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로이 목마에 농락 당하고 있는 우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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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세대 제 16 호


트로이 목마에 농락 당하고 있는 우리들

    저자 소개 : 리처드 오필 (Richard O’Ffill) 목사는 플로리다 합회에서 목사, 부흥 강사및 장년선교 부장으로 봉사한 후 은퇴하신 분이다. 이분의 저서로는 “Lord, Keep Your Mansion ­ Just Save My Children” 과 “Lord, Save My Family Before It’s Too Late” 등이 있다. 리처드 오필 목사는 또한 RivivalSermons.org 라는 선교 웹사이트를 운영하고 있다.  

    (이 글은 허락을 받고 www.greatcontroversy.or.kr 에서 퍼 온 글임)
다음의 글은 플로리다 합회에서 전도 목사로 다년간 봉사했던 리처드 오필 (Richard O’Ffill) 목사의 글이다. 이 글은 지난해 미주 재림 교회들에게 교회 부흥을 위한 일약 해결책으로 과대 선전되고 권장되었던 “목적이 이끄는 40일” 프로그램의 기조를 이루고 있는 현대 교회 성장론에 대한 한 신실한 목회자의 체험적이고 사려 깊은 비평을 담고 있다. 여러 미주 한인 재림 교회 목사들과 평신도들이 제기한 우려의 표명에도 불구하고, 세상 유행의 회오리바람처럼 한 바탕 우리 교회들을 휩쓸고 지나간 이 종교놀음이 우리에게 남겨준 것이라고는 오직 아까운 시간과 재정과 인력의 낭비뿐이었다. 이 이질적인 프로그램을 실시하기를 거부했던 목사님들과 재림 교우님들은 물론 그것을 주도하고 권장한 분들에게까지도 오필 목사의 비평을 심사 숙고하는 마음으로 정독해 보시도록 권하는 바이다. 정체성과 추구하는 목적이 재림 교회와는 너무나 다른 세상의 교회들에서 유래된 이러한 프로그램이 담고 있는 위험성을 오필 목사의 통찰력 있는 글이 정제된 논리로 분명히 지적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글은 최근에 사무엘 피핌 목사의 편집으로 출간된 “Here We Stand” (우리의 입장) 이라는 저서의 첫 장을 장식하고 있는데, 이 저서는 현대 재림 교회 안에 잠입해 온 여러 병폐적인 현상들에 대해 합회 행정자들, 전도 목사들, 신학자들 및 여러 청장년 지도자들의 거리낌 없는 입장을 담고 있다. [편집자]

    하루는 내가 20년 가까이 한 부서장으로 종사해온 플로리다 합회의 내 책상 앞에 앉아 근무하고 있을 때였다. 그날 합회 총무에게서 나에게로 한 메모가 전달되었는데, 그 메모는 합회내의 목사들 몇명과 함께 시카고 근교에 자리 잡고 있던 윌로우크릭 교회에서 열리는 4일간의 세미나에 참석하라는 요청을 담고 있었다. 이 윌로우크릭 교회가 주창하는 교회 성장론이 우리 재림 교회들에 미치고 있던 영향에 대해 나의 우려가 날로 증가하고 있던 차라, 나는 이 프로그램을 직접적으로 대하여 보고 정보를 입수할 수 있는 이 기회를 반갑게 받아들였다. [*역자주: 비교파 일반 개신교회인 윌로우 크릭 교회는 빌 하이벨스 목사 (Bill Hybels) 가 세운 대형 교회로서, 얼마전 우리 한인 미주 재림 교회들에게 교회 성장을 위한 일종의 특효약인 것처럼 소개된 “목적이 이끄는 40일”프로그램의 계발로 유명한 릭 워렌 목사 (Rick Warren) 의 새들백 교회와 함께 현대판 교회 성장론의 주역이며, 그러한 교회 성장론을 추구하는 이들의 메카로 알려져 있다]

우리 합회의 소규모 그룹은 얼마 후 여러 교파들 및 독립 교회들에서 온 약 천명가량의 참석자들과 함께 이 윌로우크릭 교회에 도착했다. 그리고 그로부터 4일간 우리는 이 교회의 전반적인 목회 활동에 대해 체계적으로 설명을 들었고, 드라마 상연과 찬양 밴드를 포함한 전형적인 비신자를 위한 예배(seeker service) 도 직접 입회해 보았으며, 물론 이러한 예배중 이 교회의 고참 목사들이 하는 설교들도 들어 보았다.

