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부-두 복음의 투쟁이 시작된 배경과 그 과정

Posted in 마지막 세대 제 37호

마지막 세대 제 37 호

재림 교회 신학생들에게 보내는 글

제2부-두 복음의 투쟁이 시작된 배경과 그 과정

저자: 강명수 장로

 20여 년 전에 한국 재림교회와 본 선교 기관 사이에 시작된 논쟁은 예수께서 곧 오신다는 재림의 기별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임박한 재림을 위하여 백성을 준비하게 하는 기별을 전했을 때, 재림교회 안에서 분명한 반대의 음성들이 일어났습니다.

재림교회는 늦은 비를 받는 백성을 준비하기 위해서 세워진 교회입니다. 늦은 비 성령의 능력을 통하여 복음으로 세상 역사를 마치고 예수 재림을 촉진하는 한 백성을 준비하기 위해서 일어난 교회가 재림교회입니다. 그러나 본 선교 기관에서 “어떤 사람들이 늦은 비를 받을 것인가?”라는 문제를 다루었을 때, 다음과 같은 투쟁이 생겼습니다.

본 선교 기관: “예수께서 곧 오십니다! 정치와 종교와 지구 환경 가운데서 일어나는 징조들을 보십시오. 우리는 지금, 일요일 휴업령이 내려지고 짐승의 표가 강요될 수 있는 긴박한 상황에 살고 있습니다. 준비해야 합니다! 마지막 환난을 통과하기 위해서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인을 받고 늦은 비를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인과 늦은 비는 죄에 대하여 완전하게 승리한 자들에게만 허락될 것입니다. 죄에 대한 완전한 승리, 이것이 늦은 비를 받는 조건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통하여 알고 있는 죄를 완전히 이기고, 알고 있는 계명을 완전하게 순종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마지막 세대에 대한 화잇 부인과 선구자들의 가르침입니다.”

“인치는 천사는, 알고 있는 죄를 범하고 아는 의무를 게을리하는 어느 남녀나 아이 위에 하나님의 인을 치지 않을 것이다.”(1기별, 366)
“우리들 중 아무라도 우리 품성에 하나의 점이나 흠이 있는 동안에는 하나님의 인을 받지 못하게 될 것이다. 모든 더러움에서 영혼의 성전을 깨끗게 하기 위하여 우리 품성 가운데 결점을 고쳐야 할 것이 우리에게 남아 있다. 그 다음에 오순절 날 이른 비가 제자들에게 내렸던 것처럼 늦은 비가 우리에게 내리게 될 것이다.”(5증언, 214)

“우리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성숙한 남녀가 되기 위하여 있는 힘을 다하여 몸부림치고 있는가? 우리는 그의 충만함을 구하여 우리 앞에 세워놓은 그 목표, 즉 그리스도의 품성의 완전을 향하여 끊임없이 전진하고 있는가? 주님의 백성이 이 목표에 도달할 때, 그들은 그들의 이마에 인침을 받게 될 것이다.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그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하게 될 것이요, 그때 기록하는 천사는 ‘다 이루었다’라고 외칠 것이다.”(리뷰 6/6,1902)

“만일 하나님의 백성이 그들 편에서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고 그들에게 늦은 비가 임하여 그들의 과오를 제거해 주고 그들의 잘못을 시정해 주기를 기다리고만 있다면 그리고 그것이 그들에게서 육체와 정신의 모든 더러움을 제거하고 셋째 천사의 큰 외침에 가담하기에 적합하게 만들어 주기를 기대한다면, 그들은 부족함이 발견될 것을 나는 보았다. 유쾌함 또는 하나님의 능력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명하신 일, 곧 육체와 정신의 모든 더러움을 제거하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중에 거룩함을 완성하는 일을 행함으로써 그것을 받을 준비를 갖춘 자들에게만 임하는 것이다.”(1증언, 619)

