀들에게 계승된다… 자녀를 해산하기 전일지라도 그 아이가 악을 대적하는 싸움을 성공적으로 싸울 수 있는 준비가 시작되어야 한다. 특별히 어머니에게 무거운 책임이 지워져 있다. 자기의 생명력으로 자녀를 양육하고 자녀의 육체적 조직을 형성시켜주는 어머님의 마음과 품성을 꼴지워주는 정신적 영적 감화력도 또한 나누어 주게 된다… (모세 어머니, 사무엘 어머니, 침례요한 어머니, 그리고 삼손의 어머니의 예들)…… 만일 어린 아기를 출산하기 전에 어머니가 방종하거나 이기적이고 조급하며 흥분적이면 그런 기질들이 아기의 성질에 반영될 것이다. 그리하여 많은 자녀들이 거의 극복할 수 없는 악의 성향들을 상속물로 물려받았다. 그러나 만일 어머니가 확고하게 바른 원칙들을 따르고, 절제하고 극기하면, 또한 그가 친절하고 온유하고 이타적(비이기적)이면, 그는 그와 같이 고귀한 모든 품성의 특성을 아기에게 물려 줄 수 있다”(치료봉사 338, 339).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의 어머니가 될 수 있는, 이기심이 없기까지 거듭나고 희생적이며 순종하는 한 여성을 오래도록 찾으셨습니다. 드디어 하나님께서는 천사의 방문을 받고 “주의 계집종이오니 말씀대로 이루어지리이다”라는 굴복의 말을 하는 한 여인 마리아를 발견케 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여러분과 저와 같은 본성으로 오시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번도 죄를 짓지 않으신 생활을 사셨습니다. 이 엄청난 복음의 능력을 손수 보여 주신 후 오늘도 우리에게 나를 따라오라고 못자국난 사랑의 손을 벌리시고 초청하고 계십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하시렵니까?


 

Family Sites

통합 사이트sostv.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