한가지 흥미 있는 사실은, 이 세미나의 마지막 즈음에 이 교회의 창시자이며 주임 목사인 빌 하이벨 목사가 그의 세미나를 종결하는 연설 중, 우리가 그곳에서 배운 것들을 우리 교회들로 돌아가서 한꺼번에 강요적으로 실행에 옮기는 것은 좋지 않다고 말한 것이다. 그렇게 하면 “당신들의 교회를 두 동강 내게 될 것입니다” 라고 그는 말했다.

그러면서 하이벨 목사는 그 세미나의 마지막 과정으로 각 교파에 속한 목사들 단위로 분담회를 가지라고 요청했다. 이 분담회를 통해 같은 교파에 속한 목사들 끼리 이 세미나에서 보고 느낀 자신들의 경험과 아이디어들을 서로 나누는 시간을 가질 수 있을 것이라고 권했다.

우리 재림 교단에서 온 참석자들의 분담회를 이끈 사실상 의장은 그 당시 메릴랜드 주의 포토맥 합회에 소재한 다마스커스 교회의 목사였던 리처드 프레드릭스 목사였다. 나는 그 때 그 분담회에서 이 윌로우크릭 모델을 우리 각자가 담임하고 있는 교회들에 어떻게 소개하고 실행할지에 대한 작전이 토의되는 것을 듣고 있던 경험을 결코 잊어버릴 수 없다. 그 토의 과정 중 의장이던 프레드릭스 목사가 “이 일을 효과적으로 하기 위해서 우리는 서서히 일을 진행해야 합니다”라고 말한 것을 아직도 나는 기억하고 있다.

[*역자주: 이 프레드릭스 목사는 그 얼마 후, 이 다마스커스 교회의 다수 교인을 끌고 재림 교회를 떠나 안식일을 지키는 독립 교회를 조직했다가, 또 얼마 후에는 안식일 교리를 포기하고 일요일 날 예배를 드리는 일반 교회로 분신 둔갑하였다]

이미 그 당시 노스캐롤라이나 주의 애쉬빌에서 목회하던 한 젊은 목사가 하이벨 목사가 우리에게 주의를 준 그 성급한 일을 저질러 그가 담임하고 있던 교회가 두쪽으로 갈라졌던 것이었다. 나는 그 얼마 후, 이 젊은 목사의 불장난으로 인해 두동간 난 교회에 다니던 한 젊은 치과의사의 부인과 담화를 가진 적이 있다. 그녀는 눈물을 글썽이면서, 왜 그녀와 그녀의 남편이 다른 약 40여명의 전문 직종을 가진 젊은 교인들과 함께 이 젊은 목사가 담임하던 교회에서 나와 새로운 교회를 조직할 수밖에 없었던지 내게 설명해 주었다. 그들은 이 윌로우크릭의 교회 성장론 모델이 우리 재림 교회가 추구하는 바와 공존될 수 없음을 확신하였던 것이다. 이렇게 교회가 두동강이 난대도 불구하고 이 젊은 목사는 조금도 당황하지 않은 것 같았다. 그가 나에게 “이제 주도권을 우리가 잡았습니다”라고 자신만만하고 퉁명스럽게 자신의 느낌을 전했던 것이다. 그 후, 윌로우크릭의 교회 성장론 모델을 찬양하는 이 젊은 목사의 글이 교회 기관지인 재림 리뷰지에 실린 적이 있다. [*저자주: 이 목사는 그로부터 몇년 후에 안식일 교리를 공식적으로 부인하며 재림 교회의 목사직을 사표내고 떠나갔다]