“만일 누구든지 진리를 순종하므로 순결해지지 않고 그들의 이기심과 교만 그리고 악한 욕망들을 승리하지 않는다면 하나님의 천사들은 다음과 같이 말할 것이다. ‘그들은 우상과 연합하였으니 그대로 두어라.’ 그리고는 그들의 정복하지 못한 악한 습성들과 함께 그들을 악한 천사들의 조정에 버려둔 채 다른 일을 위하여 떠날 것이다. 모든 점을 극복하고 모든 시험에 이기고 어떤 결과가 생기더라도 참된 증인의 권면에 따르고 극복한 자들이 늦은 비를 받고 변화되어 승천하기 위하여 준비될 것이다.”(1증언, 187)

신신학: “아니, 타락한 본성을 가진 우리가 어떻게 완전한 순종을 할 수 있습니까? 그것은 말도 되지 않습니다! 완전주의는 이단입니다. 인간은 하나님께서 은혜로 덮어주시는 의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구원은 공로나 행함에 대한 대가가 아니라 거저 주시는 은혜이기 때문이죠.”

본 선교 기관: “그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기억하세요! 알고 있는 죄를 품고 있고, 알고 있는 계명에 순종하지 않는 사람은 결코 늦은 비를 받지 못한다는 것이 재림교회 선구자들이 전한 복음입니다. 물론, 구원은 거저 주시는 은혜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알고 있는 죄를 품고 있고, 알고 있는 계명에 순종하지 않는 상태에서 칭의를 받을 수 있다는 말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의롭다 하심을 받기 이전에 그 심령의 완전한 복종을 요구하신다. 인간이 의롭다 하심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계속적인 순종의 생애를 살아야 하며, 사랑으로 역사하는 살아있는 믿음을 통하여 그 영혼이 순결케 되어야 한다.… 인간이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기 위해서는 그의 믿음이 마음의 모든 애정과 충동들을 지배할 수 있는 위치에 도달해야 한다. 또한 믿음 자체가 완전함에 이르는 것은 오직 순종에 의해서이다.… 그리스도의 은혜가 없이는 죄인은 절망적인 상태에 놓여 있게 되며 그를 위하여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그러나 거룩한 은혜를 힘입을 때에는 초자연적인 능력이 인간에게 부여되며 그 능력이 인간의 정신과 마음과 품성에 역사하게 된다.” (1기별, 460, 461)

신신학: “여하튼, 우리는 죄를 완전히 승리할 수 없고, 계명에 완전히 순종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단지 타락한 본성을 가진 인간일 뿐입니다. 우리는 신이 아닙니다.”

본 선교 기관: “만약 우리가 계명에 완전히 순종할 수 없다면, 왜 우리는 넷째 계명인 안식일 계명을 지켜야 합니까? 안식일 계명도 십계명 중의 하나일 뿐인데 말입니다. 예수께서는 죄로 오염된 인성을 취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승리하셨고 계명에 순종하는 삶을 사셨습니다. 그분께서 성령의 능력에 힘입어 승리하셨으므로 우리도 성령을 통하여 승리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모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죄로 인하여 더럽혀진 인성을 취하셨다. 만일 그렇게 하지 않으셨다면, 주께서는 그 형제들과 같이 되실 수도, 우리와 같이 모든 일에 한결같이 시험을 받으실 수도 없으셨을 것이다. 또한, 우리가 이기는 것처럼 이기신 것도 아니었을 것이요, 인간이 필요한 그러한 온전하신 구세주가 아니셨을 것이다. … 그리스도께서는 인성으로서 아담의 모든 자손들처럼 죄된 본성을 물려받으셨다. 신성의 편에서는 잉태되실 때부터 성령으로 탄생하시었다. 이 일로 인하여 인간은 더 나은 고지로 올려 놓아지게 되었고, 성령으로 태어나는 모든 사람은 그리스도께서 승리하신 것처럼 승리해야 한다.”(대총회에서 발간한 1946년도 판 Bible reading for the home)

신신학: “죄를 승리하는 면에 있어서 예수님은 결코 우리의 모본이 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근본부터가 다른 분이니까요. 그분은 죄로 인한 오염이 없는 상태로 태어나셨습니다. 만일 그분께서 우리처럼 타락한 인성을 취하셨다고 주장하면 그분을 죄인으로 만드는 것이고 그럴 경우 그분은 결코 인간의 구세주가 될 수 없습니다.”

