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드류스 대학의 맥스웰 교수가 북미 지회에 보낸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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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드류스 대학의 맥스웰 교수가 북미 지회에 보낸 편지

  저자: 멀빈 맥스웰 박사(앤드류스 대학 세미나리 교회사 담당 교수이며, 다니엘 연구 및 요한계시록 연구로 한인 재림교인들에게 널리 알려진 은퇴 목사님)

    이 글은 재림교단 북미지회의 한 고위 간부의 요청에 따라 앤드류스 대학 세미나리 교회사 담당 주임교수인 멀빈 맥스웰 (Mervyn Maxwell) 박사가 집필하여 제출한 건의 서한의 일부이다. 그의 간곡한 권고에도 불구하고 북미지회는 "이슈 (논점): 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 교회와 특정 사설 단체들" 이란 책자 를 발행했다. 우리는 한 노 교수의 예리한 증언과 호소를 통해서 독자들이 방향을 잃고 표류하고 있는 교회의 현실과 그 현 주소를 깨닫게 되어서 진정 어떻게 하는 것이 이 교회와 지도자들에게 충성하고 사랑하는 것인지를 깊이 숙고해 보는 시간을 갖게 되길 바란다. 편집실

    나(멀빈 맥스웰)는 미국의 홉 인터네셔날 자영 선교 기관에서 발행하는 재림 신앙 월간지에 실리는 글이면 무엇이나 좋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그 월간지가 매달 내 앞으로 한 부씩 무료로 오고 있지만 나는 그 잡지를 신청한 적도 없고 헌금한 적도 없습니다. 지난 몇 년 동안에 롼 스피어 목사는 몇 차례 내게 전화했어도 내가 그에게 전화한 적은 없습니다. 나는 그 월간지가 폐간되기를 바라나 이것 한 가지 만은 꼭 말씀 드려야겠습니다. 우리 신학교 교수들 중에는, 나도 그 중 하나지만, 그 월간지에 실린 꽤 많은 부분들에 대해서는 매우 감사하게 생각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비록 거기 간혹 나타나는 비판적 태도를 유감스럽게 느끼고 또 언젠가 한번 실렸던 십일금에 관한 기사가 마음에 안들기는 했지만 솔직히 말해서 우리는 그 월간지에 실리는 좋은 기사들이 우리 교단의 리뷰 잡지에도 실렸으면 하는 심정입니다.

    나는 홉 인터내셔날 월간지가 머지않아 자발적으로 폐간되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그 월간지는 지금 현재 그리스도의 참된 양무리를 먹이는데 유용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양무리의 네 가지 굶주림을 해결할 것

리뷰지는 그 동안 여러 차례 경고 기사를 통해서 펄트 선언(Perth Declaration)을 발표하는 등 홉 인터내셔날 잡지와 그 밖의 독자적 출판 사업들을 겨냥한 기사들을 계속 실고 있습니다. 최근 어떤 호에는 "독립선교단체들"이란 소책자가 삽입되어 나왔습니다. 그러나 내가 지금도 기다리고 있으며 보기를 바라고 고대하는 글은 "왜 이 개인 출판물들은 성공하고 있는가?" 라는 질문에 대한 원인과 배경을 깊이 있게 파헤친 연구 보고서 입니다.

    대책위원회가 어떤 조치를 취하든지 고질적인 불만 분자들은 계속해서 비판적인 책자들을 출판할 것이므로 어떠한 영적인 호소나 정치적인 역선전으로도 그것은 막지 못할 겁니다. 만일 대책위원회가 그런 고질적 분자들을 염두에 두고 있다면 느헤미야 (6장3절 인듯--역자주)를 인용하며 침묵을 지키는 것이 현명한 방법입니다. 그러나 대책위의 논의 대상은 그러한 비판주의자들이 아니라 독립 출판기관들과 그들에게 헌금을 내는 충실하고 합리적인 교인들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러면 그들은 왜 그러한 개인적 출판사업을 지원하고 있습니까? 여기에는 4가지의 이유가 있는데 그것은 4가지의 그들의 타당성 있는 굶주림 입니다.