이 후에도 90년대와 21세기에 접어든 지금까지 여러 재림 교회 목사들과 평신도 지도자들이 이 현대판 교회 성장론을 배우기 위해 계속 윌로우크릭 교회를 방문하여 왔다. 특히 북미 지회와 서부 유럽과 호주에서 온 목사들이 이 세미나를 거치고 자기 지역들로 돌아가 그들의 교회들과 한 유별난 지회 단위에서 그들이 배운 바를 실행에 옮겨 왔었다. 이 결과 여러 지역 재림 교회들과 몇몇 교회 기관들마저도 이 윌로우크릭 협회의 회원으로 지금 가입되 있는 지경에 있다.

우리 재림 교회 안에서 이러한 윌로우크릭 선풍의 초기 선봉장 역할을 담당했던 교회들은 바로 오리건 주의 서니사이드 교회 (Sunny Side Church), 메릴랜드주의 다마스커스 교회 (Damascus Church) 와 콜로라도 주의 그리스도 재림 친교회 (Christ Advent Fellowship) 였다. 그런데 아주 슬픈 사실은 바로 이 현대판 교회 성장론의 선봉적 역할을 했던 교회들과 다른 여러 유사한 교회들이 결국 재림 교단을 떠나 지금 일요일을 지키는 교회들로 둔갑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물론 이 윌로우크릭 교회 성장론 모델의 일부 요소들을 실천에 옮긴 많은 재림 교회들이 우리 교단을 떠나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들 중 제법 많은 수의 교회들이 우리 재림 교회의 독특성을 들어내는 교리들을 경시하고 있거나 들어내지 않으려고 애쓰고 있음을 자주 목격하게 된다. 이들 중 적지 않은 교회들과 특히 새로 심어진 예배소들이 “제 칠일 재림 교회” 라는 이름 보다는 “모모 공동체 교회” (Such & Such Community Church) 라는 간판을 내 걸고 있음을 보면서 경각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이 공동체 교회들은 주로 교파에 속하지 않은 독립 교회들로서 일반인들에게 인식되어 있는데, 사실상으로는 한 교파에 엄연히 속해 있으면서도 자기들을 비교파적인 교회인양 사칭하며 내보이는 행위에는 일말의 윤리적인 문제가 있다고 생각된다. 하지만 이 교회 이름의 변칭은 이들 교회가 지향하고 있는 그들의 회중교회주의 (Congregationalism) 의 경향을 정확하게 반영하고 있는 것 같다.

이런 여러 가지 바람직하지 않은 일들이 일어났음에도 불굴하고 이 현대판 교회 성장론의 침투에 대해 지금까지 이상하게 한마디의 경종도 울리지 않은 것은 참 이해하기 힘든 일이다. 어찌하여 교회의 일부 지도자들과 평신도들이 많은 우리 교회들과 목사들 및 교인들에게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왔던 이러한 프로그램을 계속해서 장려하고 있는가 말이다.

