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부-재림교회의 뿌리를 흔들고 있는 사단의 공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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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세대 제 37 호

재림 교회 신학생들에게 보내는 글

제1부-재림교회의 뿌리를 흔들고 있는 사단의 공격

저자: 강명수 장로

우리는 여러분의 졸업을 간절한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습니다. 우리는 여러분의 입과 손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재림교회에 허락하신 진리가 나오는 모습을 듣고 보게 되기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오늘날 우리는 재림교회 속에서 이상한 설교와 가르침을 너무나 많이 듣고 있기 때문입니다. 죄와 세속을 결정적으로 포기할 것을 촉구하는 호소를 듣는 대신에 이상한 의(義)를 제시함으로써, 어느 정도의 죄와 세속은 가지고 살 수밖에 없으며, 하나님께서도 그러한 우리의 삶을 인정하실 것이라는 추측을 하게 만드는 가르침들을 듣고 있습니다.

수많은 재림교인이 지난 수십 년 동안에 걸쳐 서서히 변경된 설교와 가르침 속에서 살아오면서 라오디게아 교회를 대표할 만한 인물들로 길들어져 왔습니다. 1950년대 이후부터 본격적으로 들어오기 시작한 자유주의 복음과 신신학은 이제 재림교회 어디를 가도 쉽게 접하는 것이 되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재림교회 복음의 진수를 지키고 있어야 할 삼육 신학대학 안에도 재림교회의 정통 복음과 신신학이 뒤엉켜 있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이 문제를 어디서부터 어떻게 풀어야 할까요?

지금, 재림교회는 1950년대 이전의 정통 복음을 고수하는 사람들과 1950년대 이후에 들어온 신신학을 따라가는 사람들로 나뉘어 있습니다. 이 글을 읽는 신학생 여러분은 무엇을 믿고 따라가고 있습니까? 여러분은 무엇이 정통 재림신앙이고 무엇이 신신학인지 정확하게 분별할 수 있습니까? 아직 여러분이 그 둘을 정확하게 분별하지 못한다면, 여러분은 분명히 깊이 잠자고 있거나 진리에 대한 무지 내지 무관심 속에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정통 재림 신학과 신신학 사이에 존재하는 투쟁을 이해해야만 합니다. 이 투쟁 때문에 미국에서는 수많은 자영 선교 기관들이 생겼고, Home Church들이 생겼습니다.

여러분은 마지막 시대에 교회 안에서 벌어지는 투쟁의 실체를 이해해야 합니다. 투쟁의 중심은 누가 재림의 시기를 정했는가가 아닙니다. 투쟁의 중심은 십사만 사천은 실제 숫자인가 상징인가가 아닙니다. 투쟁의 중심은 누가 교회를 비난하는가가 아닙니다. 어떤 사람들은 그러한 것들을 투쟁의 중심으로 만들고 싶어하지만, 결코 그것은 투쟁의 중심이 아닙니다. 여러분은 신학을 전공하는 성경 학도로서 투쟁의 핵심은 무엇이고, 그것은 어떻게 시작되었으며, 어떤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누가 무엇을 가르치고 있으며, 교회는 왜 신신학을 지지하게 되었는가를 이해해야만 이 문제의 핵심을 들여다볼 수 있습니다.

마지막 시대를 위한 복음의 핵심이 무엇일까요?

하나님께서는 기간 예언의 시작과 끝에 선지자를 일으키셔서 예언의 시작과 성취를 알리는 기별을 전하도록 섭리하였습니다. 성경에서 가장 긴 예언인 2,300주야 예언을 주실 때도 그렇게 섭리하셨습니다.“그가 내게 이르되 2,300주야까지니 그때에 성소가 정결함을 입으리라 하였으니.”(단 8:14)

하나님께서는 성경에서 가장 긴 예언인 2,300주야 예언을 다니엘 선지자를 통하여 주셨습니다. 2,300주야 예언은 몇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는데, 각 부분의 예언이 끝나는 때마다 예언의 성취를 알리는 선지자를 부르셨고 또한 그에게 기별을 주셔서 전파하도록 하셨습니다. 예를 들어, 69주일 예언이 끝나는 시점, 즉 예수께서 침례를 받고 공생애를 시작하는 때를 알리는 예언이 성취되었을 때에는 침례 요한을 부르셔서 그리스도의 길을 예비하는 기별을 전파하도록 섭리하셨습니다. 또한, 70주일의 예언이 끝나는 해에는 바울을 통하여 유대인들에게 주어진 은혜의 시간이 끝나고 복음이 이방인을 향하여 전파될 것이라는 기별을 주셨습니다.