1. 굳은 음식에 대한 굶주림.
홉 인터내셔날지는 교리 문제들을 깊이 있고 알차게 다루고 있으며 엘렌 지 화잇의 호소를 전문 그대로 게재하는 것이 그 특징입니다. 두말할 필요 없이 홉 인터내셔날을 후원하는 사람들은 길면서도 내용 있는 교리 기사들과 화잇여사의 진지한 호소를 읽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2. 올바른 예언해석과 적용에 대한 굶주림.
사설 잡지들 중에는 상당 수가 예언해석과 그 적용에 관한 내용들을 많이 다루고 있습니다. 독자들은 그런 주제들에 대한 깊은 관심을 만족시키기 위해서 그들의 연금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3. 엘렌 지 화잇 부인의 기별에 대한 굶주림.
이들 보수적 출판물들은 화잇 부인의 글을 예리하고 풍부하게 인용할 뿐만 아니라 그 글의 권위를 분명하게 존중합니다.

4. 교회 지도자들의 진지한 회개에 대한 굶주림.
"순례자의 휴식처" (Pilgrim's Rest: 테네시주에 위치한 독립 자양 출판 기관)를 단순히 질이 낮고 잘못이 많은 기관으로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북미 지회의 매우 많은 재림신자들은 그 잡지가 보도한 것처럼 우리의 지도자들 중에 자신의 의견 만을 주장하며 이기적이고 권세욕에 사로잡힌 인물들이 있음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교인들은 지도자들에게서 기대되어 지는 그리스도의 성품과 겸손이 아쉬워 그에 대한 굶주림을 호소합니다.

    물론 우리 북미지회의 교인들 중에는 위에 지적한 네가지 굶주림을 별로 또는 전혀 느끼지 못하는 이들도 많습니다. 교단 발행의 리뷰지나 지회월보도 안 보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다른 한 편에는 스펙트럼 (Spectrum; 데스몬드 포드(Desmond Ford) 의 신신학을 신봉하는 사람들이 펴내는 월간지-역자주) 지에 현혹되어 거기서 주장하는 엘렌 화잇 비판론, 성소교리 배척론, 세 천사의 기별을 뒷전에 미룬 사회 개혁운동, 생명 창조후 수백만년이 흘렀다는 장구한 연대설에 흥분 뇌동하는 부류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은 홉 인터내셔날에 십일금을 보내지 않으므로 대책위의 초점에서 벗어나 있습니다. 대책위의 표적이 되는 부류를 다스리기 위해, 즉 독립 출판물을 선호하는 신자들을 되찾기 위해서는 위에 열거한 네가지 궁핍 문제를 북미지회가 솔직히 시인하고 그 시정책을 강구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교단 기관지들은:

(1) 알차고 건전한 교리기사들을 실어야하며,
(2) 건전한 예언해석과 적용을 알차게 다루고,
(3) 엘렌 지 화잇의 영감적 권위를 손상 없이 옹호하며,
(4) 지도자들이 그리스도의 성품과 겸손을 구비한 증거들을 지면에 실어야 합니다.

대책위가 독립 출판기관들을 공격하기 위해 큼직한 책들을 엮어내게 된 동기중 하나는 "제3세계"의 사역자들이 홉 인터내셔날 월간지를 읽고 그 내용과 주제들에 대해서 설교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것은 물론 사실입니다! 홉 인터내셔날 월간지는 네가지 궁핍 중에서 적어도 세 가지는 해결해 주고 있으니까요. 그와 반대로 리뷰 지는:

(1) 고작해야 타자 원고 여섯 장에 불과한 짤막한 교리 기사들을 실으며,
(2) 예언성취에 대해서는 간헐적으로 약간 비출 정도로 다룰 뿐,
(3) 엘렌 지 화잇의 글을 권위있는 안내자로 제시하는 일은 전무하며,
(4) 지도자들 잘못은 눈에 띄는 재정비리 몇 가지 외엔 비친 일이 없습니다. (예: 대븐포트 사건과 해 리스파인 공장 도산 사건)

일반 독자들의 리뷰지에 대한 비판이 거세어지자 리뷰지는 "앵커 포인트"란 기사를 연재하고 있기는 하나 그것도 전체 지면수에 비하면 매우 빈약한 상태입니다.

차별 대우를 삼가하라

" 고요한 시간" (The Quiet Hour: 독립 자양 T.V, Radio 선교기관)은 십일금을 받고 있습니다. "예언의 소리" (The Voice of Prophecy)도 십일금을 받고 있습니다.