아마 이에 대한 대답은 교회를 떠나가는 많은 수의 우리 젊은 청소년들을 교회에 잡아두기 위한 방편들을 모색코자 하고 또 정체된 백인 교인들의 교회들을 부활시키고자 하는 많은 이들의 좋은 의도에서 찾을 수 있겠다. [*저자주: 2003년 겨울 애리조나 주 피닉스에서 개최된 “약속 이행자” (Promise Keepers) 라는 선교회의 목회자 대회에서 한 유명한 청소년 전도자가 발표했는데, 복음주의 개신교회의 속한 80%의 젊은 청소년들이 고등학교 졸업 후에 교회 출석을 그만 두고 있다고 보고했다. 이런 보고에 의하면 젊은 청소년들을 교회 안에 유치하는 문제는 우리 교단만의 문제가 아닌 것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청소년들의 유치를 위해 이런 동일한 문제를 겪고 있는 일반 개신교들의 방법을 모방하겠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많이 부족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청소년 문제나 정체된 교회 문제들을 가장 심하게 겪고 있는 지회들의 교회 지도자들과 목회자들이, 성공한 것처럼 보이는 사례들에 근거하여, 매주 마다 1만 5천 혹은 2만명의 사람들에게 설교하는 목사들의 교회로부터 뭔가 배울 것이 있다고 결론내린 것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그렇지만 곰곰이 생각해 볼 때 우리가 망각해 버린 사실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19세기 중반의 재림운동에 참가했던 이들 중 아주 적은 한 무리의 신자들을 하나님께서 사용하셔서 지난 150년 동안 전 세계 거의 모든 나라들로 셋째 천사의 기별을 전하게 된 운동을 시작하셨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우리가 대형 교회의 목사들의 발아래 앉아 배우고 그들의 예배 인도자들과 다른 교회 성장 전문가들을 우리 목회자 연수회들에 강사로 초청하여 경청하게 되면서, 지금까지 우리의 선교 용어로 사용되고 있지 않던 한 낮선 단어가 갑자기 사용되어지는 것을 듣게 되었다. 그 용어는 바로 어떤 교회에도 다니지 않는 사람이란 뜻의 “무교회자” (Unchurched) 라는 단어이다. 이 용어는 다음의 두 가지 이유로 인해 문제성을 띠고 있다. 첫째로, 성경은 사람들을 교회 출석자인가 아닌가로 보지 않고 구원받은 자인가 멸망 상태에 있는 자인가의 안목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둘째 이유는 이 “무교회자” 라는 용어는 교회로서의 우리 선교 사명에 지당한 영향을 끼치기 때문인데, 그 한 실제적인 예는 재림 교회 목사로 사역하고 있던 지역의 개신교 목회자 협회의 총무로 근무한 적이 있었던 필자의 아버지의 경우에서 볼 수 있다. 나중에 내 아버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내게 고백한 적이 있다: “리처드, 그 협회의 총무로 내가 역임하고 있던 해 동안에는 내가 공중전도 집회를 한번도 가진 적이 없었단다. 그 이유는 내가 우리 재림 교회의 공중전도 집회를 가짐으로 다른 교회 목사들의 양을 내가 빼앗아 간다는 인상을 그들이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렇듯 이 “무교회자” 라는 용어는 바로 다른 교단의 목사들에 의해 서로의 교인들에게 전도하여 빼앗아 가면 안 된다는 의미를 담은 암시적 어구인 것이다. 이러한 그들의 직업적인 염려를 우리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지만,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에 주신 “내 백성”에게 선포할 기별은 이런 종류의 상도덕을 전혀 염두에 두고 있지 않다. 셋째 천사의 기별은 양을 빼앗는 기별이 아니요 양을 구하는 기별인 것이다!

참으로 우리 재림 교회의 선구자들에게 하나님께서 주신 기별은 잃어버림 된자들 만을 위해 준비된 기별이 아니다. 오히려 이 기별은 여러 교파들에 흩어져 있는 당신의 백성들이 유예기간이 마치기 직전, 예수께서 경고하셨듯이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할 교묘한 마귀의 기만에 빠지지 않도록 지켜줄 메세지인 것이다 (마태복음 24:24).

최근에 유행되고 있는 또 다른 하나의 용어가 있는데, 그것은 “교회 성장”의 일부로 강조되는 “교회 심기” (Church Planting) 라는 단어이다. 이 두 단어들은 표면적으로 볼때 별 악의가 없는 듯이 보이지만, 이 용어들에는 내재하는 독소가 존재하고 있다. 다름 아닌 교리의 중성 혹은 불분명성의 조장이 바로 그것이다.

