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비를 위하여 기도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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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비를 위하여 기도함

엘렌 G. 화잇

 “봄비 때에 여호와 곧 번개를 내는 여호와께 비를 구하라 무리에게 소낙비를 내려서 밭의 채소를 각 사람에게 주리라”(슥 10:1). “그가 너희를 위하여 비를 내리시되 이른 비를 너희에게 적당하게 주시리니 이른 비와 늦은 비가 전과 같을 것이라”(욜 2:23). 동방에서 이른 비는 파종하는 때에 내린다. 비옥하게 하는 비로 인해 연한 싹들이 돋아난다. 계절의 끝이 가까운 때에 떨어지는 늦은 비는 낫을 대어 추수할 준비가 되도록 곡식을 익게 한다. 주님께서는 이러한 천연계의 운행을 빌어 성령의 역사를 드러내신다. 이슬과 바가 처음엔 씨로 싹을 트게 하고 그 후에 추수하도록 익게 하는 것처럼 성령도 한 단계에서 다른 단계로 영적인 성장과정을 밞을 때 주어지는 바 된다. 곡식의 익음은 영혼 안에서의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가 완성된 것을 의미한다. 성령의 능력으로 하나님의 도덕적인 형상이 품성 속에서 완성되어야 한다. 우리는 온전히 그리스도를 닮도록 변화되어야 한다.

 이 지구의 추수를 위해 익게 하는 늦은 비는 인자의 오심을 위해 교회를 준비시키는 영적 은혜를 표상한다. 그러나 이른 비가 떨어지지 않는다면 거기엔 아무 생명도 없을 것이며, 파란 싹은 돋아나지 않을 것이다. 이른 비의 역사가 없을 때 늦은 비는 완성을 위한 아무 역사도 가져올 수 없다.

 많은 이들이 큰 분량에 있어서 이른 비를 받기에 실패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위해 제공하신 모든 유익들을 얻지 못했다. 그들은 그 결핍이 늦은 비에 의해 공급될 것으로 기대한다. 가장 풍성한 은혜의 부요가 퍼부어질 때 그들은 마음을 열어 그것을 받으려 한다. 그러나 그들은 어마어마한 실수를 범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빛과 지식을 주심으로 인간의 마음 속에서 시작하신 사업은 끊임없이 전진해야만 한다. 매 개인은 자신의 필요를 인식해야만 한다. 마음은 성령님께서 거하실 수 있도록 온갖 더러움에서 해방되어야만 하며 정결케 되어야만 한다. 초기의 제자들이 오순절 날 성령의 부어주심을 위해 준비되었던 것은 죄를 자백하고 버린 것과, 간절한 기도와 자신들을 하나님께 바침으로써 된 것이었다. 동일한 사업이 더 큰 정도로 지금 행해져야만 한다.

그때에 그 일에 참여한 인간 도구는 단지 축복을 구하며 자신에 관한 사업을 완전케 해주시도록 주님을 기다려야만 했다. 그 사업을 시작하신 분은 바로 하나님이시며, 그분이 사람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케 하는 그분의 사업을 마치실 것이다. 그러나 거기엔 이른 비로 표상된 은혜에 대한 태만함이 있어서는 안된다. 오직 그들이 가진 빛을 따라 사는 자들만이 더 큰 빛을 받을 것이다. 만일 우리가 활동적인 그리스도인의 미덕들을 행사하는 일에 있어서 매일마다 전진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늦은 비 때에 나타나는 성령의 현시를 알아채지 못할 것이다. 우리 주위에 있는 모든 사람의 마음 위에 늦은 비가 임할지라도 우리는 그것을 분별하지도 받지도 못할 것이다.

 우리의 경험 가운데 어떤 지점에서라도 우리로 첫 번째 출발을 할 수 있도록 한 그 도움이 필요치 않은 때는 없다. 이른 비의 경험 하에서 받은 축복들은 우리가 끝날까지 필요로 하는 것들이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이른 비의 축복을 간직하고 있으면서 동시에 늦은 비가 없으면 이삭에 충실한 곡식을 익게 할 수 없으며, 낫을 대어 추수할 준비도 되지 않고, 추수꾼의 수고도 헛될 것이라는 사실을 결코 간과해서는 안된다. 하나님의 은혜는 처음과 전진해 가는 매 단계마다에 요구되며, 그분의 은혜만이 사업을 완수시킬 수 있다.

