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림 교회 신학의 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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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림 교회 신학의 위기

저자: 본 선교 기관 (1989년 이후부터 지금까지 재림 교회가 가지고 있는 진리와 기별을 교회 안과 세상에 전파하기 위하여 출판 사업과 테입과 텔레비젼 방송을 해오고 있는 자영 선교 기관)

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교회가 생겨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우리의 선조들이 "2300주야" 예언의 의미를 이해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토요일이 참 안식일이라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도 아니며, 예수 재림에 대한 교리를 깨달았기 때문도 아니었다. 그런 성경의 가르침들은 다른 여러 개신 교회들이 과거에 이미 그것들을 성경상 진리로 깨달아서 가르쳐 왔던 교리들이다. 제칠일 침례교회와 초기 감리교회가 그러한 실례들이라 할 수 있겠다. 그러므로 재림교회가 태동하게 된 이유는 안식일 진리나 예수 재림 또는 건강 개혁 기별 등 우리가 현재 사랑하며 믿고 전하고 있는 그러한 교리들 때문이 아니다. 우리 재림 교회의 선구자들은 예수께서 1844년에 성소에서 하늘 지성소로 들어가셨다는 사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이해하고 나서야 드디어 재림교회를 설립하게 되었고 마지막 시대에 여자의 남은 자손으로서 존재하기를 시작한 것이다.

    그런데, 선구자들이 하나, 둘씩 죽고 나자, 우리 교회 내부에서부터 심각한 문제가 생기기 시작하였다. 예수께서 하늘 지성소로 들어가셔서 새로운 봉사 사업을 시작하셨다는 뜻이 무엇인지를 이해하는 재림교인들의 숫자가 경악할 정도로 줄어들기 시작한 것이다. 이러한 현실은 하루 아침에 생긴 일이 아니다. 오랫동안 교회가 외형적인 성장에 더 많은 신경을 써오다가 우리가 왜 재림 교회가 되었는지 그 뿌리를 잊어버리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이제는 교회 안에서, 예수께서 1844년에 지성소에 들어가셔서 조사 심판을 시작하셨다는 가르침은 옛날 재림교회의 선구자들이 대 실망 이후에 자기들의 실수를 변명하려고 내세운 체면 유지(Face Saving)를 위한 논리에 불과한 것이라고 말하는 극단적인 신신학 세대들이 버젓이 큰 소리를 치기 시작하는 시대가 되어 버렸다. 그러나 2300주야의 종점인 1844년을 흔들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다. "만일 그대들이 1844년을 흔들어서 없애면, 재림 교회만이 가지고 있는 대속죄일과 지성소 정결 사업에 대한 기별이 그 의미를 완전히 상실하게 되고, 그것은 곧 죄에 대한 완전한 승리의 기별을 제거하게 되며, 그 결과 재림 교회는 늦은 비를 불러오는 기별을 잃어버리게 된다는 사실을 기억하라!"고... 그렇다! 1844년을 흔들어서 그 의미를 희석시키는 사람은 자신이 재림 교회가 늦은 비를 위하여 준비되는 일을 결정적으로 막음으로써 재림 교회의 존재 이유와 목적과 사명을 말살해 버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만 한다.

    요즈음 북미주 한인 재림교회의 웹사이트 게시판에 올라오는 글들에는 이러한 신신학적인 논리가 큰 인기를 누리고 있다. 십자가에서 죄에 대한 구속의 역사가 다 끝나버렸는데 왜 조사심판이라는 우스꽝스러운 논리를 내세워 개신교회로서 믿을 수 없는 이상한 가르침을 가르쳐 왔는지 모르겠다며 그렇게 잘못 가르쳐 온 실수와 오류를 우리 재림교회의 지도자들은 솔직하게 인정하고 고백해야 한다고 말하는 신학자들과 교인들이 우후죽순격으로 나타나고 있다. 최근에 캘리포니아 주에 있는 한 재림 교회 대학에 있는 한국계 K 교수는 미주 재림 교회 웹사이트의 게시판에서 이렇게 말하였다. "저의 사상이 위험하다고 생각하셔도 좋고 제가 신임을 받지 못하고 있다고 하셔도 괜찮습니다. 튀려고 애쓴다는 평가도 재미있습니다. 다만 한 말씀 드리자면 김 oo 님이 인용하신 저의 데스몬 포드에 관한 말은(오늘 카스다에서 한 저의 말) 북미주 우리 교단 신학자들의 다수가 가지고 있는 생각과 비슷합니다."