윌로우크릭 교회를 설립한 빌 하이벨스와 같은 일요일 교회 목사들은 한 지역에서 교회를 심을 때, 그 지역 사회의 집들을 직접 방문하거나 우편 광고물을 통한 설문 조사를 이용하여 그 지역 사람들의 기호에 맞는 교회를 구상하여 제시하면서 그 교회로 사람들을 초청하고 있다. 이런 식으로 새로 세워지는 교회의 신조와 교리가 시작 전부터 그 교회를 구성할 교인들의 사고방식에 완전히 맡겨져 있는 것이다. 이런 보편적인 관례들 때문에, 교회 심기의 결과로 세워진 일반 비교파 공동체 교회들을 설문 조사해 보면 이들 중 거의 모두가 교리적으로 중성적인 성격을 많이 가지고 있음이 발견된다. 하지만 하나의 재림 교회를 조직할 때 그 교회의 회중이 믿게 될 교리들의 선택이 그 회중을 구성할 교인들에게 달려있지 않다는 것은 말할 필요조차 없이 자명한 일이다. 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교회의 교인이 된다는 것은 이미 이 교단에 의해 정립되어 있는 일련의 교리들을 진리로 받아들이고 행하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에 중성적인 교리의 채택이라는 것이 도저히 있을 수 없는 바이다.

일반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현대판 교회 성장론의 기조를 이루는 원리들은 은행이나 간이음식점 체인 같은 일반 기업체들의 성장을 위해서도 똑같이 적용될 수 있는 원리들이다. 이러한 현대판 교회 성장론의 원리들은 따지고 보면 미국 광고업계의 중심지인 매디슨 가에서 언제나 사용되고 있는 시장의 수요 충족을 만족시키기 위한 마케팅 방법을 교회라는 한 특수한 조직에 적용한 것에 불과하다.

얼마 전부터 우리의 교회 심기와 교회 성장의 모본으로 추구되어진 복음주의자 교회들과 그 지도자들의 교회 운영 방법들이 이제 적지 않은 재림 교인들의 예배, 찬양 및 기도하는 방법에 까지도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무교회자” 사람들을 교회로 끌어들이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도 좌지우지 하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그리고 이 보다 더 우려되는 점은 이러한 우리의 교회들이 일반 공동체식 교회들의 두가지 특성들을 지금 채택하기 시작하고 있는데, 이런 특성들이 공식적으로 완전히 채택되게 되면 이것은 세계적인 교회로서의 우리 존재 목적에 직접적인 도전이 될 것이다. 이 두가지 특성중 하나가 위에서 잠시 언급한 교회 조직 운영 방법과 직접적으로 연관되는 회중교회주의 (Congregationalism) 이며, 다른 하나는 각종 오류를 포함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독특성이 존재하지 않는 교리적 특성이다. 이 두가지 특성들은 하나님께서 이 교회에 맡겨 주신 고귀한 임무와는 이질적이며 그 임무의 수행에 치명적인 것들이다.

따라서 이러한 공동체식 교회를 우리들의 모본으로 계속 삼을 때, 이러한 사고방식은 우리가 이때까지 지녀온 세계적인 안목을 편협하게 만들 수밖에 없으며, 또 우리 지역 교회들이 그들의 기호에 맞게 교리들을 나름대로 가공하게 되면 결국 마지막 때에 세상 온 지역으로 전파하도록 부여받은 이 독특한 메세지를 거세하는 결과를 초래하고 말 것이다.