본 선교 기관: “타락한 본성을 갖고 태어났다는 이유 때문에 죄인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죄를 의도적으로 선택해서 범했기 때문에 죄인이 되는 것입니다. 죄에 대한 유일한 정의는 “의도적 불순종”이라는 것이 재림교회 선구자들의 가르침입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우리와 같은 육체를 가지고 태어나서 죄된 인성을 취하셨다고 할지라도, 그것이 예수님을 죄인으로 만들지 않습니다. 예수께서 우리와 같은 육체를 취하셨지만, 죄는 없으시다는 것이 성경의 가르침입니다. 어린아기는 자신이 원해서 태어난 것도 아니고 선택한 것도 아닌데, 부모로부터 타락한 본성을 물려받았다고 해서 지옥불의 정죄를 받는 죄인으로 태어난다면, 그것은 너무나 억울한 것이 아닙니까? 하나님께서는 노예로 살면서 평생동안 자신의 뜻과 의지를 사용하는 기회를 얻지 못했던 사람들에게도 죄에 대한 책임을 묻지 않는다는 것이 화잇 부인과 선구자들의 믿음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무지와 타락 속에서 하나님과 성경에 대해 아는 것이 없고 오직 주인의 채찍밖에 두려워할 줄을 모르는 짐승보다도 더 낮은 수준에 있는 노예들을 하늘에 데려가지 않으실 것이다. 그러나 동정심 많은 하나님께서는 할 수 있는 한 그들을 위하여 최선을 다하실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저들을 마치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취급하시는 반면에 그들의 주인들은 … 비참한 죽음을 당하게 될 것이다.” (초기, 275)

“하나님의 말씀에 기록된 죄에 대한 유일한 정의는 ‘죄는 불법이라’(요일 3:4)이다.”(쟁투, 492) “죄를 짓는 자마다 불법을 행하나니 죄는 불법이라.”(요일 3:4)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가 소경 되었더면 죄가 없으려니와 본다고 하니 너희 죄가 그저 있느니라.”(요 9:41)

신신학: “아담의 모든 후손들은 원죄를 가지고 태어납니다. 그러므로 갓 태어난 아기라 할지라도 정죄 받은 죄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린아기도 구세주가 필요한 것입니다.”

본 선교 기관: “1950년 중반까지만해도 재림교회는 원죄를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내가 십자가를 믿고 받아들여야 구원받는 것처럼, 내가 죄를 범하기로 선택해야만 지옥불의 심판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타락한 본성은 죄를 범한 결과로 생긴 것이지 죄 자체는 아닙니다. 죄의 결과인 타락한 본성은 유전되지만 죄 자체는 유전되지 않는다는 것이 재림교회 선구자들의 믿음이었습니다.

물론, 갓 태어난 신생아에게도 구세주가 필요합니다. 그러나 갓 태어난 아기에게 죄가 있기 때문에 구세주가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십자가는 인류에게 두 가지를 주었는데, 하나는 죄의 용서이고, 다른 하나는 아담의 모든 후손들이 한 번 태어나서 살면서 하나님을 발견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입니다. 십자가가 없었다면 아담과 하와가 죄를 범했을 때 심판을 받고 영원한 사망에 이르렀을 것이고, 아담의 후손들은 이 땅에 태어날 기회를 갖지 못했을 것입니다. 인류를 위하여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시지 않았으면, 우리의 죄를 용서받을 수 없을 뿐 아니라 한 번 태어나서 각자에게 정해진 기간 동안 살면서 진리를 발견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어린아기에게도 구세주가 필요합니다. “인류의 모든 족속을 한 혈통으로 만드사 온 땅에 거하게 하시고 저희의 연대를 정하시며 거주의 경계를 한하셨으니 이는 사람으로 하나님을 혹 더듬어 찾아 발견케 하려 하심이로되.” (행 17:26-27)

신신학: “빛은 점차로 밝아지는 것입니다. 우리는 백여 년 전에 세워진 교리에 발목이 잡혀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진보된 재림신앙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우리는 행함과 율법으로 구원받는다는 가르침으로부터 이제는 빠져나와야 합니다.”