    재림 신앙 월간지(Our Firm foundation)를 발행하는 호프 인터내셔날 (Hope International: 와싱톤 주에 소재해 있는 독립 자양 선교기관) 측은 이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이것은 이미 알려진 비밀인데 만일 대책위가 다른 기관은 건드리지 않고 호프 인터내셔날 기관만 공격한다면 그것은 불공정한 차별 대우가 아닙니까? 그런 공격은 실효가 없을 뿐만 아니라 홉 인터내셔날 측이 "고요한 시간" 이나 "예언의 소리" 도 십일금을 받고 있다고 주장하며 교단 지도자들의 불공정한 처사를 거론하게 되면 지도자들이 수치를 당할 염려가 있습니다.

[수정 추가: 그렇다고 나는 지도자들이 "고요한 시간" 이나 "예언의 소리"도 함께 공격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그들이 십일금을 받는 것이 기존 북미 지회의 방침에 어긋나긴 하지만 그들의 사업은 훌륭하고 고상한 것이기 때문에 도리어 격려해야 하리라 생각합니다.

    1950 년대에 턱커 목사가 베리언 스프링스로 부름을 받고 가려할 때 북가주 대회는 그의 가는것을 승락했으나 "고요한 시간" 사업은 가져가지 못하게 했던 일이 있었습니다. 북가주 대회가 오우크랜드에 있는 "고요한 시간" 사업에 약간의 운영자금을 대준 것을 이유로 그 사업을 북가주 대회의 전유물로 간주했던 것입니다. 턱커 목사는 배신 당한 기분이었으나 그대로 머물러 있으면서 충성을 다하다가 교단측의 관리 부실로 "고요한 시간" 사업이 급기야 문을 닫게 되자 미쉬간 주로 옮겨 다시 거기서 그 사업을 일으키고 다시는 교단으로부터 일체의 자금자원도 받지 않기로 결심했을 뿐 아니라 오히려 가능하면 자신들이 모금한 자금으로 교단 사업을 지원키로 했던 것입니다. 그후 그와 그의 아들들은 그 결심대로 잘 이행해서 높은 충성과 헌신의 본보기들이 되었지요. 그러한 "고요한 시간" 이 십일금을 간혹 받는다고 제재를 가한다면 그야말로 그것은 파렴치한 "왕권 남용" 이라 아니할 수 없을 것입니다. 십일금은 화잇 부인도 받은 일이 있습니다. 지도자들이 해결해 주지 못하는 굶주림을 해결해 주는 기관에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그들의 십일금을 바치는 것을 어떻게 나무랄 수 있겠습니까?]

교단 지도자들이 보수파 인물들에게 어떠한 직책도 주지 않으려면 이일의 공정성을 유지하기 위해 스펙트럼 지의 주역들 역시 모든 직책에서 해임시켜야 합니다(그 명단은 그 잡지 전면 표지 안쪽에 나옴).

    그뿐인가요? 북미지회의 방침을 외면하고 학교 대항 운동경기를 추진하는 교직원들은 어떻게 할 것입니까? 우선 대총회가 십일금을 어디에 바쳐야 할 지를 결정할 권한이 있다고 가정합시다. 좋습니다. 만일 교단 지도자들이 십일금에 관한 방침을 외면한 보수파를 출교시키려 한다면, 학교 대항 경기를 금하는 북미지회의 방침서에 잉크가 채 마르기도 전에 "인사이트" (Insight) 지 뒷면에 "경기장에서 만납시다" 란 광고를 게재한 대학의 교직원들은 어떻게 할 것입니까? 그 광고를 보면 그 대학이 선전하는 학교 대항 경기 종목이 옛것과 새로 추가된 것이 일목요연하게 나타나 있습니다.