한번 나는 애틀랜타의 해트필드 국제공항에서 테네시 주의 차타누가로 가는 비행기를 탑승하기 위해 기다리면서 대합실에 앉아 있었다. 그 때 우연히 복음주의자 교회들 사이에 잘 알려진 죤 앵커벅이라는 복음주의파 교회의 변증인이 그 대합실에 있는 것을 보게 되었다. 오래전에 월터 마틴 박사와 앵커벅 박사가 함께 한 기독교 텔레비전 방송 프로그램에서 우리 재림 교단의 대표자들과 토론을 벌인 적이 있었다. 나는 이 앵커벅 박사에게 다가가 재림 교회 목사로 나를 소개하며 인사를 나누었는데, 오래전에 있었던 그 토론에 대해 내가 언급했을 때 그는 다짜고짜로 “당신에게 내가 묻고 싶은 두가지 질문이 있습니다. 첫째, 엘렌 화잇의 사역에 대한 귀 교회의 현재 입장은 무엇입니까? 그리고 둘째로는, 조사심판에 대한 귀 교회의 현재 입장은 무엇입니까?” 라고 도전적인 질문을 해왔다. 그 때, 나는 웃으며 다음과 같이 그에게 도리어 질문한 기억이 있다. 신약 교회에 존재하였던 예언의 선물들을 그가 믿지 않느냐고 되물었고, 또 조사심판에 대해서는 예수님이 이 땅에 다시 오시기 전에 누가 구원을 받을지 누가 영생의 상실됨을 받을지에 대해 결정 내리실 것을 믿지 않느냐고 되물었던 것이다.

내가 이 경험을 전하는 이유는 바로 이것을 통해 내가 한가지 깨달은 바가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복음주의자 교회들에 속한 동료 목회자들이 우리의 선교 사업이 성공하도록 돕는 것 같지만, 사실 한 교회 단체로서 그들은 아직도 우리와 그들을 분리시키는 우리의 독특한 교리들이 제거되는 것에 기득권적인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내 백성아, 거기서 나와 그의 죄에 참여하지 말라”는 기별을 외치는 교회가 일반 기독교계의 교회들에게 한 반동분자로 보이는 것은 우리가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바이다.

동기에 대한 최종 판단은 오직 하나님께서만 하실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한가지 분명해지고 있는 사실은 우리가 계속해서 복음주의자들의 공동체식 교회를 지향하는 교회 성장론 선생들 및 목회자들과 교류하는 것은 우리 교리들의 독특성을 격하시키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으며, 또 그들의 회중교회주의 (Congregationalism) 의 정신을 빨아 마실 때 세계 선교의 비전을 더 확산시키기 보다는 폐쇄시키는 결과를 불러온다는 것이다.

물론 우리 교단 조직의 상부 구조가 필요이상으로 비대해졌다는 비판이 늘어가는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이러한 조직의 비대 현상이 고도 정보 유통 과학 시대에 있어서 불필요할 뿐만 아니라 비용적으로도 효과적이지 못한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이러한 두가지 점들에 기초한 이 주장에 분명 타당성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한가지 우리가 기억할 것은, 우리의 이러한 교회 조직이 현재까지 이 세상에 존재하는 윌로우크릭 교회나 새들백 교회들이 도저히 이룰 수 없는 성과를 우리로 하여금 성사시켰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바로 우리 교리의 통일성을 보존하면서 이 세상의 거의 모든 나라들로 하나님의 종말 기별을 전파했다는 것이다. 지방 교회 자치적 운영을 추구하는 지금 일부 경향은 이렇게 이룬 성과들을 위태롭게 만들 것이다.

한 오후 시간에, 나는 근처에 있는 교회에 다니는 한 교인으로 부터 걸려온 전화를 받았다. 그의 첫 마디는 바로, “오필 목사님, 내 생각에 우리 교회가 너무 많은 신조들을 가지고 있다고 봅니다” 라는 것이었다. 나는 그에게, “성도님이 차라리 알지 않았으면 좋았을 것이라고 바라는 성도님의 삶에 대한 하나님의 뜻이 무엇입니까?” 라고 되묻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이 말에 변변히 답변도 하지 않고 계속해서 우리가 너무 많은 수의 신조들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었다. 난 할 수 없이, 그렇다면 그의 입장을 가장 가까이 대변하는 다른 교파의 교회로 옮겨 가면되지 않겠느냐고 그에게 제안을 하였다. 이런 나의 제안에 대해 그는, “아니요, 그럴 생각이 없습니다. 저는 재림 교회에 머물러 우리 신조들을 바꾸도록 시도할 것입니다” 라고 대꾸하였다.