    교회에서 양들에게 정말 필요한 꼴들을 먹이지 못하고, 마치 다른 교파들에서 들을 수 있는 설교들과 비슷한 비 재림교회적인 설교들이 들려진지가 꽤 오래 된 것 같다. 이제 그 결과가 참담하게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많은 재림 교인들이 지금 읽고 있는 이 글이 무슨 말인지 조차 모르거나 아무런 관심도 없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은 우리의 마음을 무겁게 한다. 참으로 가슴 아픈 현실이 되어 버렸다.
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교회는 하나님께서 특별하게 세우신 마지막 교회가 아니라고 생각하고 살아가는 재림 교인들의 숫자가 크게 늘어나고 있다. 여자의 남은 무리라는 명칭도 불필요하다 생각한다. 어떤 이름 있는 분의 설교를 들은 적이 있다. 그는 이렇게 역설하였다. "나는 세 천사의 기별, 세 천사의 기별 하는 말을 듣는 것이 이젠 지겹습니다. 그런 말 좀 고만 합시다." 그 말은 다시 말해서 제 칠일 침례교 정도로, 현재 개신교회들이 가르치는 복음의 수준으로 다시 돌아가자는 것이며, 종교개혁자들 당시의 신학 수준으로 되돌아가는 것이 오히려 양심적인 일이라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이야기들이 아직도 성경과 예언의 신에 의존하여 신앙 생활을 하고 있는 보수적인 교인들에게는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재림 교회의 정체성과 재림 신앙의 본질을 이미 잃어버린 사람들에 의해서 재림 교회가 장악되어 가고 있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하늘에 지성소 사업은 없는 것이며, 2300 주야의 성소 정결은 마지막 시대의 대속죄일에 대한 예언이 아니라, 옛날 시리아 왕이었던 안티오커스 에피파네스가 유대인들을 핍박한 약 7년여 동안의(실제 문자적인 2300일) 사건을 예언한 것에 불과하다"고 말한 데스몬 포드(1970년대 신신학의 기수인 신학자)의 가르침이 다시 인기를 끌고있는 시대가 되었다. 심지어 이제 다시 그를 복직시키자는 주장들이 인기를 얻고 있다. 어떤 이들은 데스몬 포드 박사야 말로 재림 교회 안의 양심적인 학자이며 순교자였던 것처럼 묘사하고 있다. 예수께서 십자가 위에서 모든 죄의 문제를 다 해결하고 구속 사업을 완성해 놓으셨는데 왜 또 하늘 성소 사업을 운운하며 구속 사업을 어렵게 만들어 놓느냐는 것이 데스몬 포드의 역설이다.

그가 하늘 지성소의 사업을 부인하고 나선 이유는, 그래서 2300주야의 예언을 전체적으로 부인하고 나선 이유는 그의 복음에 대한 이해가 달라졌기 때문이다. 재림 교회가 가지고 있는 영원한 복음이 다른 개신교회가 가지고 있는 복음과 다름이 없다는 것이다. 여자의 남은 무리라는 마지막 시대의 참된 교회의 존재는 재림 교회의 선구자들이 아전인수격으로 해석하여 놓은 미성숙한 교리라는 것이다. 그는 예수께서 부활 승천하신 후에 직접 하늘 지성소로 들어가셨다고 말한다. 히브리 9장의 말씀들이 헬라어 원어와 그 문맥상으로도 분명한 지성소 사업을 뒷받침해주고 있는데도 말이다. 그들은 2300 주야의 예언이 교황권에 관련된 예언이지 마지막 시대의 대속죄일 기간에 대한 성소 정결의 의미를 말하는 것이 아니며, 그것은 재림교회 선구자들이 짜내어 만들어 놓은 엉터리 논리라고 공격한다.