    교단 지도자들이 십일조에 대한 "교단 방침" 을 무시한 보수파를 출교시키려 한다면, 캐롤라이나 대회장과 남부 연합회장은 어떻게 처리할 것입니까? 교단방침에 따르면 합의절차를 밟기 원하는 사역자가 합의 신청서를 제출하면 대회장과 연합회장은 신청일로부터 3주 안에 응답을 해야 합니다. 캐롤라이나 대회의 어떤 목사는 지난 4년여 동안 무려 다섯 번이나 신청서를 냈으나 지도자들은 스스로 교단 방침을 무시한 채 계속 그것을 묵살하고 있습니다. 나는 그 목사가 부당하고 몰인정한 처분을 당한 충분한 증빙자료를 서랍에 가득히 보관하고 있습니다. 신학교 교수의 입장에서 나는 그 문제의 해결을 위해 독립된 제 삼자를 지명하여 그 목사의 불평에 어떤 근거가 있는지 신중히 조사해 줄 것을 해당 지도자들에게 간곡히 호소했습니다. 그들은 다른 일에는 유능함에도 불구하고 이 문제에 관해서는 서로 의논한 후 구체적 내용도 없이 다만 만사를 적절히 처리했다고만 통지해 왔습니다. 문제의 목사는 면직되어 생활이 어렵고 아내는 중병으로 고생하나 치료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여러 해 동안 교단에 십일금을 바치던 평신도 두 사람이 지금 그 목사에게 직접 자기들의 십일금을 주어 위기를 모면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태에서 위에 언급한 두 고위 지도자가 합의 절차에 대한 교단 방침을 어기고 있는 한, 대책위가 십일금에 대한 교단 방침을 아무리 강조한다고 할지라도 그 두 평신도들에게 그 말이 설득력이 있겠습니까?

    또 다른 문제가 있습니다. 수십 년간 십일금을 바쳐온 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교회를 받들고 선교 잡지들을 후원하며 "예언의 소리" 사업을 성원해 온 충성되고 신실한 교인들이 오늘 현재 자기교회에 출석을 하려면 그 개심치 않은 자들을 교회에 묶어두기 위해 벌리고 있는 이른바 축제식 예배 때문에 깊은 고통을 겪어야 하는데 누가 그들을 위로합니까? 그 한심하고 저급한 복음주의파식 흥행판에 밀려 올데 갈데 없는 저들을 위해서 누가 대변을 할 것입니까? 만일 어떤 대회에 그들을 대변하는 지도자가 하나도 없을 경우 대회 지도자들이 양심이 있다면 어떻게 수십년이나 대회에 십일금을 바쳐온 그 충성된 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 교인들이 이제와서 참다못해 자신들 편에 서서 그들을 옹호하는 용감한 발언자들에게 십일금을 좀 보낸다고 하여서 그들을 감히 비난할 수 있겠습니까?

    그렇다고 내가 십일금을 대회에 보내지 않는 것에 동의하는 것은 아닙니다. 내 말의 요지는 만일 대책위가 진정 십일금을 모두 대회로 바치도록 교인들을 설득하기를 원한다면 우선 대회 지도자들부터 설득해서 그들의 흥행식 예배를 강력히 반대하도록 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보수파의 깊은 우려에 대해서는 하등의 성의를 안 보이는 교단 지도자들이 힘없는 보수파만 함부로 공격하고 차별하는 우를 범치 않도록 대책위는 전력을 다해 이를 저지해야 합니다.

실제 손실을 저울질 해보라

십일금은 사실 별 큰 문제가 아니지만 독립 출판 기관들 때문에 북미지회가 상실하는 액수가 얼마나 되는지를 대책위는 그 진상을 파악해 보십시오. 그것이 전면 공격으로 출혈과 희생을 치뤄야 할 만큼 가치가 있습니까?
독립 출판 기관들의 수입을 모두 합친 액수가 바로 북미지회의 손실일 것이라고 예측한다면 그것은 잘못된 판단 입니다. 지금 내 생각으로는 그런 기관에 헌금을 보내는 재림 신자들은 그 기관들이 문을 닫는다해도 그 돈을 당장 대회로 보내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들의 네가지 굶주림이 해결되지 않는 한, 그들은 그 돈을 다른 곳에 보내든지 또는 없어진 기관 대신 다른 기관이 나타나길 기다릴 것으로 봅니다.

    이 문제에 대해서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교단측이 일부 자금 유실을 당하는 것은 그런 독립 출판 사업이 존재하기 때문이 아니라 리뷰지의 내용이 부실하고 우리 지도자들 중에 겸손과 회개의 정신이 결핍된 데 그 원인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들 기관에 보내어 지는 액수는 비교적 소액이며 특히 그 중 십일금이 차지하는 비중은 극히 적다는 사실을 나는 강력히 주장합니다. 예컨대 독립 기관 중 가장 규모가 크다는 호프 인터내셔날은 년(年) 헌금액이 125만 달라라고 롼 스피어 (Ron Spear) 목사님은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북미지회의 연수입은 6억 달라를 웃돌고 있읍니다. 그러므로 롼 스피어 목사에게로 보내어지는 돈은 그 500분의 1, 즉 0,2%에 불과합니다. 물론 그것이 적은 액수는 아니지만 그것 때문에 롼 스피어 목사가 교단 사업에 지장을 준다고 말하는 것은 가당치 않은 말입니다.