이와 유사하게, 우리 신조들에 대해 설교하고 가르치며 전하기보다는 복음에 대해 설교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교인들과 일부 목사들 까지도 있음을 보게 된다. 그런데 이런 염려에 대해 이해심을 가지고 받아주기가 솔직히 어렵다. 왜냐하면 신조 및 교리라는 말의 의미는 “가르침”이고 복음은 “기쁜 소식”을 뜻하고 있음을 볼 때, 이 두가지 단어가 표하고 있는 개념에는 서로 상충되는 바가 없다는 것이 명백해지기 때문이다. 사실, 복음의 중심에 있는 십자가 그 자체가 바로 한 신조요 교리인 것이다.

교리를 설교하지 말고 복음을 설교해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는 사람들의 진짜 주장은 사실, 우리가 재림 신앙의 교리를 고집하지 말고 일요일 교회들의 중성적인 교리들을 설교해야 한다는 주장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이런 내 추론이 틀렸기를 나도 바라지만 말이다. 우리는 침례교회에서 침례교회의 교리에 기준한 설교 말씀을 듣는 것을 하나도 이상하게 생각지 않는다. 그와 마찬가지로, 재림 교회의 강단에서 재림 교회 교리를 담은 설교 말씀이 전해지는 것을 부끄러워해서는 안 될 것이다.

우리의 27개 기본 신조들 중 그 어떤 조항들은 다른 것들보다 더 핵심적인 신조들로 여겨질 수 있음에 틀림없다. 하지만 일부층에 의해 중요하지 않다고 여겨지는 신조들이 바로 핵심적인 신조들을 우리 영혼의 적이 던지는 마지막 시대의 공격으로 부터 보호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그의 교회에 주신 신조들인 것이다. 예를 들어, 천년기와 그리스도의 재림 방법에 관한 우리의 신조들은 우리로 하여금 유예 기간의 종결 바로 전에 있을 택하신 자들도 할 수만 있다면 미혹할 마귀의 기만인 비밀 휴거의 오류에 빠지지 않게 보호해 줄 것이다. 이 비밀 휴거의 오류에 빠진 사람들은 그들에게 구원 받게 될 두번의 기회가 주어진다고 믿고 있으며 또 이 세상에 환란이 있을 때 그들이 하늘에 가 있을 것이라고 믿기 때문에, 이들 중 많은 이들이 자기들이 하나님의 뜻을 이행한다고 믿으며 짐승의 표를 다른 사람들에게 강요하는 일에 참여하기가 쉽다.

따라서 이 지구의 종말이 다가오는 이 시간, 우리에게 부과된 임무는 명백하다. 그런데도 우리 교회를 찾아오는 손님들이 우리 신조들을 노골적으로 반영한 설교 말씀에 접하면 좋지 않다고 생각한다면, 우리가 큰 과오를 범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가 가진 신조들은 실제적으로 이 세대에게 있어서 삶과 죽음을 가르는 쟁점이기 때문이다. 전쟁을 치를 때, 군사 용어를 빌리자면, 정확한 정보를 소유하고 있는 것은 적들과의 전투에서 성공하기 위해 필요불가결한 요소이다. 지금 우리는 우리와 다른 사람들의 영원한 결과를 결정하는 전쟁 중에 있음을 알아야 한다. 그러한 이 순간 사람들의 삶과 죽음을 결정하는 기별을 이 죽어가는 세상으로부터 숨긴다는 것은 말도 되지 않는 짓이다. 이 죽어가고 있는 세상엔 바로 진리에 대한 지식이 없음으로 멸망케 될 다른 여러 교파들에 속해 있는 많은 그리스도인 형제자매들도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작금의 오도된 교회 성장론의 한 동기를 제공한 원인으로 다시 돌아가 보자. 우리가 우리 자녀들과 손자들을 교회 안에 남아있도록 하기 위해 좀 더 효율적으로 일을 하자는 데는 하등의 잘못이 없다. 그리고 지역적으로 산재해 있는 정체된 교회들을 부흥시키기를 추구하는 바램에서 잘못을 찾을 수도 없다. 문제는 바로 이러한 문제점들에 대한 해결책을 구하기 위해 윌로우크릭 교회나 새들백 교회 같은 곳에 감으로 해서 우리가 야바위당한 꼴이 되고 만 것이다. 영혼을 교회로 이끌고 비전을 넓히자는 목적으로 초청한 외부 강사들에 의해 소개된 이 이질적인 이념들은, 만일 그것이 우리에 의해 저지되고 대수술 되지 않게 되면, 우리의 부름 받은 일을 도저히 할 수 없도록 만들 것이다. 그 일은 다름아닌 마지막 세대를 준비시키는 메세지, 즉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 살아서 맞이할 성경에 기록된 대로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음을 지키는 자”들인 144,000을 준비시키는 기별을 선포하는 일이다.

