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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가 그것을 소유한 사람에게 저주가 될 수도 있는가? 그렇다! 진리를 소유한 사람들이 세상을 향하여 악한 영향을 퍼트리면 진리는 그것을 소유한 사람들에게 저주가 될 수 있다.

진리를 믿고 그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가르치는 사람 중에 많은 사람이 가정에서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유지하지 못하고 있다. 그들의 자녀는 불순종적이고 제어하기 어려우며 아내는 남편과 대화할 때에 부정적인 말을 하고 다른 사람의 흉을 보며 심지어는 정욕적인 농담을 한다. 우리는 혹시 사도 바울이 말했던 것처럼 불의함 속에서 진리를 붙잡고 있지는 않은가? 만일 우리가 믿는 진리가 나와 가족을 변화시켜서 친절하고 인내하며 하늘에 속한 마음을 갖고 동정적이며 온유 겸손하지 못하게 한다면, 우리는 우리 자신의 생애를 통해서 세상에 악한 영향을 퍼트리게 되므로 진리는 그것을 소유한 우리에게 저주가 된다.

저주가 되는 가정

복음을 전파하는 그리스도인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교훈은 생활 속에서 하나님과 살아 있는 경험을 갖지 않은 채 성경 말씀을 전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도 없다는 것이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바리새인이다. 그들은 진리를 소유하고 있었으며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백성이었지만 그들의 삶 속에서 그리스도를 부인하며 살았다. 예수께서는 그러한 바리새인들에게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라고 말씀하셨다(요 5:39).

어떤 그리스도인이 아무리 진리를 전한다고 할지라도 가정 안에서 아내와 자녀들이 복음의 변화시키는 능력을 부인하고 있다면 그것은 진리의 이론에 불과할 뿐이다. 날마다 성경을 읽고 진리를 받아들인 사람을 흔히들 그리스도인이라고 부르지만, 진리가 삶 속으로 녹아들어 오지 않으면 진리는 그에게 저주가 되고 만다. 진리는 그것을 붙잡는 사람의 마음과 생애를 일치시켜 준다.

사도 바울이 남긴 다음과 같은 말씀은 우리에게 분명한 이해를 준다. 다른 사람을 가르치는 네가 네 자신을 가르치지 아니하느냐 도적질 말라 반포하는 네가 도적질하느냐 간음하지 말라 말하는 네가 간음하느냐 (롬 2:21-22). 우리의 삶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어져야만 우리가 전하는 복음이 땅끝까지 전파될 수 있다(골 3:3).

진리를 단지 설교하고 가르치는 것만으로는 결코 복음을 세상에 전파할 수 없다. 그리스도인들이시여, 복음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파하기 전에 먼저 나와 내 가족이 진리를 이해하고 그대로 사는 일이 있어야 한다. 질서 있고 잘 훈련된 한 가족의 삶이 훌륭한 설교보다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사람들은 설교와 가르침은 충분하다! 이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하나님 안에서 그리스도와 동행하는 삶이다!라고 말한다. 지금 세상은 말만 하는 것이 아니라 매일의 삶 속에서 자신들이 믿는 복음대로 살아가는 아버지와 어머니와 자녀들을 보기 원한다. 예수께서 지상에 계실 때에도 가장 큰 기만은 진리에 동의만 하면 의가 성립된다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진리에 대한 이론적인 지식은 영혼을 구원하기에는 부족하다는 것이 증명되었다.

그것은 의의 열매를 맺지 못한다. 바리새인들은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주장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책임 맡은 것을 자랑하였으나 이런 유리한 지위가 저희를 이기심과 악의와 이득에 대한 탐심과 비열한 위선을 막아 주지는 못하였다. 그들은 자신을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신앙인이라고 생각하였으나 그들의 말하는바 소위 정통적인 신앙은 저희로 영광의 주를 십자가에 못 박게 하였던 것이다.

같은 위험이 지금도 존재한다. 정통이라고 인정받는 어떤 신학적 교리에 동의하기 때문에 자신들은 당연히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그러나 그들은 진리를 실생활에 실천하지 않는다. 그들은 예수를 믿는다고 말하지만, 예수께서 말씀하신 진리에 따라 살지 않기 때문에 성결케 하는 능력과 은혜를 받지 못한다.

사람들은 진리를 믿노라고 공언할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저희를 가정과 세상에서 진실하고 친절하며 인내하고 관용하며 거룩한 마음을 갖도록 하지 못한다면 그러한 신앙을 소유한 자들에게 저주가 되고 그들의 감화로 말미암아 그것은 세상에 저주가 된다.

복음은 먼저 가정 안에서 그 능력이 드러나야 한다. 가정 안에서 그리스도와 동행하지 못하고 하나님 안에서 숨어 지내는 비결을 배우지 못한다면, 복음을 세상에 전하는 일에서 실패하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실제로 소유하고 있는 것만을 다른 사람들에게 나누어 줄 수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살아 계셔서 지금 나와 함께 계시다는 사실을 보여 주는 것이 복음 전파에서 가장 강력하고 효과적인 방법이다.

사도 바울 역시 복음을 말로만 전한 것이 아니라 나타남으로 전했다.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지혜의 권하는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남(demonstration)과 능력으로 하여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하였노라(고전 2:4-5).