그렇다면, 2,300주야 예언이 끝나는 해인 1844년에도 하나님께서는 선지자를 일으키시고 그에게 기별을 주셔야 합니다. 1844년 즈음하여 선지자가 나타났습니까? 혹자는 말하기를 그때 세 명의 선지자가 기독교회에 나타났다고 말합니다. 만일 그 말이 사실이라면, 그 세 명 중에 누가 진짜 마지막 시대의 선지자입니까? 어떻게 진짜 선지자를 정확하게 찾아낼 수 있을까요? 앞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예언이 성취되는 때에 선지자를 보내 주실 뿐 아니라, 그 선지자가 전해야 할 기별 또한 주십니다. “2,300주야까지니 그때에 성소가 정결함을 입으리라.”는 말씀 속에서 우리는 이 예언의 끝에 나타나는 선지자는 반드시 성소 정결에 관한 기별을 전파할 것이라는 단서를 확보하게 됩니다. “성소 정결”이야말로 1844년부터 예수 재림 때까지 전파되어야 할 기별의 중심입니다. 하나님의 종들은 성소를 정결하게 하는 복음을 전파할 것이고, 사단의 종들은 성소가 정결하게 되지 못하게 하는 복음을 전할 것입니다. 바로 여기에 하나님께서 재림교회에게 주신 복음이 있는데, 그것은 “성소 정결”의 복음입니다. 그러므로 누가 참 하나님의 종인가를 구별할 때 반드시 확인해야 할 것이 있는데, 그것은 누가 성소의 정결에 관한 기별을 전하고 있는가입니다.

1844년 전후로 나타나서 자신이 하나님께 기별을 받았다고 말하면서 선지자임을 주장하는 거짓 선지자들이 백 명이나 나타났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그들 중에서 성소 정결의 기별을 전하는 진짜 선지자를 찾아낼 수 있습니다. 1844년 즈음에 누가 하나님께로부터 계시를 받은 선지자로 나타났으며, 누가 성소 정결에 관한 기별을 전파했습니까? 오직 엘렌 지 화잇뿐입니다. 화잇 부인의 모든 글과 가르침은 철저하게 성소 정결의 복음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거룩한 생애를 살아야 한다는 강력한 호소, 죄에 대한 완전한 승리, 건강 개혁에 관한 권면, 시골 생활에 대한 가르침 등은 모두 마음 성소의 정결에 관한 것입니다. 재림교회는 한 사람을 선지자로 만들려고 억지로 조작하는 교회가 아닙니다. 이것은 매우 성서적인 해석이고 역사적으로 정확하게 입증할 수 있는 사실입니다. 1844년 당시 누가 하나님의 기별자들이었습니까? 엘렌 화잇과 성소 기별을 받아들인 재림교회의 선구자들입니다. 그 기별을 통하여 라오디게아 교회를 깨우고, 늦은 비를 위하여 백성을 준비시키는 것이 재림교회의 사명입니다.

동일한 원칙을 현시대에 적용시켜 보도록 합시다. 누가 이 시대의 참된 하나님의 종들입니까? 이 질문에 대한 분명한 대답을 가지고 있는 재림교인들이 하나님께서 재림교회를 세우신 목적과 사명을 완수하게 될 사람들입니다. 어떤 사람이 마지막 시대에 나타나는 하나님의 종일까요? 성소를 정결케 하는 복음을 전하는 자들입니다. 그들이 이 시대에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종들입니다.

성소를 정결케 하는 복음이란 무엇인가?

우리가 잘 아는 대로 윌리엄 밀러와 재림 운동에 참여했던 그리스도인들은 다니엘 8장 14절에 나오는 “그때에 성소가 정결함을 입으리라.”는 말씀을 오해했습니다. 그 결과, 예언의 성취 시점은 정확하게 계산해 내었지만, 그 예언의 목적과 내용은 이해하는 일에 실패했던 것입니다. 물론, 1844년 이후에 정결해지는 성소는 하늘 성소를 뜻합니다. 그런데 하늘 성소는 어떻게 정결해질까요? 화잇 부인의 다음과 같은 말씀은 우리 모두에게 성소가 정결케 되는 것에 대한 분명한 이해를 가져다 줍니다.