    이러한 자유주의 신신학을 들여와 재림교회를 뿌리로부터 흔들려는 사람들은, 개신교회가 재림교회를 이단이라고 규정하고 있는 꼭 같은 이유들을 그대로 들어서 말하기를, 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교회는 그 복음과 성소 문제에 있어서 잘못된 오류를 가르쳐 왔으며 또한 그러한 성경적인 근거가 없는 오류들에 대한 진실을 감추어 왔다는 사실을 솔직하게 고백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논리들이 북미 한인 재림교회의 인터넷 웹 사이트에서 꽤 인기를 끌고 있으며, 지도자들과 인터넷 사이트의 책임자들은 수수방관 내지는 오히려 부추기는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는 현실이다. 예언의 신에 의존한 정통 재림 신앙의 글을 올리는 사람들은 마치 용도 폐기된 낡은 사상을 고집하는 사람들처럼 몰아가는 신신학 신봉자들에 의해서 미주 재림 교회의 공식 웹사이트가 유린 당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깊은 슬픔과 아픔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자유주의 신학을 반박하여 올라오는 글들은 빈약한 내용을 가지고 있는 글들이거나 또한 오히려 제지를 당하거나 삭제를 당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화잇 부인은 하나님의 영감을 받은 종이라고, 그분의 글들은 유익하고 감동적인 것들이라는 이중적인 글을 실기 때문에 미주 재림 교회의 웹사이트 게시판에서 그들의 기사를 읽는 사람들은 그들의 신신학적 논리를 더욱 신뢰하게 된다. 율법주의적인 신앙을 버리고 새롭게 진보된 재림 사상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하는 그들의 젊잖게 보이는 말투과 태도는 많은 재림교인들을 더욱 혼돈시키는 결과를 빚어내고 익다. 과연 그들은 화잇여사가 말하고 예언한 하늘의 지성소 사업과 조사심판에 대한 수많은 말씀들을 읽었는지 안 읽었는지... 그들은 이렇게 말한다. 화잇여사는 지나간 시대의 과거 역사의 울타리에서 벗어나지 못한 사람이었다고. 그 당시에는 그렇게 이해할 수 밖에 없었던 시대적인 배경 속에서 일어난 소치였다고. 우리는 훨씬 더 밝은 빛 가운데 있으니 과거의 편견들에서부터 해방되어야 한다고. 이미 용도 폐기된 낡은 사상을 버리고 진보된 재림 신앙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참으로 눈물 나는 현실이 아닐 수 없다. 이런 시점에서 재림 교회를 뿌리째 흔들고 있는 이러한 가르침들을 향하여 소리치는 사람들이 별로 없으니 정말 안타까운 현실이다! 아니 오히려 다른 일들에 바빠서 별 관심이 없거나, 아니면 일부 소수 무리들이 하는 일이라고 안심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러한 사태는 생각보다 훨씬 더 심각하며, 예언의 신에 벌써부터 예언되어진 일들이다. 그런데 제일 큰 문제는 이러한 자유주의를 신봉하는 자들의 도전에 대하여 성경적으로 그리고 논리적으로 또한 합리적인 이유들을 가지고 설명하여 줄 수 있는 사람들이 별로 없다는 데 있다. 왜 우리가 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교인들인지 그 이유와 존재 목적을 상실한 시대가 되어 버렸다.

    또한 많은 교인들이 그러한 가르침을 듣고도 크게 반응하지 않는 이유는, 어떤 의미에서 이러한 신신학의 가르침이 죄 가운데서, 완전한 굴복 없이도 구원 받을 수 있다는 자기들의 견해에 동의해 주고 있으며, 당분간이라도 마음 속에 있는 거짓 평안을 누릴 수 있도록 핑계하는 일에 도움을 주기 때문일 것이다.

    많은 교회 지도자들이 바벨론 교회에서 가르치는 교회 성장학들을 배우느라고 여념들이 없었고, 진리를 수호하기 보다는 인간의 명예를 위하여 일할 수 밖에 없는 현실 속에 있으며, 너무나 빈번하게 일어나는 지방 교회의 싸움들 때문에 양쪽 파들을 방문하여 돌보는 일들에 신경과 시간을 다 바쳐가며 일하다가 지쳐있는 목회자들을 볼 때에 마음에 동정을 금할 길이 없어진다. 이러한 결과가 초래된 것이 모두 우리의 잘못이요, 자업자득이라 할 수 있으리라. 교회 안에 들어온 신신학은 재림 교회의 지도자들로 하여금 죄에 대한 완전한 승리의 기별을 거절하거나 무시하게 만들었을 뿐아니라 교회 전체의 표준을 크게 떨어 뜨림으로써, 교인들은 도덕적으로 영적으로 깊은 나락으로 떨어지게 되었다.