    그가 받아들이는 십일금은 어떻습니까? 교단 지도자들이 극성스레 공격하는 그 십일금이 과연 큰 문제가 되는가? 스피어 목사님은 내게 말했습니다. 연수입 125만 달라 중 약 10%가 십일금이라고. 그는 그런 정보를 위장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러나 십일금이 그가 말한 10%의 2배인 20% 라고 가정합시다. 125만 달라의 20% 이면 25만 달라인데 그래도 그것은 연간 북미지회 교인들이 교단에 바치는 4억 달라에 비하면 1천 600 분의 1, 즉 0.0625% 밖에 안됩니다.

    독립 출판 기관들을 공박함으로서 얻을 금전적 이득을 따져보기에 앞서, 교단 측의 불리한 공박 때문에 실망하고 교회를 멀리할 영혼들의 가치를 대책위는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돈 몇 천불을 얻고 영혼 수백을 잃으면 그것이 하나님의 교회에 무슨 유익이 되겠습니까?

교회 내의 거침돌을 제거하라

대책위는 호프 인터내셔날 문제를 다룸에 있어서 "평형" 을 유지하려 한다고 당신은 말씀했습니다. 그 점은 칭찬할 만 합니다. 나는 그 목표가 진심이길 바랍니다. 당신도 그런 의도에서 나의 진언을 요구했으므로 부득불 나는 나의 소신을 계속 말씀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전술한 "스펙트럼" 과 그 모체조직인 "재림 교인의 공개토론장" (Association of Adventist Forums) 은 어떻게 처리할 것입니까? 당신이 "스펙트럼" 을 읽지 않는다면 그것은 정말 다행입니다. 그러나 혹시 1991년도 8월호에 익명의 필자가 쓴 포켄버그 목사님에 대한 비판을 읽어보았습니까?
신신학의 대표적인 잡지인 "스펙트럼"지가 지도자들을 날카롭게 비평하는 것은 무방하고 "순례자의 휴식처" 가 비평하는 것은 안됩니까?

    더 심각한 문제가 있습니다. 91년 5월호 "스펙트럼"은 "짐승과 함께 자람"이라는 기사와 "사회 개혁으로서의 재림성례" 란 기사를 발표했습니다. 그 글들을 읽어보니 계시록의 짐승들을 사회적 병폐로, 남은 자손 을 사회 개혁의 투사로 재 해석했습니다.
대책위는 우리의 존재를 규명한 예언적 운동을 마구 재 해석해 버리는 것에 대해 무관심한 것은 아니겠지요?

    1992년 3월호 "스펙트럼" 지 63, 64 페이지에는 대총회가 "국제 동족 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 교회" (SDA Kinship International*)를 상대로 낸 상호법 소송에 패소했다는 기사를 읽어보아야 합니다. (* 이는 재림교인 동성연애자들 집단임--역자주) 그리고 대책위는 같은 3월호 9-12 페이지에 실린 데스몬드 포드 에 대해서 데스몬드 포드 자신이 쓴 기사도 읽어보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이 글은 이미 개인적 서신이 아니므로 정상적인 재림 신앙과 조화될 수 없으리만치 그 행위와 신학이 판이하게 다른 몇몇 사람들의 이름을 삭제합니다. 그러나 나는 당신에게 이미 그들에 관해 말씀 드렸습니다.

    또한 막대한 물의를 일으킨 바 있는 왈라왈라 대학 우등생들이 썼다는 1991년도 봄학기 논문 일곱편도 읽어봐야 할 것입니다. 내가 알기로 포켄버그 목사님께서 그 학교의 종교학과 교수를 징계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것이 사실이길 바랍니다만 대총회장의 그러한 조치가 과연 왈라왈라 대학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을까요?

    문제는 이것입니다. 강력한 "스펙트럼"의 지지자들이 우리 대학의 학장 자리들을 차지하고 있는 한 우리 교인들이 교단 교육에 무었을 기대할 수 있겠습니까? 아틀란틱 유니온 대학의 학장은 어떤 은퇴 교육자가 창조후 수백만년이 경과했다는 연대설을 지지하고 나오자 그를 칭송한 사람이 아닙니까? 그러니 어떻게 우리의 보수파 신자들이 우리 학교들을 떠 받들 수 있겠습니까?