“하늘에서 조사 심판이 진행되고 있는 동안, 즉 회개한 신자들의 죄가 성소에서 도말되고 있는 동안, 세상에 있는 하나님의 백성 사이에는 정결하게 하고 죄를 없이 하는 특별한 일이 행하여져야 한다.”(쟁투, 425)

“이 땅에서 영혼을 정결케 하는 일이 그리스도께서 하늘에 있는 성소를 정결케 하시는 사업과 조화되어 반드시 있어야 한다.”(마라, 249)

“그리스도께서 하늘에 있는 성전을 당신 백성의 죄들로부터 정결케 하고 계신다. 우리는 그분과 함께 이 지상에서 도덕적인 더러움으로부터 영혼의 성전을 깨끗하게 하는 일에 협력하여 일해야 한다.”(리뷰 2권, 365)

“연구와 명상과 기도로써 하나님의 백성은 통속적이며 세속적인 사상과 감정에서 벗어나서 향상하게 될 것이며, 그리스도와 백성의 죄를 정결케 하는 하늘 성소의 위대한 사업과도 조화를 이루게 될 것이다. 지상의 경배자들은 그들의 생애를 세밀하게 살펴서 그들의 품성을 의의 큰 표준과 비교하게 될 것이다. 그들은 그들 자신의 품성의 결함을 보게 될 것이다. 그들은 또한 하나님의 대사들에게 맡긴 이 시대를 위한 위대하고 엄숙한 사업에 자격을 갖추려면 하나님의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5증언, 575)

“하늘 성소에서 그리스도의 중보 사업이 그치게 될 때 세상에 살아 있는 사람들은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 중보자 없이 서게 될 것이다. 저들의 옷은 흠이 없어야 하고 저들의 품성은 피 뿌림을 통하여 죄에서 깨끗해졌어야 한다. 저들은 하나님의 은혜와 저들 자신의 꾸준한 노력으로 말미암아 악과의 투쟁에서 승리자가 되어야 한다.”(쟁투, 425)

위의 말씀들을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마음 성소의 정결이 없이는 하늘 성소의 정결이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지상에 사는 하나님 백성의 마음과 생애가 정결하게 되어야 죄로 더럽혀진 하늘 성소가 정결케 된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성소를 정결케 하는 복음이란 마음 성소를 정결케 하는 복음을 뜻합니다. 그리고 바로 그것이 1844년 이후부터 예수 재림까지 재림교회가 전파해야 할 복음의 핵심입니다.

사단은 무엇을 공격할까요?

요한계시록 12장 17절에는 마귀가 여자의 남은 무리를 공격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용이 여자에게 분노하여 돌아가서 그 여자의 남은 자손, 곧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로 더불어 싸우려고 바다 모래 위에 섰더라.”(계 12:17) 마귀는 남은 교회인 재림교회를 공격할 때 무엇을, 어떻게 공격할까요? 물론, 마귀는 하나님께서 2,300주야 예언이 끝나면서 마지막 남은 무리에게 주신 성소 정결의 복음을 공격할 것입니다. 마음 성소를 정결케 하는 복음을 공격할 것이라는 말입니다. 실제로 사단은 마음과 삶이 정결함을 받지 못하게 만드는 복음을 개신교회뿐 아니라 재림교회 안에도 퍼트려 왔습니다.

다니엘 8장에서는 1844년 이후부터 마음과 생애를 정결케 하는 복음이 전파될 것이라고 하였는데, 요한계시록에는 마지막 시대의 여자의 남은 자손의 정체를 설명하면서 “계명을 지키는 자들”이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12장의 마지막 장면에는 여자의 남은 무리의 정체가 나오고, 14장에도 짐승의 환난을 극복하고 짐승의 표를 거절하는 그리스도인들의 정체가 나타나 있는데 그것이 무엇인가요? 그들 역시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마지막 시대의 복음은 계명을 지키게 하는 복음이어야 합니다. 그래서 재림교회는 넷째 계명인 안식일 계명을 포함한 십계명 준수를 강조하는 것이 아닙니까?