지난 몇 년 간에 걸쳐 윌로우크릭의 교회 성장론이나 그와 유사한 것들에 도취된 우리 교회안의 형제들은 내가 보기에 좋은 의도를 가지고 이 일들을 시작한 것 같다. 하지만 경험적으로 보아 이제 그들의 실험이 우리 지역 교회들과 목사들 및 신자들에게 끼친 피해는 막대하며 전체적인 교단에 적지 않은 분열과 불화를 가져왔음이 증명되었다.

나와 내 딸과 나의 손자도 이러한 실험의 피해자들이다. 내 열 아홉 살 난 손자는 앞에서 언급된 다마스커스 교회 (Damascus Church) 가 재림 교단으로부터 떠나갈 그 당시 그 교회의 교인이었다. 리처드 프레드릭스 목사의 주도하에 대부분의 교인들이 재림 교단에서 분리되어 나가 다마스커스 길 공동체 교회 (Damascus Road Community Church) 를 세운 얼마 후에, 내 손자는 내 딸에게 전화해서, “엄마, 난 이제 더 이상 안식일 준수를 믿지 않아요!” 라고 선언했었던 것이다.

[*역자주: 오필 목사의 이 글이 출간된 얼마 후, 그의 이 손자가 속해있는 프레드릭스 목사의 교인들로 추측되는 이들이 이 오필 목사의 인터넷 게시판에 무리로 몰려와 그 게시판에 참석자인 재림 교인들의 글들에 사사건건 온갖 이의를 제시하며 난동을 부린 적이 있다]

친애하는 형제들이여, 우리에게 있었던 최선의 의도에도 불구하고 결국 우리는 적이 보낸 트로이의 목마에 의해 내부 교란을 당하고 만 격이 되었다. 우리에게 있는 증거는 확실히 우리가 야바위꾼에게 속임을 당한 것임을 알려주고 있다. 우리가 바랐던 것과 우리가 얻게 된 것에는 확연한 차이가 있는 것이다. 정말이지 이런 과오를 통해 우리가 보였던 불신에 대해 진심으로 주님께 용서를 구하자. 뉴잉글랜드 지역에서 한 적은 무리를 통해 이 교회를 시작하셨던 주님께서 당신의 사업을 전 세계에 이루시고 말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믿음의 부족으로 인해 교묘히 만들어진 거짓말들을 믿도록 우리 자신을 허용하고 말았다. 다른 교파의 형제자매들이 가진 방법론을 우리가 필요로 하는 훨씬 이상으로 이들에게 우리의 기별이 더 필요되어 지고 있다. 재림하시기 직전에 당신의 백성을 하늘 본향으로 대려 가시기 위해 그들에게 주어질 하나님의 마지막 기별의 선포는 결코 매디슨 가의 마케팅 방법들이나 윌로우크릭 혹은 새들백 교회 같은 대형 교회들의 힘과 능력에 의해 완수되지 않을 것이다. 그 기별의 선포는 오직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당신의 영에 의해 성취될 것임을 나는 확신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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