"그러나 2300주야와 관련된 성소 문제와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의 믿음 등과 같은 주제들은 과거의 재림운동을 설명해 주고 현재의 우리의 위치를 보여 주는 동시에 의심하는 자들의 신앙을 일으켜 주고 영광스러운 미래를 확증시켜 주는 데 아주 적절한 것들이다. 이러한 것들이 기별자가 심사 숙고해야 할 주요한 주제들인 것을 나는 여러 번 보았다."
초기문집, 63

" . . . . 그리고는 우리의 진리의 이정표들과 기둥들을 무너뜨리는 일들이 있을 것이다." 마라나타, 189
"세째 천사의 기별은 이렇게 끝을 맺는다.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저희는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 그는 이 말을 반복하면서 하늘 성소를 가리켰다. 이 기별을 깨닫는 모든 사람들의 마음은 지성소로 향하게 되었다. 그 곳에서는 예수께서 법궤 앞에 서서 아직도 자비를 베풀 모든 사람과 무지하므로 하나님의 율법을 범하고 있는 자들을 위하여 마지막 중보를 하고 계시다. 이 속죄는 죽은 의인과 살아 있는 의인을 위한 것이다. 그것은 예수를 믿고 죽었으나 계명에 대한 빛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무의식 중에 계명을 범한 모든 자들을 위한 것이다.

"예수께서 지성소의 문을 여실 때 나는 안식일에 대한 빛을 보았다. 그것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율법을 지키는지 지키지 않는지를 시험 받았던 것처럼 하나님의 백성들이 시험을 받았다. 나는 셋째 천사가 위를 가리키면서 실망한 자들에게 하늘 지성소로 가는 길을 보여 주는 것을 보았다. 그들은 믿음으로 지성소에 들어가 예수님을 만났다. 희망과 기쁨이 그들 가운데 새로이 솟아 올랐다. 나는 그들이 예수의 재림을 선포한 때로부터 1844년이 지나기까지 그들의 모든 과거의 경험을 돌아보며 회고하는 것을 보았다. 그들은 그들이 실망한 이유를 깨닫자 다시 기쁨과 확신이 생겼다. 셋째 천사가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밝히 보여 주었을 때, 그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기이하신 섭리로 인도하신 사실을 알게 되었다."
(초기문집, 254)

"그러나 백성들은 아직도 그들의 주님을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그들에게는 아직도 이루어야 할 준비의 과업이 남아 있었다. 그들은 그들의 마음을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성전으로 향하게 하는 빛을 받아야 할 것이었다. 그리고 그들이 믿음으로 거기서 봉사하시는 대제사장을 따라감으로 그들에게는 새로운 의무가 밝혀질 것이었다. 또한 교회는 또 하나의 다른 경고의 기별과 교훈을 받아야 할 것이었다.

    선지자는 "그의 임하는 날을 누가 능히 당하며 그의 나타나는 때에 누가 능히 서리요 그는 금을 연단하는 자의 불과 표백하는 자의 잿물과 같을 것이라 그가 은을 연단하여 깨끗게 하는 자같이 앉아서 레위 자손을 깨끗게 하되 금은같이 그들을 연단하리니 그들이 의로운 제물을 나 여호와께 드릴 것이라"(말 3: 2, 3)고 말한다. 하늘성소에서 그리스도의 중보 사업이 그치게 될 때 세상에 살아 있는 사람들은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 중보자 없이 서게 될 것이다. 그들의 옷은 흠이 없어야 하고, 그들의 품성은 피뿌림을 통하여 죄에서 깨끗해졌어야 한다. 그들은 하나님의 은혜와 그들 자신의 꾸준한 노력으로 말미암아 악과의 투쟁에 승리자가 되어야 한다. 하늘에서 조사 심판이 진행되고 있는 동안, 회개한 신자들의 죄가 성소에서 도말되고 있는 동안, 세상에 있는 하나님의 백성들 사이에는 정결케 하고 죄를 버리는 특별한 일이 이루어져야 한다. 요한계시록 14장의 기별에 이 사업이 더욱 분명하게 기록되어 있다. 이 일이 완성될 때에,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들은 그분의 재림을 맞이하기 위한 준비를 갖추게 될 것이다." 대쟁투, 424-425