    내가 심혈을 다해 간곡히 권고하고 싶은 점은 대책위가 진정 독립적이고 보수적인 출판 사업을 후원하고 있는 교인들의 충성심을 다시 얻기를 원한다면 무엇보다 우선 두드러진 거침돌들을 제거하는 작업부터 착수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역사를 회고해 보라

홉 인터내셔날 월간지는 다른 독립 출판물들과 마찬가지로 (1)1950년대에 일어난 "신신학"을 염려하고 (2)예수는 아담처럼 깨뜻하게 창조된게 아니라 우리 모두와 같이 인간의 유전을 받고 태어났었음을 강조하며 (3)재림맞을 준비에 필요한 성품의 완전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그러한 주장들은 교단내의 자유주의적 신신학파 뿐만 아니라 일부 보수적이라고 불리우는 사람들에게 조차도 성가신 소리가 되고 있습니다. 분노한 그들은 우리 교단 안에서 "일반적으로 합의를 본일이 없는" 교리를 강조한다고 하여서 홉 인터내셔날 잡지를 질타합니다.

그들의 비위에 거슬리면 홉 인터내셔날 월간지의 주장들이 틀린 것으로 판명되어야 합니까?

    나는 20년 이상 재림 교회의 신학발달사를 강의해 오고 있습니다. 이로 인해서 나는 항상 연구를 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동 기간동안 나의 신학적 촉각은 늘 예민한 상태였습니다. 나의 목회 생활은 1946년에 시작되었는데 지금 내가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1950년대에 북미 지회에서 가르쳐졌던 재림 신학은 분명한 변화를 겪어야 했는데, 그 변화는 "교리들에 관한 질문" (Questions on Doctrine)의 편집인 중에서 두명의 저자와 앤드류스 대학에서 매혹적인 설교로서 영향력을 행사하던 두명의 세미나리 교수 들에 의해서 이루어졌습니다. 또한 그 변화는 오늘날까지 지속되었으며 그 후에 교육과 행정의 고위직에 오른 당시의 학생들에 의해서 왜곡되어 왔다는 사실을 우리는 인정해야 합니다. 예, 오늘날 재림 교회안에 "신신학"은 분명히 존재합니다. 그리고 홉 인터내셔날지는 그들이 말하는 것처럼 역사적이며 올바른 재림 신앙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좀더 정확히 말하자면, 1950년대에 소수에 의해서 가끔씩 주장되었던 특정한 견해들이 우리들의 학교를 거쳐간 수 많은 재림 신도들에 의해서 재 구성되고 새로운 강조점들이 추가되어서 받아들여져 왔습니다. 나는 지금, 오늘날 재림 교인들 사이에 존재하는 신학적 분리 현상을 보고 있는데 이 분리 현상은 다음과 같은 두 그룹의 사람들 사이에 존재합니다.

    첫째 그룹은 우리의 대학에서 비 재림 교회 출신인 신학자들의 글과 책들을 연구한 사람들이고, 둘째 그룹은 우리의 재림 교회의 대학 교육을 받지 않았거나 그들의 연구를 대부분 성경과 예언의 신에 한정 시켜온 사람들 입니다. 2대째 또는 3대째의 전통있는 재림 교인들 조차도 새로운 신학을 선호하고 있는 상황이지만, 나는 오래된 재림 신학의 편에 서서 성경과 엘렌 지 화잇의 글을 연구함으로서 요즘도 신선하고 새로운 개심의 경험으로 감동되곤 합니다. 여기서 나는 한가지 덧 붙여서 언급해야 될 것은, "교리들에 대한 질문"의 편집인들이 그 당시 그들의 책을 변호하기 위해서 사용했던 추한 표현이 있는데 비록 늦었지만 교회 지도자들은 그 표현을 그 책으로부터 깨끗이 삭제해 버리길 바랍니다. 당시 수 많은 재림 교인들이 "교리들에 대한 질문"이라는 책에 소개된 새로운 신학을 받아 들이지 않는 모습을 보면서 그 책의 편집인들은 잔혹하게도 보수주의자들을 "광적인 사람들"이라고 비난했습니다. 나는 그러한 "광적인 사람들"을 많이 알고 있으며 또한 그들을 높이 존경했습니다. 그 중엔 태평양 유니온 대학(Pacific Union College) 의 훌륭한 교수님들도 포함되어 있는데 그들은 후일 나의 사역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분들 입니다.