우리로 하여금 부주의한 태도로 쉬도록 하는 지점은 한 곳도 없다.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하신 “깨어서 기도하라”, “깨어서 늘 기도하라”는 경고를 결코 잊어서는 안된다. 매순간 신령한 능력과 연결되는 것이 우리의 진전에 있어서 필수적인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성령을 소유하게 될 수도 있으나 기도와 믿음을 통하여 끊임없이 더 많은 성령을 구해야 한다. 우리의 노력을 그칠 때엔 결코 성령의 부어주심이 없을 것이다. 만일 우리가 향상하지 않고, 우리 자신이 이른 비와 늦은 비를 받을 태도를 취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우리의 영혼을 잃어버릴 것이며, 그 책임은 바로 우리 자신의 목전에 있게 될 것이다.

 “봄(늦은)비 때에……여호와께 비를 구하라” 때가 되면 비가 내릴 것이라는 생각으로 만족해하며 가만있지 말라 비를 구하라. 씨의 성장과 무르익음은 농부에게 달려있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만이 추수를 위한 곡식을 익게 하실 수 있으시다. 그러나 사람의 협력이 요구된다. 우리를 위한 하나님의 사업은 우리의 정신과 믿음의 활용을 요구한다. 은혜의 소낙비가 우리에게 임하게 하려면 우리는 전심으로 그분의 호의를 구해야만 한다. 우리는 축복의 통로에 우리 자신을 두도록 매 기회를 향상시켜야 한다. 그리스도께서는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고 말씀하셨다. 교회의 성회와 야영회, 가정 교회의 모임들과 영혼들을 위한 개인적인 수고가 있는 모든 경우들은 이른 비와 늦은 비를 주시는 하나님의 지정하신 기회들이다.

 그러나 이러한 모임에 참석하는 것으로 자신들의 임무가 끝났다고는 아무도 생각지 못하게 하라. 단지 모든 모임들에 참석하는 자체가 영혼에게 축복을 가져다주지는 않을 것이다. 큰 모임들과 작은 모임들에 참석하는 모든 사람이 하늘로부터 큰 은혜의 공급을 받게 되는 것이 철칙은 아니다. 상황이 은혜의 풍성한 소낙비를 받기에 좋은 조건처럼 보일 때가 있다. 그러나 하나님만이 비가 내리도록 명하셔야만 한다. 그런고로 우리는 부주의한 태도로 탄원을 올려서는 안된다. 우리는 일상적인 섭리의 역사를 신뢰해서는 안된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생명수 샘물을 솟아나게 해주시도록 기도해야만 한다. 또한 우리는 우리 자신이 생수를 받아야만 한다. 우리, 통회하는 마음으로 늦은 비 때에 은혜의 소낙비가 우리 위에 떨어지도록 지금 가장 간절하게 기도하도록 하지. 우리가 참석하는 모든 집회에서 우리는 바로 그 시간에 하나님께서 우리의 영혼을 포근하게 적셔 주시도록 우리의 기도를 올려야 한다. 우리가 성령을 달라고 하나님께 구할 때 성령께서는 우리 안에서 역사하여 늦은 비를 완성시키기 위해 우리를 온유하고 겸손하며 하나님께 의식적인 신뢰를 가지도록 할 것이다. 만일 우리가 믿음으로 그 축복을 간구한다면 우리는 하나님께서 약속하신대로 그 축복을 받게 될 것이다.

 성령님과 교회와의 계속되는 대화는 우리를 위한 놀라운 격려의 교훈이 담겨있는 또 다른 모습으로 스가랴 선지자에 의해 표상되었다. 선지자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내게 말하던 천사가 다시 와서 나를 깨우니 마치 자는 사람이 깨우임 같더라 그가 내게 묻되 네가 무엇을 보느냐 내가 대답하되 내가 보니 순금등대가 있는데 그 꼭대기에 주발 같은 것이 있고 또 그 등대에 일곱 등잔이 있으며 그 등대 꼭대기 등잔에는 일곱 관이 있고 그 등대 곁에 두 감람나무가 있는데 하나는 그 주발 우편에 있고 하나는 그 좌편에 있나이다 하고 내게 말하는 천사에게 물어 가로되 내 주여 이것들이 무엇이니이까 내게 말하는 천사가 대답하여 가로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신으로 되느니라 … 내가 … 다시 그에게 물어 가로되 금 기름을 흘려내는 두 금관 옆에 있는 이 감람나무 두 가지는 무슨 뜻이니이까 가로되 이는 기름 발리운 자 둘이니 온 세상의 주 앞에 모셔 섰는 자니라 하더라”(슥 4장에서).