이러한 글들이 예언의 신 속에 있다는 사실을 신신학을 믿는 자들은 과연 알고 있는지 모르고 있는지... 재림 교회에서 하늘 지성소 사업과 2300주야 예언을 무너뜨려 버리면 우리의 존재 자체의 의미가 없어져 버린다. 죄에 대한 완전한 승리의 기별을 부인하는 신신학의 신봉자들은 하늘 지성소 정결 사업을 부인하게 되고, 그것을 부인하면 1844년 이후로 대속죄일이 시작되었다는 사실을 부인하게 됨으로써, 결국에는 2300주야 예언 해석을 변경시키게 되는 것이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영원한 복음은 완전한 복음이다. 점점 더 빛나서 완전한 광명에 이른(잠 4:18) 진리이다. 대속죄일에 대한 이해와 조사 심판이 없으면 복음의 결론이 없어지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중요한 교리들을 없애자고 한다면, 차라리 재림 교회의 문을 닫아 버리고 침례교회나 장로교회와 연합하여 버리자고 하는 편이 훨씬 더 정직한 말이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 마지막 시대에 재림 교회를 세우신 것이 아니라, 그저 인간적인 실수에서 발생한 우연의 소치란 말인가? 재림교회의 존재 이유를 송두리채 흔드는 그런 이야기를 믿는 사람들이야 말로 재림교회를 자원하는 마음으로 떠나야 할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사람들의 말들에 대하여 교회가 별로 위기 의식을 느끼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이러한 현상은 보기보다도 훨씬 더 심각한 상황에 와 있다. 캘리포니아 주에 있는 한 재림 교회 대학 신학과에 재직 중인 한국계 K 교수의 말처럼 미주에 있는 대부분의 재림 교회 신학과 교수들은 데스몬 포드를 다시 교회의 강단에 세워야 한다는 사실에 동의하고 있는 현실은 우리 모두를 깊은 기만과 잠에서 깨워야만 한다. 과연 누가 교회를 흔들고 있는 것인가? 아합이 엘리야를 향하여 한 말이 생각난다. "이스라엘을 괴롭히는 자가 너냐?"

    2300주야 예언이 처음에는 다니엘에게 이해되지 못하였다. 그래서 다니엘 9장에, 다니엘에게 그 이상을 깨닫게 해주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받고 가브리엘 천사가 다시 내려 온다. 흥미있는 것은 히브리어로 다니엘의 전체적인 이상(계시)들은 "Hazon" 이라고 쓰여졌고, 2300 주야에 관한 이상은 "Mare" 라고 구분하여 불려졌다. 그런데 다니엘 8장 26절에 "이미 말한 바 주야에 대한 이상이 확실하니 너는 그 이상을 간수하라 이는 여러 날 후의 일임이니" 라고 말씀하였을 때와 2300 주야의 이상을 말할 때 Mare 라는 단어가 사용되었고, 또한 다니엘 9장 23절에 가브리엘이 "곧 네가 기도를 시작할 즈음에 명령이 내렸으므로 이제 네게 고하러 왔느니라 너는 크게 은총을 입은 자라 그런즉 너는 이 일을 생각하고 그 이상을 깨달을지니라" 라고 말했을 때도 Hazon 이 아니고 Mare 라는 단어를 사용하여서 그가 9장에서 다시 설명하여 주는 예언이 2300 주야에 대한 예언이라는 사실을 강조하여 준 것을 볼 수 있다. 그리고 다니엘 8장 19절에 "가로되 진노하시는 때가 마친 후에 될 일을 내가 네게 알게 하리니 이 이상은 정한 때 끝에 관한 일임이니라"라고 하여 2300 주야 예언이 마지막 시대에 있을 사건이지 예수님의 초림을 전후로 일어나는 사건일 수가 없다는 것을 명시하여 주었다. 그리고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단 8:26절, "이미 말한 바 주야에 대한 이상이 확실하니 너는 그 이상을 간수하라 이는 여러 날 후의 일임이니"에서 같은 절에 이상이라는 단어가 두번 나오는 데, 첫번째 주야에 대한 이상을 말할 때는 Mare 라고 했고 두번째 "너는 그 이상을 간수하라"고 할 때는 전체적인 이상을 말하는 Hazon을 써서 구분하여 놓았다. 이것만 보아도 다니엘 9장이 설명하는 70주일 예언이 2300일 예언의 시작점이라는 것을 알 수가 있다. 데스몬 포드의 주장에 따른다면 예수님의 침례 받으신 27년과 십자가에 달리신 31년도 아무런 의미가 없어지고 마는 것이기에 그는 심지어는 그러한 년대들의 신빙성까지도 도전하는 말들을 서슴지 않고 하게 되어 버릴 정도로 엉뚱한 방향으로 튀어 나가게 된 것이다. 얼마나 교회가 이러한 기본적인 가르침을 가르치지 않았으면 데스몬 포드의 주장이 오늘날 현대 재림 교회 안에서, 특히 젊은 세대 가운데서, 이렇게 힘있게 다시 올 수 있단 말인가!

    2300주야의 예언의 신빙성을 확증할 만한 성경적인 증거들은 얼마든지 있다. 이러한 기초적인 설명을 다시 할 필요가 생겼다는 사실 자체가 우리를 참으로 부끄럽게 한다.