그런데 마음 성소의 정결과 계명을 지키는 것은 어떤 관계가 있을까요? 참된 중생의 경험을 한 그리스도인들은 그 마음에 계명이 새겨짐으로 순종의 생애를 살게 되고 이로써 마음 성소는 정결해집니다. 마지막 시대에 사단의 공격은 바로 여기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습니다. 사단은 일반 기독교계에 계명이 십자가에서 폐해졌다는 가르침을 퍼트림으로써 성소 정결을 막았으며, 재림교회 안에서는 계명을 완전하게 지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가르침으로 성소 정결을 훼방하고 있습니다. 한 번 믿기만 하면 계명을 지키지 않아도 구원받게 된다는 바벨론의 가르침이 재림교회 안에는 조금 다른 모습으로 들어왔는데, 그것은 “우리는 타락한 본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계명에 완전하게 순종할 수 없다.”라는 것입니다.

완전한 순종을 부인하는 복음은 성소를 정결케 하는 복음이 아닙니다. 그것은 성소를 더럽히도록 유도하는 가르침입니다. 계명에 대한 완전한 순종의 가르침을 거절하는 것은 죄를 이길 수 없다는 가르침으로 연결되고 그것은 마음 성소를 죄로 더럽히도록 인도하는 가르침입니다. 화잇 부인은 이 점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경고하였습니다.

“사단은 사람들이 죄를 이기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하는 그의 치명적인 궤변으로써 그리스도의 제자들을 끊임없이 속이려고 하고 있다.”(쟁투, 489)

“하나님의 명예와 그리스도의 명예는 당신 백성의 성품의 완전함에 달려 있다.”(소망, 671)

“반드시 순종하는 일이 요구되며 또한 완전한 생애를 사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라고 말하는 이들은 하나님께서는 공의롭지 못하며 진리가 아니라고 하는 비난을 하나님께 돌리는 것이다.”(리뷰 2/7, 1957)

“단 한 번이라도 그것(죄)을 완전히 정복하기에는 무력하다고 표현함으로써, 하나님의 명예를 손상시키지 말라.”(편지 31, 1893)

“성품의 완전을 목표로 삼지 않은 자들은 모든 죄로부터 그들을 완전히 구원할 때에 나타나는 … 그분의 영광을 하나님으로부터 도둑질하는 것이다.”(MS 42, 1890)

“만일 자기의 결점을 숨기거나 핑계하는 자들이 사단이 그들에 대하여 얼마나 기뻐하며 그리스도와 거룩한 천사들을 조롱하는지 볼 수 있다면, 저들은 자기들의 죄악을 고백하는 일과 그 죄악들을 버리는 일에 주저하지 않을 것이다.”(쟁투, 489)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이 명령은 허락이다. 구속의 경륜은 우리가 사단의 권세에서 완전히 회복됨을 계획한다. 그리스도께서는 항상 겸비한 영혼을 죄에서 분리시키신다. 그리스도께서는 마귀의 역사를 멸하시기 위하여 오셨으며, 모든 회개하는 영혼에게 성령을 주셔서 그로 죄를 범하지 않는 길을 마련하셨다. 유혹자의 힘이 그릇된 행동에 대한 구실로 설명되어서는 안 된다. 사단은 그리스도를 따른다고 공언하는 사람들이 말하는 이러한 소리를 들을 때에 기뻐한다. 죄의 길로 인도하는 것은 바로 이런 핑계이다. 죄를 범하는 일에 핑계가 있을 수 없다. 거룩한 기질, 그리스도와 같은 생애가 모든 회개하고 믿는 하나님의 자녀에게 이루어질 수 있다. 그리스도인 품성의 이상은 그리스도와 같이 되는 것이다. 인자 되신 그리스도의 생애가 완전하셨던 것처럼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도 저희 생애가 완전하여야 한다.”(소망, 311)

왜 사단은 재림교회 안에 신신학을 퍼트릴까요?

신신학은 성소를 정결케 하는 복음이 아닙니다. 사단이 신신학을 재림교회 안에 그렇게 열심히 퍼트리는 유일한 이유는 마음 성소의 정결을 막기 위해서입니다. 사단은 마지막 시대에 “성소 정결”이라는 2,300주야 예언의 목적이 성취되는 것을 절대 원치 않습니다. 만일 성소를 정결케 하는 복음이 재림교회 안에서 퍼지면, 이 복음에 의해서 십사만 사천 인이 준비되어 그들에게 늦은 비 성령이 부어질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전하는 세 천사의 기별을 통하여 온 세상이 복음으로 환하여져 각 사람은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하게 될 것이고, 지구를 위하여 주어진 은혜의 기간이 끝나면서 예수께서 재림하실 것이며, 사단 자신과 악한 천사들은 천 년 동안 옥에 갇혀 있다가 유황불 못에 태워질 것입니다. 이 모든 사건들은 성소를 정결케 하는 복음으로부터 시작된다는 사실을 사단은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단은 “성소를 결코 정결하게 만들 수 없는 복음”인 신신학을 재림교회 안에 슬며시 넣었던 것입니다.