본 선교 기관: 예언의 신과 선구자들이 믿던 복음은 행함과 율법으로 구원받는다고 가르치는 복음이 아니었습니다. 예언의 신과 재림교회의 선구자들이 강조한 것은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를 중심에 둔 참된 복음이었습니다. 재림교회의 부조들은 다음과 같은 복음의 균형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선한 행실로 말미암아 단 한 사람의 영혼도 구원을 받을 수 없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와 반면에 어떤 영혼도 선한 행실이 없이 구원받기란 불가능하다. …  자기를 이기는 위대한 일에서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아무것도 없다는 견해를 나타내지 말아야 한다. 성령께서 인간의 심령에 역사하지 않는 한 우리들은 매 발자국마다 걸려 넘어지게 될 것이다. 인간의 노력만으로는 아무것도 성취할 수 없으며 무가치한 것이다. 다만 그리스도와의 협력만이 승리를 의미한다. … 인간의 편에서 별로 할 일이 없다거나 전혀 아무 일도 할 수 없다는 인상을 다른 사람들에게 주어서는 안 되며 오히려 성공적으로 승리하기 위하여 인간이 하나님과 협력해야 할 것을 가르치라. … 심판 때에 무엇을 했는지 혹은 무엇을 하지 않았는지에 따라서 판결이 내려질 것이다.” (1가려, 474, 479, 480)

물론, 빛은 점차적으로 밝아져야 합니다. 그러나 빛이 밝아진다는 의미는 이미 존재하는 진리를 버리고 새로운 가르침을 받아들인다는 뜻이 아닙니다. 이사야의 가르침이 진리가 되기 위해서는 그 이전에 존재했던 출애굽기와 신명기의 복음과 일치해야만 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지금 여러분이 주장하는 신신학이 “진보된 재림신앙”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그 이전에 진리로 인정받은 복음과 일치해야만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마지막 시대에 “대언의 영”인 예언의 신을 통하여 여자의 남은 자손인 재림교회를 세우셨습니다. 그러므로 신신학이 진정 “새 빛”이라면 그것은 먼저 예언의 신과 일치해야 하고 그 의미를 더 깊고 밝게 이해하도록 도와주는 것이어야만 합니다. 그러나 신신학은 화잇 부인과 선구자들이 세워 놓은 복음의 모든 기둥들과 충돌하는 것입니다. 신신학은 “새 빛”이 아니라 “다른 복음”입니다.

만약 신신학이 성서적인 복음이고, 예언의 신이 말하는 복음이 틀린 것이라면 우리는 예언의 신을 버려야 합니다. 더 이상 “화잇 부인은 신학자가 아니었다.”는 말로 성도들을 기만하면 안 됩니다. 정말 예언의 신이 말하는 복음이 신신학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행함과 율법으로 구원받는 엉터리 복음이라면, 예언의 신은 “대언의 영”이 아니며, 그것에 기초를 두고 세워진 재림교회는 요한계시록 12장 17절이 지적하는 “여자의 남은 무리”가 아닙니다.

그런데 신신학은 이러한 예언의 신의 가르침을 전면적으로 무너뜨리고 있습니다. 복음을 신학적으로 분석할 때, 일반적으로 우리는 다음과 같은 6가지 면을 살펴봅니다. 1) 죄에 대한 정의, 2) 원죄, 3) 그리스도의 인성, 4) 칭의와 거듭남, 5) 성화와 죄의 승리, 6) 구원이 확정되는 시기. 이 6가지 기준을 통해서 볼 때, 신신학은 화잇 부인의 복음과 단 한 가지도 일치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일반 개신교회의 복음과 6가지 모두 일치하고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신신학은 그 뿌리를 바벨론의 복음에 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마지막 세대 35호에 기재한 “재림교회의 정통 복음과 통속적 가르침들의 비교표”를 꼭 살펴보기 바랍니다.