    신신학 중에는 중용을 유지하며 별로 눈에 띄지 않는 신신학도 있는데, 현재 재림 교인들 가운데 상당 수가 바로 이 온건파 신신학을 믿고 있다고 보아도 그렇게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그러한 사람들이 믿는 복음은 침례교나 장로교회 교인들이 믿는 수준과 대동소이하다. 문제는, 그러한 식으로 믿고 있는 사람들이 자기들의 믿는 바가 원래 재림교회의 영원한 복음이 아닌 변질된 복음을 믿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거나 관심 조차 가지지 않은 채 살아 가고 있다는 것이다.

    재림교회 유럽지회의 총무 부장을 지내고 유럽 성경 연구 위원회의 의장을 역임한 바 있는 J.R. Zurcher 박사는 최근에 리뷰 앤 헤랄드사를 통하여 출간한 그의 책, "Touched with Our Feelings"(우리를 체휼 하신 분) 162 페이지에서 우리 교회의 교리의 타협을 다음과 같이 예리하게 파헤치고 있다. (www.finalg2.org 웹사이트의 자료실에 책 전체가 번역되어 있음) 그는 그의 저서에서 신신학이 우리 교회에 들어와서 퍼뜨린 오류, 특히 변질되어 버린 '그리스도의 인성'에 대해 말하면서 언급하기를 "재림교회에 세워진 바뀌어진 새 이정표는 그리스도의 인성에 관한 전통적인 바른 가르침에 비하여, 4가지 부분에 걸쳐서 확연히 다른 입장을 나타내고 있다"고 하였다. 먼저 재림 교회의 전통적인 가르침을 보자.

재림 교회 정통 신학이 말하는 그리스도의 인성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인성에 우리의 타락한 본성을 취하셨다. 만일 그렇게 하지 않으셨다면, 주께서는 그 형제들과 같이 되실 수도, 우리와 같이 모든 일에 한결같이 시험을 받으실 수도 없으셨을 것이다. 또한 우리가 이기는 것처럼 이기신 것도 아니었을 것이요, 인간이 필요한 그러한 온전하신 구세주가 아니셨을 것이다...그리스도께서는 인성으로서 아담의 모든 자손들처럼 죗된 본성을 물려받으셨다. 신성의 편에서는 잉태되실 때부터 성령으로 탄생하시었다. 이 일로 인하여 인간은 더 나은 고지로 올려 놓아지게 되었고, 성령으로 태어나는 모든 사람은 그리스도께서 승리하신 것처럼 승리해야 한다 " 1946년도 판 Bible reading for the home (대총회 발간 - 이것은 화잇 선지자가 살아있던 당시 우리 교회가 믿던 신조였음 ). 1950년대 초에 변조된 교리문답집이 나오기 전까지 이것이 대총회가 공인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인성이었다.

이제, J.R Zurcher 목사님이 지적한, 신신학이 말하는 4가지의 바뀐 그리스도의 인성을 살펴보자.

신신학이 말하는 그리스도의 본성

1. 그리스도께서는 타락하기 전 아담의 영적인 본성을 취하셨다. 즉 죄없는 인성이다.

2. 그리스도께서는 유전적으로는 단지 육체적으로만 죗된 인성의 결과를 받아들였을 뿐이다. 즉 그의 타고난 유전은 4000년 동안의 죄로 인하여 연약하여진 것이었지만, 그의 마음과 본성은 우리와 다른 것이었다.

3. 그리스도께서 받으신 시험과 아담이 받았던 시험의 차이점은 오직 환경과 상황적인 것이고, 본성의 차이점에서 오는 것이 아니었다.

4. 그리스도께서는 세상의 죄를 대신 지셨으나, 실제로 지신 것이 아니라 오직 죗된 인간의 대리자로서 인간의 죗된 본성에 참가하지 않으신 채로 지셨다.

    그는 같은 저서에서 또 말하기를 "대총회의 공인을 받아 공개된 제 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교 교리에 관한 문답(Seventh-day Adventists Answer Questions on Doctrine)에는 신신학자들에 의하여 우리 재림교회의 전통신학과 다르게 바뀐 그리스도의 본성이 실려져 있는데, 이 책은 벌써 여러 신학교들, 대학들, 공립도서관들에 보급되어졌으며 수천 권이 성직자들과 비 재림교 신학 교수들에게 보내졌다. 그리고 거의 140,000권이 출판되었고 재림교회 안팎으로 큰 영향을 행사하였다." 라고 말하였다.