    물론 지도자들은 그런 험한 말을 함부로 해도 좋은지 모르겠으나 지도자들에게 미친 사람으로 취급 받고 있는 사람들이 어떻게 자신들의 십일금을 지도자들에게 기꺼운 마음으로 헌납하기를 기대하는지 내 사고 방식으로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인성이 타락 이전 아담의 인성과 같은 인성이 아니었다는 홉 인터내셔날지나 그와 유사한 잡지들의 주장은 완전히 잘못된 것이라고 외치고 있는 신신학파의 아우성을 우리는 듣고 있습니다. 그들의 주장에 따르면 보수파의 주장이 특별히 문제가 되는 것은 교단 전반이 기본신조로 받아들인 일이 없는 그리스도의 인성론을 계속해서 고집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교단 전반이 공식적으로 수용한 일이 없는 가르침을 계속 주장하는 것이 잘못이라면 신신학파가 자기류의 주장을 펴는 것은 어째서 잘못이 아니란 말입니까? 또 홉 인터내셔날지의 편집인들 같은 구신학파가 교리 문제를 계속해서 논점화 시키므로 그들이 문제를 일으킨다고 말들을 합니다. 그러나 솔직히 말합시다. 논쟁은 어디서 시작되었습니까? 논쟁을 공개적으로 시작한 것은 1949년판 "바이블 리딩스", 1957년판 "교리에 대한 질문", 그리고 몇몇 신신학 교수들과 그들이 길러낸 후진들 입니다. 그 논쟁 가마는 그 후 보수파와 신신학적 자유주의파들에 의해서 오늘날까지 끓고 있지요. 그런데 자유주의자들이 현재 교단의 언론과 학원들을 장악하고 있습니다.

"반격은 싸움의 원인이 된다"는 옛말이 생각납니다.
북미지회의 주요 출판 기관과 대학들을 신신학파가 장악하고 있는 오늘의 현실은 북미 지회의 각급 조직과 기관들의 인선과 선택이 빚은 결과입니다. 원인은 결과를 낳는 법이므로 그런 편집인들과 학장들을 선택한 북미 지회는 그에 따른 반발을 예측했어야 하는 것입니다. 대총회가 공식적으로 인정한 일도 없는 신신학을 영입한 신신학의 신봉자들을 각급 요직에 앉혀 놓은 북미 지회가 이제와서 충성된 교인들이 옛날 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 교회에 처음 발을 들여 놓을 때 받았고 또 생명을 바쳐서 받들기로 한 옛 가르침의 근거와 정당성을 옹호하는 글을 출판한다고 하여서 이를 반칙이라 외치는 것은 무책임하고 비신사적인 소행이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자발 원칙의 의미를 파악하라

위에서 나는 어떤 이들이 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 림 교회에 입교할 때 가졌던 확신에 대해서 언급했습니다. 교단 지도자들이 지금은 전에 가르치던 교리를 멀리하고 새로운 교리를 가르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하는지는 모르나, 자신이 진심으로 헌신하고 신봉키로 한 옛 가르침에 집착하는 교인들을 일컬어 반역, 이단, 불충의 무리, 율법주의자로 몰아부치는 것은 야비하고 무도합니다.
헌신은 소중한 것이며 더구나 입교는 거룩한 선택입니다. 교인이 되는 것은 전적으로 자발 원칙에 따라 되는 것입니다.

     재림 교회의 신앙에 있어서 십일금과 연금을 바치는 행위는 절대로 강요될 수 없는 자원 행위입니다. 충성은 강요될 수 없으며 재림 운동은 자발 원칙 위에 세워진 것 입니다.

    교인들이 십일금을 바치고 안 바치는 것은 그들의 자유입니다. 충성하던지 불충하던지 그것 또한 그들 각자가 원하는 대로 결정할 것이요 거기엔 아무도 간섭 할 여지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지도자들은 정치적 승리를 모색하기 보다는 의견의 일치를 구하는 것이 바람직하고 소중한 것입니다. 전 대총회장은 임기 중에 의견의 일치를 희생시키고 날카로운 정치적 대결로 사태를 몰고 나가는 것을 그의 정책으로 삼았습니다. 당신과 대책위도 이점을 뼈 아프게 공감하실 것입니다.