사단은 어떤 교회에서는 “계명에 대한 완전한 순종은 불가능하다. 그것은 완전주의다.”라는 말로서 성소 정결의 복음을 부인하도록 만들었고, 어떤 교회에서는 “누가 죄를 완전히 이길 수 있단 말인가?”라는 말로서 사람들을 미혹하고 주눅이 들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바라보는 사람들은 모두 다음과 같은 간증을 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를 위하여 창에 찔리신 그리스도를 바라보게 될 때, 우리가 율법을 범하면서도 그분의 은총을 계속해서 누릴 수는 없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우리는 죄인으로서 우리가 그리스도의 공로를 굳게 붙들고 죄짓기를 중단해야만 한다는 것을 느낄 것이다.”(1가려, 389)

십자가를 바라보면서 누가 아는 죄를 계속해서 품고 있을 수 있을까요? 누가 감히 죄를 품고 거룩한 하늘 진주 문을 들어가려고 할 수 있을까요? 그리스도인이 아는 죄를 모두 버리게 되는 “완전”의 경험은 주 안에서 참된 거듭남을 경험한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나 하게 되는 경험입니다. 완전은 모르는 것에 대한 완전히 아닙니다. 그것은 아는 죄를 버리고, 알고 있는 계명에 순종하는 것을 뜻합니다. 성령께서 양심 속에서 분명하게 인식시켜 주시고 감동하실 때 그분의 음성을 따르는 것을 뜻합니다. 만일 이것이 불가능하거나 불필요한 경험이라면 도대체 무엇이 참된 그리스도인의 마음과 생애란 말입니까?

완전은 거듭나지 않은 사람에게는 도무지 있을 수 없는 불가능한 경험이지만, 참된 중생을 경험한 그리스도인에게는 너무나 당연한 경험입니다. 그러나 사단은 완전의 경험을 인간이 도저히 미칠 수 없는 환상적인 것으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사단은 그것을 얻고자 하는 사람은 율법주의자요, 완전주의자인 것처럼 만들어 버렸습니다. 그 결과 재림교회 안에서 완전에 대해서 말하는 것조차 이상한 극단처럼 보이게 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이러한 분위기를 조성하는 일에서 사단은 재림교회 대학의 신학자들을 이용했습니다. 1950년대 이후부터 재림교회의 신신학자들은 먼저 죄의 정의를 “죄로 인한 타락한 상태”로 규정했습니다. 그래서 사람은 누구나 죄로 인하여 타락한 본성을 가지고 태어나기 때문에 태어나는 순간부터 죄인이라고 가르치기 시작했습니다. 이러한 논리하에서는 갓 태어난 아기도 정죄 받은 죄인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자신이 원해서 태어난 것도 아니고, 아무 것도 모르는 천진난만한 아기가 태어나면서부터 지옥불의 정죄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가르침의 원조인 천주교회는 중세기에 영아 세례라는 비성서적 관습을 세우게 되었습니다. 중세기에 수많은 아기가 전염병으로 죽어갔습니다. 어머니들은 죽은 아기를 품에 앉고서 신부를 찾아와 “내 아기는 구원받았습니까? 내 아기는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라고 울부짖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갓 태어난 아기에게 세례를 베푸는 신학적 결정을 하게 된 것입니다. 천주교회에서 세워진 원죄론을 받아들인 재림교회도 이제는 갓 태어난 아기에게 침례를 베푸는 문제를 신학적으로 생각해 보아야 할 상황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죄의 정의를 “태어날 때 가지고 나온 타락한 상태(본성)”로 규정하자, 예수 그리스도의 인성도 바뀌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께서 성육신 하실 때에 타락한 인성(sinful nature)을 취하셨다고 하면, 예수님을 정죄 받은 죄인으로 만들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논리적 귀결 때문에 천주교회는 무염 시태설이라는 신학을 통해서 예수님을 우리와는 다른 인간으로 만들었던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재림교회의 신신학자들도 예수님을 우리와는 다른 존재로 만들었습니다. 이러한 일련의 신학적 변질 때문에 재림교회에서는 두 종류의 복음이 생겼고 그 때문에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의 각 국면에서 논쟁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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