우리의 가정이 질서를 잃어버렸고 자녀들은 불순종하며 혼돈 속에 있으며 부모는 세속에 빠져서 정신없이 살아가고 있는데 어떻게 사람들이 우리의 가정 속에서 복음의 능력을 볼 수 있겠는가? 세상 사람들이 우리에게 와서 직접 따서 맛볼 수 있는 열매가 있어야 한다. 많은 그리스도인이 이렇게 의아해한다. 왜 나의 신앙은 이렇게 능력이 없을까? 우리가 살아가는 매일의 삶이 복음을 전하는 말과 설교보다 훨씬 능력 있는 도구가 된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우리가 경솔하게 말하고 불필요한 대화에 긴 시간을 보내는 동안 우리의 영성이 힘을 잃으며 그리스도의 임재하심을 잃어버리게 된다는 사실을 아는 그리스도인들이 얼마나 적은지&. 우리 모두 다음과 같은 야고보의 권면을 잊지 말아야 한다. 누구든지 스스로 경건하다 생각하며 자기 혀를 재갈 먹이지 아니하고 자기 마음을 속이면 이 사람의 경건은 헛것이라(약 1:26).

형제자매들이시여, 하나님께서는 매 순간마다 우리와 함께 하시기를 원한다는 사실을 아는가?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상황이 어려우면 어려울수록 우리에게 더욱더 가깝게 오셔서 인도해주기 원하신다. 그러나 우리가 주여, 어느 길이 주께서 인도하시는 길입니까?라고 묻지 않는다면, 어떻게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길을 인도하시겠는가? 우리 모두 이 비밀은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시니 곧 영광의 소망이라는 말씀을 깊이 이해하도록 하자(골 1:27). 복음의 비밀은 나와 우리 가정 안에 살아 계신 그리스도이시다. 이것이 최고의 기만에 빠지지 않는 유일한 길이다.

저주가 되는 교회

진리가 그것을 붙잡는 사람들에게 저주가 될 수 있는 것처럼, 교회도 교인들과 세상에 악한 영향을 줄 때에 저주가 된다. 이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우리는 자신에게 정직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능력으로 창조하신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였던 그리스도의 결정은 모든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에게 경고가 된다. 그리스도께서는 왜 하나님께로부터 선택받은 이스라엘 국가를 상징하는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였는가? 왜냐하면, 그들 속에 열매는 없는데 나뭇잎들만 무성했기 때문이다.

사도 바울이 말한 대로 유대인들이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을 부인하는 자들이었기 때문이다(딤후 3:5). 잎사귀가 무성한 나무는 배고프고 지친 사람들로 하여금 그곳에서 먹을 것을 기대하게 한다. 그러나 정작 나무에 가까이 가면 나뭇잎들만 무성하고 열매는 없다.

어떤 교회이든지 간에 사람들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대신에 교회나 목사 자신에게로 인도하는 교회는 저주를 받게 된다. 왜냐하면 그런 교회에는 열매가 없고 죽은 교리와 무의미한 예식만이 무성하기 때문이다. 교회 지도자가 은혜의 도구가 되는 대신에 교회 안에서 그리스도께서 좌정해야 할 자리에 자신이 앉아 있으면 그런 교회는 사람들에게 저주가 된다.

교회가 사람들을 예수께 인도하는 대신에 교회 자신에게로 끌어들일 때, 교회는 사람들에게 저주가 된다. 구원은 교회나 목사가 주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는 것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사람들로 하여금 진리에 충성하도록 인도하는 대신에 교회와 목사에게 충성을 다하도록 유도하면 교회는 저주가 된다. 교회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파하는 대신에 교세를 확장시키는데 초점을 맞추면 교회는 저주가 된다. 교회가 사람들에게 구원을 가져다주는 진리를 가르치는 대신에 인간적인 윤리와 도덕을 가르치면 교회는 저주가 된다.

교회가 사람들의 시선을 교회 자신에게로 끌어들일 때, 교회는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게 되는데 바로 이것이 유대교회의 역사이다. 그와 같은 위험이 오늘날에도 여전히 존재한다. 교회에 충성하고 교회에 신실하며 교회를 위해서 희생하라는 말들이 교회마다 울려 퍼지고 있다. 심지어는 교회를 위해서는 진리마저 포기해야 하는 상황으로 양들을 몰아가는 모습이 여기저기서 보인다.

진리를 가르치고 예언을 설명해 주며 원칙을 고수하라고 말하는 대신에 교회를 돕고 교회를 열심히 다녀야 하며 결코 교회를 떠나서는 안 된다는 말들만 난무하고 있다. 교회가 주는 세뇌 교육에 물든 사람은 하나님께 인정받기보다 교회에 인정받으려고 애쓰게 된다. 이런 교회는 사람들에게 은혜가 되기보다는 저주가 된다.

유대교회가 그러했던 것처럼 교회가 그리스도의 자리를 차지하면 교회는 교인들과 세상에 구원을 소개하는 대신에 악한 영향을 주게 된다. 교회가 포도나무가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포도나무이다! 오직 그리스도께 붙어 있는 자들만이 구원을 받게 된다.

이 글의 요점은 교회나 교회 지도자들을 비방하자는 것이 아니다. 단지 교회는 영혼들을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의 진리로 인도하는 역할만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스도와 영혼들 사이에서 장사를 해서도 안 되고 그 중간에서 사람들이 드리는 영광을 가로채서도 안 된다. 예수께서 예루살렘 성을 내려다보면서 우셨던 것처럼, 깨어 있는 그리스도인들이라면 오늘날 교회 안에 있는 죄를 바라보면서 울며 탄식하게 된다.

여러분은 교회에 붙어 있는가? 아니면 포도나무이신 그리스도께 붙어 있는가? 여러분은 진리에 대한 지식을 가지고 있는가? 아니면 진리에 대한 살아 있는 경험을 하고 있는가? 여러분은 그리스도께 충성 맹세를 하는가? 아니면 교회와 목사에게 충성 맹세를 하는가? 잊지 말라! 지금은 기만의 시대라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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