    예컨대 지도자들이 60%의 지지를 얻어 그것으로 일을 처리하려 한다면 할 수야 있지요. 어떤 누구도 그것을 막을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지도자는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만일 60%의 지지를 얻고 거기서 끝낼 경우 나머지 40% 중에는 이탈자가 생길 위험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탈과 충성은 그 원칙적으로 상반된 것이지요. 그러므로 자발적 조직을 다수결의 원칙으로 다스릴 때의 고충은 설득이 안된 구성원이 자발성을 포기하고 더 이상 자발적 구성원의 구실을 하지 않게 되는데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공감대를 형성키 위해 서두름 없이 함께 연구하고 애쓰는 것이 얼마나 중요합니까?

    오늘날 비공식 출판물들이 범람하게 된 근본 원인을 보면 배신당하고 소외당하는 자들의 좌절감이 그 저변에 깔려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교단 지도자들은 학벌 좋은 신신학파 인사들을 교회에 붙들어 두기 위해 그들에게 몇몇 교단에서 운영하는 대학과 정기 간행물과 주요 행정 요직을 내어 맡기는 정치적, 언론적 배려를 베풀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아직도 예언의 신을 읽는 보수파는 소외당하고 좌절 당했습니다. 교단 기관지들의 편집진은 그들의 기사를 배척했을 뿐 아니라 심지어는 리뷰지의 "편집인에게 보내는 편지"마저도 보수파의 글이면 실어주지 않는 사례가 허다했습니다. 혹시 예외가 있다면 그것은 오로지 그 편지와 정반대의 주장을 펴는 글을 그 글과 나란히 실어서 보수파의 발언이 어리석어 보이게 만들 수 있을 경우에만 그렇게 했습니다.

    이런 모든 일들은 뜻있는 보수적 재림 신자들을 좌절케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직위나 돈보다 교회를 더 사랑하는 사람들 입니다. 교회를 사랑했기 때문에 그들은 교회 안에서 되어가는 모든 사태와 움직임을 주시해 보며 경각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그들은 자신들이 믿는 주장을 마음껏 발표할 수 있는 독자적 출판 기관들을 스스로 만들고 소신대로 모든 것을 바쳐서 봉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에서의 자원 봉사자들 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신봉하는 재림 신앙을 옹호하기 위해서 그들의 재물을 아끼지 않는 자원 봉사자들 입니다.

결 론

나는 이 글의 서두에서 밝혔듯이 홉 인터내셔날 월간지는 자진 폐간되어야지 압력에 의해서 폐간되어서는 안된다고 믿습니다. 우리에게 있어서 그 잡지가 불필요하게 되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교단지 "어드벤티스트 리뷰지" (Adventist Review) 가 교인들의 정당한 요구와 굶주림을 해결해 줄 책임을 져야 합니다. 물론 보수적 교인들 역시 고소하는 정신과 때때로 홉 인터내셔날 월간지에 실리는 십일금에 대한 잘못된 개념을 버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리뷰지는 물론 우리 대학들과 목회자들, 그리고 교사들은 백성들의 영적 궁핍과 굶주림에 대한 책임을 느끼고 건전한 교리적 가르침과 예언성취에 대한 건전한 재료와 엘렌 지 화잇에 대한 확고한 신념으로 양떼를 먹여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행정자들은 리뷰지상을 통해 진지한 사과문을 발표하여 실책과 실수를 구체적으로 시인하고 또 구체적 회복방안을 제시해야 합니다.

그리고 교단 지도자들은 차별적 행정과 거침돌들을 제거하고 금전적 이득만 따질게 아니라 영혼 손실의 가능성도 신중히 고려하도록 대책위가 이를 권고해야 합니다.

한 마디로 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 운동은 홉 인터내셔날지와 그 지지자들을 다스림에 있어서 굳세고 냉철한 도덕적 영도력을 행사해야 합니다.

믿음으로 무장하고 기도에 정진하며 예언의 신 지식에 충만한 후덕한 지도자들, 필요할 때는 과감한 공개 사과와 회개를 주저치 않으리만치 마음이 정결하고 영적 감화력이 뚜렷한 지도자들을 우리에게 허락해 주시기를 주님께 기원하며.

베어린 스프링에서 필자. 멀빈 맥스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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