 두 가람나무로부터 금 기름이 금관을 통해 등잔으로 들어가 비워지고, 그 다음에 금 등잔으로 들어가 성소를 밝혔다. 마찬가지로 하나님 앞에 서있는 거룩한 자들로부터 그분의 성령은 그분의 사업에 헌신한 인간 도구들에게 부어지는바 된다. 기름 발리운 자 둘의 사명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빛과 능력을 전달해 주는 것이다. 우리가 축복을 받는 것은 그들이 하나님의 임재 안에 거하는 것이다. 감람나무가 비워져서 금관으로 들어가는 것처럼 하늘의 사자들도 그들이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모든 것을 전달해야 한다. 하늘의 모든 보화가 우리의 요구와 받아들임을 기다리고 있다. 우리가 축복을 받을 때에 우리는 그것을 나누어 주어야 한다. 그런 식으로 거룩한 등잔들은 채워지는바 되며 교회는 세상에서 빛을 전달하는 자가 된다.

 이것이 주님께서 네 천사가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 맞기까지 네 바람을 붙잡고 있는 이 시대에 매 영혼에게 준비하도록 하는 사업이다. 지금은 자아를 즐겁게 할 시간이 없다. 영혼의 등잔의 심지를 가다듬어야만 한다. 여호와의 큰 날이 밤중의 도적처럼 우리에게 임하지 않도록 영적인 타락을 방지하기 위한 모든 예방책이 강구되어야만 한다. 하나님을 위해 일하는 모든 증인들은 지금 하나님께서 지정하신 선에서 지성적으로 일해야 한다. 우리는 날마다 그리스도인 품성을 완성하는 사업에 있어서 깊고도 산 경험을 얻어야 한다. 날마다 우리는 다른 사람에게 나누어주기 위해 거룩한 기름을 받아야 한다. 만일 원하기만 한다면 우리 모두가 세상에 빛을 전달하는 자가 될 수 있다. 우리는 예수님 안에서 자아를 감추어야 한다. 우리는 권면과 교훈 안에서 주님의 말씀을 받아들이고 즐거이 그 말씀과 교제해야 한다. 지금은 더 많은 기도가 필요한 때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명하셨는데, 그것은 마음이 모든 능력과 효력의 근원이신 하나님께로 향하여 늘 드는 것을 말한다.

 우리가 오랫동안 좁은 길을 걸어왔는지 모르나 그것이 우리가 끝까지 그 길을 따라갈 것이라는 안전한 증거가 되지는 않는다. 만일 우리가 성령님과의 교제 가운데서 하나님과 동행해 왔다면 그것은 우리가 날마다 믿음으로 그분을 찾았기 때문이다. 두 가람나무로부터 금관을 통해 흐르는 금 기름이 우리에게 전달돼 왔다. 그러나 기도의 정신과 습관을 계발해 오지 않은 자들은 양선과 인내와 오래 참음과 자비와 사랑의 황금기름을 받도록 개대할 수 없다.

 모든 사람은 자신을 불의로 가득찬 세상으로부터 분리시켜야 한다. 우리는 한동안만 하나님과 동행해서는 안되며, 그분과 떨어져서 우리 자신이 점화한 불꽃 가운데서 걸어서도 안된다. 거기에는 확고한 지속성과, 믿음의 행위에 있어서의 끈질긴 인내가 있어야만 한다. 우리는 하나님을 찬양해야 하며, 의로운 품성으로 그분의 영광을 드러내 보여야 한다. 우리 중 아무도 심지어는 영생가지 구하는 사물의 가치에 비례되는 끈질기고도 지칠 줄 모르는 노력 없이 승리를 얻을 수 없을 것이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에 주어지는 섭리는 구하는 자들에게 부어주시는 성령이 되어야 한다. 그분의 축복을 구하라. 우리가 더 강렬한 헌신을 바쳐야 할 때가 있다면 바로 지금이다. 우리에게 맡겨진 사명은 힘들긴 하지만 흑암 가운데 있는 자들에게 그리스도를 나타내는 행복하고도 영광스러운 사업이다. 우리는 이때를 위한 특별한 진리들을 선포하도록 부르심을 받았다. 이 모든 것 때문에 성령의 부어주심은 필수적인 것이다. 우리는 그것을 위해 기도해야 한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그분께 구하기를 기대하신다. 우리는 그 사업에 전심을 다하지 않아 왔다.

 내가 나의 형제들에게 주님의 이름으로 무엇을 말할 수 있을까? 주님께서 주시기를 기뻐하신 빛에 비교해 볼 때 우리의 노력은 얼마나 되는 것일까? 우리는 형식이나 외부적인 시설에 의존할 수 없다.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은 하나님의 성령의 깨우쳐 주시는 감화력이다.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신으로 되느니라.”  쉬지 말고 기도하면서 그대의 기도에 합당하게 행동함으로 깨어 있으라. 그대가 기도할 때 믿고, 하나님을 신뢰하라. 지금은 주님께서 당신의 성령을 크게 부어주실 늦은 비의 때이다. 열렬하게 기도하고 성령 안에서 깨어 있으라.

*Testimonies to Ministers, 506-512(RH, 189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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