    재림교회가 큰 위기를 직면하고 있다. 우리는 지금 다시 가나안 땅 변경인 가데스 바네아에 와 있다. 우리는 이제 곧 그렇게도 그리던 새 땅에 들어가게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불쌍하게 여기셔서 우리들을 망하게 하는 거짓 복음과 오류들에서 교회를 보호해 주시기를 간절하게 기도 드린다. 하나님의 남은 자손들은 결국에 승리할 것이다. 하늘 지성소 사업이 과연 무엇을 의미하고 있는지를 아는 주의 백성들이 그래도 아직 교회 안에 존재하고 있다. 지성소에서 우리를 위해 아직도 중보하시는 예수님의 사역을 알며, 예수께서 지성소에서 우리의 중보 사업을 마치시기 전에 우리의 죄가 온전히 용서받아야 할 뿐아니라 죄를 온전히 회개하고 승리하는 경험을 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함을 아는 백성들이 아직 교회 안에 존재한다. 그들에게 곧 늦은비가 주어지게 될 것이고 세상을 향한 세 천사 기별의 사업이 마쳐지게 될 것을 우리는 믿는다. 다음의 눈물겨운 예언의 신의 글을 기도하는 마음으로 읽어 보시기를 간절하게 바란다.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에는 목적이 있다. 그러나 그대들은 그 목적을 좌절시키고 있다. 그분께서는 그대들이 얼마 안 있어 좌절되는 것을 보지 않을 수 없는 그런 사태가 이르러 오도록 하실 것이나, 그 때는 너무 늦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엘리야에게, 잔인하고 기만적인 하사엘에게 기름을 부어 시리아의 왕이 되게 하고 그로 하여금 우상숭배에 젖어 있는 이스라엘을 응징하도록 명령하셨다. 하나님께서 그대들이 좋아하는 기만 가운데 그대들을 버려 두지 않으실지 누가 아는가? 성실하고, 확고하고, 진실한 설교자들이 우리의 배은 망덕한 교회들에게 평화의 복음을 전해줄 마지막 사람들이 될지 누가 아는가? 멸망시키는 자들은 이미 사단의 손에 훈련을 받고 있으며, 위치를 바꾸기 위하여 몇 사람의 기수들만 더 떠나가고, 주님께서 평화가 없다고 말씀하셨음에도 불구하고 "평화, 평화"라고 부르짖는 거짓 선지자의 음성이 들릴 때만 기다리고 있는 것 같다. 나는 좀처럼 울지 않는다. 그러나 이제 나의 눈은 눈물이 어려 볼 수 없다. 내가 글을 쓸 때 눈물이 종이 위에 떨어지고 있다. 우리들 가운데서 모든 예언하는 일은 머지않아 그칠 것이다. 그리하여 사람들에게 분기시켜 온 음성은 더 이상 육신적 잠을 자고 있는 자들을 방해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의 유일한 안전은 하나님의 독특한 백성으로 서는 것이다. 우리는 이 타락한 시대의 습관과 유행에 한 치도 양보하지 말고 도덕적으로 자립하고 그 부패한 우상숭배의 관습과 타협하지 말아야 한다.

    "그리스도교계의 신앙적 표준보다 더욱 뛰어나는 것에는 용기와 자립이 요망될 것이다. 그들은 구주의 극기의 본을 따르지 아니한다. 그들은 희생을 하지 않는다. 그들은 그리스도께서 제자가 되는 표라고 주장하시는 십자가를 면하고자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다.

    "우리의 백성들을 각성시키기 위하여 내가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는가? 나는 성경을 풀이하기 위하여 백성 앞에 서는 적지 않은 목사들이 더러워져 있음을 그대들에게 말한다. 그들의 마음은 부패하고, 그들의 손은 부정하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평안하다, 평안하다"라고 부르짖는다. 그러므로 죄악의 일꾼들은 불안해 하지 않는다. 여호와의 손이 짧아 구원치 못하심도 아니요 그분의 귀가 둔하여 듣지 못하심도 아니다. 오직 우리의 죄악이 우리와 하나님 사이를 분리시켰다. 교회는 몸을 더럽히고 심령을 불결하게 하는 교인들 때문에 부패해진다.

    "만일 덕을 세우는 일과 기도를 위한 집회에 함께 참석하는 모든 사람들이 진정한 예배자로 인정받을 수만 있다면, 비록 우리가 해야 할 것이 아직 많이 남아 있을지라도 우리는 희망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우리 자신을 속일 수는 없다. 사실은 외관상으로는 보여지는 것과 너무도 다르다. 멀리에서 보면 많은 것들이 아름답게 보일지라도 가까이에서 살펴보면 결점 투성이로 나타날 것이다. 우리의 시대에 편만한 정신은 불신과 반역의 정신, 진리의 지식 때문에서가 아니고 실상은 가장 맹목적인 추측 때문에 생긴 거짓된 계몽의 정신이다. 하나님의 분명한 말씀과 그분의 영의 증언에 반대되는 정신이 있다. 단순한 인간의 이성을 계시된 하나님의 지혜보다 맹목적으로 높이는 정신이 있다.