신신학: “우리는 대총회가 인정하는 복음을 따라야 합니다. 본 선교 기관에서 말하는 복음을 받아들이면 교회는 분열될 것입니다.”

본 선교 기관: “무엇이 대총회가 인정하는 복음입니까? 매년 시조사에서 수많은 예언의 신 출판되어 나오고 있는데, 대총회가 예언의 신이 말하는 복음을 부인한다는 말입니까? 대총회에서 발간하는 안식일 학교 교과를 보십시오. 많은 신신학적 가르침들이 나오고 있지만, 여전히 1950년대 이전에 주류를 이루었던 성소 정결의 복음이 실려 있습니다.
삼육 신학대학에서 가르치고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재림교회의 정통 복음으로 인정받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적어도 1950년대 이전까지는 분명히 그렇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아닙니다. 왜냐하면 1950년대 이후, 재림교회의 신학자들 중 많은 사람들이 부조들의 복음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앤드루스 신학대학 교수들 중 상당수가 바벨론 대학에서 학위를 받은 사람들 입니다. 이러한 상황 때문에 본 선교 기관이 교단 사이에 신학적 투쟁이 생기는 것입니다.
누가 교회를 분열시키고 있습니까? 신신학을 받아들인 사람들입니다. 195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재림교회는 신학적으로는 하나로 연합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1950년대 중반에 있었던 신학적 배도를 통하여 교회는 정통 재림신앙의 지지자들과 신신학의 지지자들로 나뉘어지게 되었습니다(마지막 세대 35호에서 설명했음). 신신학을 받아들인 사람들때문에 재림교회는 1950년대 이전의 옛 신앙과 신신학으로 나뉘어지게 된 것입니다.

신신학: “어떻게 본 선교 기관은 자신들처럼 믿어야 구원받고, 자신들처럼 믿어야 남은 무리에 속하는 것처럼 말합니까? 당신들의 그런 독단적 주장이 얼마나 교회에 해를 끼치는지 아십니까?”

본 선교 기관: “본 선교 기관은 한 번도 그렇게 가르친 적이 없습니다. 재림교회는 요한계시록 12장과 14장 예언에 따라서 태동한 교회입니다. 재림교회는 요한계시록에 기록된 세 가지 증거 ,즉 1) 하나님의 계명, 2) 예수의 증거, 3) 예수 믿음을 가지고 출발하였기 때문에 마지막 시대의 남은 교회라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여자의 남은 자손이 되기 위해서는 이 3가지를 반드시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지금 재림교회 내에서는 이 3가지 모두가 심하게 흔들리고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의 계명을 지켜야 한다고 말하지만 계명에 완전히 순종해야 한다는 가르침을 완전주의로 몰아가고 있습니다.
둘째, “예수의 증거”인 예언의 신에 대한 분명한 믿음을 버리려고 하는 움직임이 심각하게 일어나고 있습니다. 화잇 부인을 선지자라고 부르지만, 신신학과 부딪치는 부분에 가서는 예언의 신에 기록된 말씀이 가지고 있는 권위를 인정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셋째, 예수 믿음이란 예수를 지적으로 동의하는 것 이상의 믿음이어야 합니다. 예수 믿음이란 예수께서 가지셨던 믿음을 말합니다. 예수께서 믿음으로 세상을 이기고 죄를 이겼던 것처럼 마지막 성도들도 믿음을 통하여 알고 있는 죄를 완전히 버려야 합니다. 이 세 가지 중에서 어느 하나를 버릴 때, 결과적으로 재림교회가 마지막 시대의 남은 교회라는 사실을 스스로 부인하게 되는 것입니다.

Family Sites

통합 사이트sostv.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