    "이른바 소수의 자만에 빠진 철학가들의 견해를 성경의 진리나 성령의 증언들보다 더욱 신뢰할 만한 것으로 주장하는 사람들이 우리들 사이에서 책임 있는 지위를 차지하고 있다. 바울과 베드로와 요한의 믿음과 같은 그런 믿음은 오늘날에 있어서 시대에 뒤떨어진 것이고 통할 수 없는 것으로 생각된다. 그것은 불합리하고, 신비적이며, 지성적 마음에 합당치 못하다고 선언된다?

    "큰 당황과 혼란이 있을 날이 신속하게 접근하고 있다. 천사의 옷을 입은 사단은 할 수만 있으면 택한 자라도 미혹할 것이다. 신들도 많고 주도 많을 것이며, 온갖 교리의 바람이 불 것이다. "거짓되이 일컫는 지식"(딤전 6:12)에 가장 큰 존경을 바쳐온 자들은 그 때에 지도자들이 되지 못할 것이다. 지성과 비상한 재주와 재능을 의지해 온 자들은 그때에 일반 대중의 선두에 서지 못할 것이다. 그들은 빛에 보조를 맞추지 않았다. 불성실한 자로 드러난 자들에게는 그 때에 양떼가 맡겨지지 않을 것이다. 불과 소수의 위대한 사람들만이 마지막 엄숙한 사업에 참여하게 될 것이다. 그들은 자부심이 강하고,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기 때문에 그분께서 그들을 사용하?수 없다. 주님께서는 성실한 종들을 갖고 계시는데 그들은 흔들고 시험하는 시기에 드러나게 될 것이다.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않은 숨은 고귀한 사람들이 오늘날 있다. 그들은 그대들에게 집중적으로 비춰온 빛을 갖지 못했다. 그러나 거칠고 매력 없는 표면 이면에 있는 진정한 그리스도인 품성의 순결한 빛이 드러나게 될 것이다. 낮에 우리는 하늘을 쳐다볼지라도 별들을 보지 못한다. 별들은 물론 하늘에 고정되어 있다. 그러나 눈으로 그것들을 분별해 낼 수 없다. 밤에 우리는 별들의 진정한 빛을 바라보게 된다.

    "각 영혼에게 시험이 다가올 때가 멀지 않다. 짐승의 표가 우리에게 강요될 것이다. 한걸음 한걸음씩 세상의 요구에 양보하고 습관에 순응해 온 자들은 조소와 모욕과 위협적인 투옥과 죽음을 당하기보다는 오히려 권력에 굴복하는 것이 어려운 문제가 아님을 알게 될 것이다. 싸움은 하나님의 계명과 사람의 계명 사이에서 전개된다. 이 때에 교회 내에서 황금과 불순물이 분리될 것이다. 참된 경건은, 경건의 모양과 경건의 외부적 장식과는 분명히 구분될 것이다. 우리가 그 찬란한 광채로 인해 존경해 온 많은 별들이 흑암 속으로 사라질 것이다. 쭉정이가 바람에 구름처럼 날려갈 것인데, 심지어 우리가 오직 풍성한 알곡만을 보는 곳에서도 그러할 것이다. 성소의 장식만을 취하고 그리스도의 의로 옷입지 않은 모든 사람은 그들의 벌거벗은 수치를 드러낼 것이다.

    "열매 없는 나무들이 땅만 버리는 자로 베어질 때, 수많은 거짓 형제들이 진실한 사람들과 구별될 그 때, 숨어 있던 자들은 드러나서 그리스도의 깃발 아래 호산나를 외치면서 대열에 참여할 것이다. 겁이 많고 자기를 불신했던 자들이 그리스도와 그분의 진리를 공개적으로 선포할 것이다. 교회에서 가장 약하고 주저하는 자가 다윗과 같아지되, 자원하는 마음과 담대한 마음으로 그러할 것이다.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있어서 밤이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별들은 더욱 찬란해질 것이다. 사단은 충성된 자들을 몹시 괴롭힐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넉넉히 이길 것이다. 그 때에 그리스도의 교회는, '달같이 아름답고 해같이 맑고 기치를 벌인 군대같이 엄위'(아 6:10)할 것이다." 교회 증언 5권, 77-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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